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미로, 팩토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권오상이 사진과 잡지, 역사를 재료로 만든 조각 속엔 동시대의 면면이 울창하게 얽혀 있다. 스스로 ‘예술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라 말하는 권오상의 스튜디오에서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권오상,사진조각,뉴 스트럭처,아티스트

권오상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8월 말, 그는 9월 2일부터 10월 12일까지 맨해튼 워터폴맨션 &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반기 일정을 너무 빠듯하게 잡았어요. 뉴욕에서 개인전이 끝나면 상하이 개인전이 또 있어요.” 스튜디오 안은 굉장히 분주했다. 두 명의 어시스턴트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고 다른 한 명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형상에 사진들을 붙여나가고 있었다. ‘사진조각’이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데오도란트 타입’의 새로운 작품 말이다. 분명 ‘데오도란트 타입’은 권오상의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시리즈이지만 지금 그의 주된 관심은 다른 작업에 집중돼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뉴 스트럭처’에 완전히 빠졌어요! 더 재미있고 새로운 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뉴욕 개인전에서는 ‘뉴 스트럭처’를 거꾸로 공중에 매달아 전시해볼까 해요.” 순간 8월 21일까지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전경이 떠올랐다. 열 개의 ‘뉴 스트럭처’ 시리즈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던 풍경. 매거진 속 ‘팬시’한 이미지들, 이를테면 스팽글 옥스퍼드 슈즈나 로크포르 치즈가 2m 가량으로 확대되어 건축적 구조를 띠고 얽혀 있었다. 이 전경을 포스팅한 권오상의 인스타그램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숲 같기도 하고, 미로 같기도 하고, 팩토리 같기도 하고.”어쩌면 이건 권오상의 작품 세계에도 통용되는 문장일지 모르겠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재료만 넣으면 작품이 나오는”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공장화된 시스템’을 꿈꾸는 작가다. 또한 ‘데오도란트 타입’부터 ‘더 플랫’ ‘더 스컬프처’ 그리고 ‘릴리프’와 ‘뉴 스트럭처’까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서로 미묘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미로처럼 얽혀 있다. 특히 ‘더 플랫’은 ‘뉴 스트럭처’의 출발이 된 시리즈다. ‘더 플랫’이 잡지에서 오려낸 이미지를 조각화한 후 다시 사진으로 담아낸 작품이라면, ‘뉴 스트럭처’는 그 2차원의 ‘더 플랫’을 다시 3차원의 조형물로 설계한 것이다.연결고리를 간직한 모든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패셔너블’하는 거다. 일단 그의 작품들은 시선을 끌어모은다. 그건 권오상이 재료나 방법, 형식을 막론하고 언제나 공감 가능한 동시대 키워드를 던져왔기 때문이다. 전통적 조각 재료인 브론즈로 슈퍼카를 만들거나(‘더 스컬프처’) 다이슨 선풍기처럼 스마트한 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이미지를 콜라주와 고대 조각 양식인 부조 기법(‘릴리프’)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뉴 스트럭처’도 마찬가지다. 울창하게 우거진 ‘뉴 스트럭처’ 사이를 걷다 보면 도시의 면면으로 만든 숲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절로 몇몇 의문이 떠오른다. 사진과 조각의 경계, 현대적 감성을 담은 과거의 플랫폼인가? 사물이 가진 감성을 전달할 뿐 대부분 환영이나 다름없는 잡지 속 이미지처럼 허상과 본질의 문제는 아닐까? 하지만 권오상의 말에 따르면, 핵심은 새로운 풍경을 창조하는 일이다.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전시에서 ‘뉴 스트럭처’를 모아놓은 아라리오 갤러리 지하 1층 디스플레이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 위치한 숲 같았다. 그런 느낌을 받길 원했다. ‘뉴 스트럭처’의 모태가 된 ‘더 플랫’ 시리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물 사이사이 여백이 있다. 잡지에서 오린 사물들을 철사로 고정해 세워놓고 촬영했으니까 바닥이나 책상 같은 공간 말이다. 그걸 보면서 사람이 사진 속으로 들어가서 그 사이를 돌아다닌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했다.‘뉴 스트럭처’는 알렉산더 칼더의 ‘스테빌’ 시리즈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전시 동선이 흥미로웠다. 아라리오 갤러리 1층에서 치즈를 검색한 이미지 세 장으로 만든 ‘뉴 스트럭처 12 치즈’를 관람하고 나오면, 맞은편 국립현대미술관 옥상에 있는 칼더의 ‘무제’, 일명 ‘빨간 치즈’ 조각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 ‘치즈’ 작품을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해준다. 솔직히 칼더를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걸 만든 후에 칼더의 ‘빨간 치즈’가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깨달았다. 난 사진 프린트 같은 여러 현대 기술을 사용해 만든 거지만 칼더는 단순한 구상과 용접의 과정만 거쳤을 뿐이지 않나. 