부코스키라는 남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책장을 열자마자 술 냄새가 풍긴다. 찰스 부코스키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비틀거리는 취객 같은 남자,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책,찰스부코스키,문학

찰스 부코스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사실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이다. 왠지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고, 누군가에게 떳떳이 소개하기에도 망설여지는 구석이 있다. 대개의 경우 작가와 작품은 어느 정도 중첩되고 어느 정도 분리된 세계이지만, 찰스 부코스키의 경우에는 작품이 곧 작가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시와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낮에는 술을 마시고 밤에는 술에 취한 채로. 그리하여 만취 후의 토사물처럼, 추하고 거칠지만 날것의 진실을 알려주는 글이 세상에 나왔다. 부코스키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시고 공허한 노동을 하며 여자들과 섹스를 한다. 진창이라고 해서 그 안에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휘말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결국 빠져버리게 되는 관계, 술에 취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나쁘지 않았던 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찰스 부코스키는 평생 동안 시와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낮에는 술을 마시고 밤에는 술에 취한 채로. 그리하여 만취 후의 토사물처럼, 추하고 거칠지만 날것의 진실을 알려주는 글이 세상에 나왔다. 진창이라고 해서 그 안에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휘말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결국 빠져버리게 되는 관계, 술에 취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나쁘지 않았던 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술과 섹스와 경마 이야기가 난무하고, 기승전결 없이 사건이 이어지며, 신랄한 말을 툭툭 내뱉듯이 단문을 치고 나가는 찰스 부코스키의 글이 미국 주류 문단에서 저급하다고 조롱 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부코스키는 결국 죽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됐다. 그의 모든 소설 속 주인공인 ‘헨리 치나스키’는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인 셈인데, 찰스 부코스키가 큰 인기를 얻은 삶의 후반부에 쓴 작품에서는 치나스키도 유명 작가가 되어 있다. 찰스 부코스키는 국내에서도 꽤 인기가 있는 작가라서 이미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다. 집필 시점과 출간 순서는 뒤죽박죽이지만, 치나스키의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면 유년 시절의 이야기인 , 성인이 되어 잡역부와 집배원으로 일하는 과 , 그리고 의 순서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어떤 책을 먼저 펼쳐도, 찰스 부코스키를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게 될 것이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책을 펼쳐도 술 냄새가 훅 풍겨올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한 소설은 이었다. 실제로 잡역부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경마꾼, 주유소 직원을 거쳐 우체국에서 10년 동안 일한 노동자로서의 찰스 부코스키의 삶이 담겨 있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오로지 생계 유지를 위해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과 지겨움에 몸서리치게 된다.그리고 얼마 전 찰스 부코스키의 글을 묶은 세 권의 책이 추가로 출간됐다. 와 , 그리고 . 찰스 부코스키는 언제 이렇게 많은 글을 쏟아내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다작한 작가다. 노동자 시절, 술을 마시기 위해 타자기를 팔아치운 이후에도 신문지 귀퉁이에 시를 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 그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삶의 증거물이 아니었을까? 덕분에 우리는 그가 죽은 지금 시점에서도 새로운 글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출간된 세 권의 책은 찰스 부코스키가 쓴 편지들과 미발표된 시 중에서, 고양이와 글쓰기와 사랑, 그의 삶에서 중요했던 세 가지 키워드의 글을 묶은 것이다. 여기에 찰스 부코스키가 그린 그림까지 곁들여 있다. 책장을 넘기다가 구불구불하게 대충 그린 그림들을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다.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끄적인 고양이 그림까지 출판된 지금의 상황을 찰스 부코스키가 안다면 과연 뭐라고 할지 궁금해진다.찰스 부코스키는 무려 아홉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에는 이들에게서 얻은 삶의 영감으로 가득하다. 시의 원본에 똥을 싼 고양이에게 “내 작품을 인정해준, 귀 하나뿐인 뚱뚱이 까망 비평가”라고 말한다거나, 하루에 스무 시간씩 자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안다. 세상에 딱히 호들갑 떨 일이 없다는 걸”이라고 읊조리는 식이다. 찰스 부코스키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상처 입고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길고양이에게서 강한 동질감을 느꼈을뿐더러, 인생을 보았던 것 같다. 인생과 문학에 대해 듣고 싶다며 인터뷰를 청해 오는 사람들에게 술에 취한 그는 총에 맞고 차에 치이고 꼬리도 없는 사팔 눈의 고양이를 들이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봐요, ‘이걸’ 봐요!” 에서는 작가로서의 찰스 부코스키에 대한 흥미로운 단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글을 읽어 봐달라고 편집자에게 청하는 편지로 시작되는 이 책에는 계속해서 글을 투고하지만 거절 당하고, 전혀 글을 쓰지 않는 ‘불 꺼진 어둠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뒤에 다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며, 마침내 “죽음 바깥의 그 무엇도 내게서 이 시간을 빼앗아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부코스키의 일생 전체가 담겨 있다. 예술은 예술일 뿐 의미는 두 번째라거나, 시 한 편을 짓기 위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찰스 부코스키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글쓰기에 임했는지 알게 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 사랑에 대한 시를 모아놓은 에서는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찰스 부코스키를 만날 수 있다.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속에서도 여자들은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고 섹스하고 이별하고 다시 또 섹스한다. 여자를 포르노 속 판타지로 대상화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사랑인지 되묻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찰스 부코스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음란하고 비열하고 비참한 구석이 있는 날것의 사랑을 담아낸다. 에서 누군가가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치나스키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냐. 여자는 다 다르지. 기본적으로 여자는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나쁜 것의 배합이야. 마술적인 동시에 끔찍하지. 하지만 여자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서 찰스 부코스키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지긋지긋한 현실을 비틀거리며 함께 걸어가는 남자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