그점이 얼마나 멋있는지...! ‘더 스컬프처’ 시리즈 중 두가티를 토르소로 만들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것도 사진만 보고 만들었는데 나중에 실물을 봤더니,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사물이었다. 사진은 절대 따라가지 못하는 영롱함이라는 게 있다. 몇 백 명의 과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이 만든 건 정말 대단하구나, 이들이 현대의 조각가는 아닐까? 아니, 지금 시대에 로댕이 살았다면 혹시 산업 디자인을 하지는 않았을까? 완전히 반해서 결국 한 대 구입했다.(웃음)칼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나? 잘 몰라서였던 것 같다. 지금은 정말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고 만드는 일 그 자체에 꽂혀서 미친 듯이 창작해내는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칼더가 파울 클레 같은 아티스트의 추상회화를 보고 ‘저런 회화들이 조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에서도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회화를 좋아하고 전 세대 작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조각을 만들었는지, 그게 내 작품이랑 합쳐지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치즈’가 눈에 들어왔던 이유 중 하나는 유일하게 나무로 만든 ‘뉴 스트럭처’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릴리프’ 시리즈 역시 최근작들은 모두 나무를 소재로 했다. 그건 경제성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치즈’를 나무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시도해봤더니 재료비도 덜 들고 느낌도 좋았다. 이제까지 비싼 알루미늄을 고집했던 이유는 야외 전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작품이 워낙 알록달록하다 보니까 햇빛에 색이 날아간다거나 뾰족해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어차피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실내용으로 만들자, 한 거다. ‘릴리프’ 같은 경우는 이사 간 집의 셀프 인테리어를 하다가 고안해냈다. 결국 와이프가 색이 너무 화려하다고 반대해서 벽에 걸지는 못했지만.(웃음) 차라리 드로잉만 된 상태의 ‘릴리프’를 걸어두면 괜찮을 것 같다. 올해 말 서울에서 개인전이 한 번 더 있는데, 그때는 이미지가 없는 ‘뉴 스트럭처’나 ‘릴리프’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무 판 같은 재료만 서 있거나.그럼 골격만 있고 정보는 없는 셈인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없다.(웃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냥, 작가라는 건 역사적으로 새로운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설악산을 보면서 그걸 해석하려 들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을 만드는 것. 멍하니 있을 수도 있고, 술 생각,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뇌 안에 공백을 주는 거다. 지금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그런 공백이 더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무기능이야말로 현대미술의 진정한 기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술엔 반드시 어려운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작가가 가진 상상력을 어떻게 작품만 보고 이해할 수 있겠나? 이해할 필요도 없고 방법도 없다. 나조차도 누군가의 작품을 봤을 때 그 의미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작가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작품이 내포한 의미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으나 그건 정보로 짜 맞추는 것뿐이다. 그냥 풍경처럼 즐긴다거나 그 앞에서 나름대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공간을 갖는 것이 좋은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특유의 강박이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미술 평론을 읽을 때마다 일부러 난해하게 쓴 건가 싶을 때도 많으니까. 내 작품에 관한 평론인데도 그런 경우가 꽤 있다. 읽으면서 ‘이게 뭔 소리야?’ ‘맥락은 알겠으나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그건 글 쓰는 재능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영준 평론가를 좋아한다.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보면 그렇게 쉽고 명쾌할 수가 없다.이제까지의 작업을 정리해보면 가벼운 조각(데오도란트 타입) - 간단한 조각(더 플랫) - 조각다운 조각(더 스컬프처)의 순서다. 재료나 방법을 실험하면서 조각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는 동시에 그 이야기 속에 연결고리가 있는데, ‘뉴 스트럭처’와 ‘릴리프’도 그 연장전상에 있다고 봐도 좋을까? 간단한 조각에서 파생된 조각이기도 하고 조각다운 조각, 그리고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잡지 이미지를 차용할 뿐 아니라 역사에서도 소스를 찾아 사용하고 있으니까. 조각사의 관점으로 보면 칼더는 선조이기 때문에 선조의 뼈를 가져다가 이미지만 끼워 넣은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역사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조각품을 계속 생산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미술사에서 내 이름이 존재감을 가지려면, 일단은 다작이 기본이다. 그래서 빠르고 쉽게,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같다. ‘데오도란트 타입’은 180cm 사이즈를 만들 때 두 달가량 소요되는데 그에 비하면 ‘뉴 스트럭처’는 40일 정도로 빠른 편이다. 그런데 컴퓨터 작업도 필요하고 손으로 사포질도 해야 하고, 거기에 사이즈가 크다 보니까 혼자서는 못 만든다. 공정 과정이 그다지 준 것 같지 않아서 고민하다 보니 ‘릴리프’까지 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쉽게, 많이 만들 수 있을지, 제작 구조를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로또에 맞으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내 대답은 재료를 털어 넣으면 작품이 쭉쭉 나오는 공장을 만들겠다는 거였다.작품 제목이 점점 간단하게 변해가는 것도 생산량과 관계가 있는 건가? 초기작은 ‘다중 시야에 관한 360장의 진술서’ 같은 철학적 제목이었는데 점점 웰시코기를 만들면 ‘웰시코기’, 지금은 ‘뉴 스트럭처 10’처럼 시리즈 뒤에 숫자를 붙여나가는 식이다. 그렇게 길고 철학적인 제목들을 붙였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작품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만든 것이다. 지금보다 예술에 대해서 무겁고 진지하게 접근했던 때라 작품의 의미라든가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들을 담았다. ‘미술이 가지는 절대적 권위와 숭배에 관한 280장의 진술서’ 같은 식으로.(웃음)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제목을 외우기 힘들다. 지금은 무제로 짓고 싶은데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 봐 숫자를 붙이고 있다.(웃음)2005년 이주현 큐레이터와의 대담에서 “조각가 되기 퍼포먼스 중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 말에 동의하는 어조였는데 여전히 그러한가? 정수진 씨가 해준 얘기다. 지금 생각하는 화두는 조각의 역사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다. 사실 가벼운 조각이나 간단한 조각 같은 건 그 시즌의 그릇 같은 것이고 그 안에 담긴 내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대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전달한다든가 새로운 도시 풍경을 만드는 지점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유독 패션 매거진 혹은 브랜드와 협업을 많이 하는 작가다. 8월 말에 시드니의 에르메스와 쇼윈도 아트를 선보이는가 하면 ‘라이풀’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마다않는다. 협업의 기준이 있다면? 예전엔 개인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브랜드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어떤 협업이든 개인전에 한 번씩 등장했고 도록에 똑같이 등재했다. 흠.... 사실 내게 협업이란 ‘러키한 아르바이트’ 같은 거다. 공장장의 입장에서 어시스턴트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다른 작가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입을 얻는 것처럼 나는 작품을 만들면서 돈을 받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그런 점에서 라이풀은 ‘뉴 스트럭처’ 시리즈에 관심을 보였던 유일한 기업이었고 작품을 구매한 최초의 브랜드였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런 식이다. “이번 기회에 작가님이 해보고 싶으셨던 것 마음껏 해보십시오!” 작가는 보통 자기 스스로 룰을 만들고 그에 따라 작업하는 사람들이라 이미 내 맘대로 하고 있었는데.(웃음) 오히려 요구가 많으면 좋다. 로고가 크게 들어가게 해달라거나 브랜드를 검색해서 사용해달라거나. 가이드가 있으면 괴롭지 않냐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편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가 들어감으로써 작품이 더 다채로워지는 것도 좋고.“어릴 때부터 가장 상업적인 것이 가장 현대미술적이라고 생각해왔다.”는 철학과도 연관이 있는 이야기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제프 쿤스처럼 당대 가장 값비싼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그 사실만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정말이지, 미술품을 사고파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앤디 워홀이 왜 이 가격에 자기 작품을 사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지 않았나. 작은 사이즈라도 자동차 정도의 가격을 하는 데다 그 어떤 ‘기능’도 없으니, 미술품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건 어떤 상징과도 같은 거다. 내 경우엔 신작이 나오면 판매까지 평균 2년이 소요된다. 사진조각의 경우가 그렇고 ‘뉴 스트럭처’처럼 새로운 시리즈는 더 오래 걸린다. (‘뉴 스트럭처’의 경우, 사이즈 때문은 아닐까?)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거 다 접힌다! 그것도 침대 밑에 쏙 들어갈 사이즈로!(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