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del Journey with Linda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슈퍼모델이 슈퍼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가 캐나다에서 보낸 자신의 젊은 시절을 테마로 삼아 라켈 짐머만을 자신의 역으로 캐스팅한 것. | 패션화보,린다 에반젤리스타,라켈 짐머만,MODEL,LINDA EVANGELISTA

바퀴벌레로 가득한 아파트였어요.” 그녀가 회상한다. “그때는 뉴욕 아파트가 다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지금 뉴욕의 첼시 지구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스피커폰으로 어머니 마리사(Marisa)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내가 뉴욕으로 이주할 때 어느 항공사 비행기를 탔었지? 피플 익스프레스(People Express)였나? 왕복 항공권이 단돈 88달러였던 항공사 맞나?”“으음, 그랬던 것 같다.” 마리사가 답한다.“뉴욕에 왔을 때 내가 몇 살이었나? 열여덟 살 반? 열아홉?”“열여덟 살 반 정도였던 것 같다.” 마리사가 말한다.“그랬나?” 에반젤리스타가 웃으며 말한다.“둘 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하지만 완전히 사실은 아니다. 그녀가 1984년 뉴욕으로 이주했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어머니였으니까.“항상 전화를 걸었었지.” 마리사가 설명한다.“그것도 공중전화 박스에서.” 에반젤리스타가 덧붙인다.“딸이 안전한지,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했던 거야.” 마리사가 말한다. “고마워.” 에반젤리스타가 말한다. “차오 차오(Ciao, Ciao)!”올해 쉰하나인 에반젤리스타는 여기 의 페이지를 통해 뉴욕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모델로 성장하기 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노동자 계층 도시 세인트 캐서린(St. Catharines)에서 보낸 삶을 재현했다. 잠깐, 그녀의 슈퍼모델 경력을 학인해보자. 잡지 표지 모델 7백 회 이상, 베르사체, 샤넬, 돌체 & 가바나 등을 비롯한 여러 디자이너들과 함께한 아이콘적인 광고 캠페인들, 거대한 유행을 일으킨 머리카락 색 세 가지, 크리스티 털링턴과 나오미 캠벨이라는 두 명의 슈퍼모델 친구, 그리고 지금껏 모아둔 수많은 디자이너 아이템들.(캐나다에 보관하고 있다.)“언젠가는 기부할 예정이죠.” 그녀가 말한다. “내가 그걸로 무엇을 하겠어요? 더 이상 끌어안고 있을 수 없죠.”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모두 내게 익숙한 것들이에요. 내가 운전하던 차, 우리 집, 가게들, 성당.... 전부 실제로 있던 것들이니까요.” 그녀와 포토그래퍼 나다니엘 골드버그는 모델 라켈 짐머만을 젊은 린다 에반젤리스타 역에 캐스팅했다. 짐머만의 외모보다는 감정 전달 능력에 바탕을 둔 결정이라고. “대단한 모델이죠.” 에반젤리스타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과거 재니스 디킨슨을 연상시켜요. 동물적인 야성을 지니면서도 정확하고 뚜렷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내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이 좋았어요. 나의 또 다른 자아라 할 수 있죠.”물론 이 화보에는 약간의 시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에반젤리스타는 기차를 타고(피플 익스프레스보다 비싼) 그랜드 센트럴 역에 도착하지 않았다. 또한 이 화보는 뉴욕에 도착하는 그녀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에 도착해 두 발로 바닥을 디디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에반젤리스타가 설명한다. “이게 시작이었죠. 여기 그녀가 있었고, 이것이 그녀의 출발점이었습니다.”어머니께서 ‘여기, 1백 달러’, ‘여기 또, 1백 달러’ 식으로 보내주셨어요.뉴욕에 도착한 에반젤리스타는 일명 모델 아파트로 직행했다. “바퀴벌레로 가득한 아파트였어요.” 그녀가 회상한다. “그때는 뉴욕 아파트가 다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 그녀는 모델 에이전트의 사무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매일 열 곳의 사무실을 갔고, 지하철 타고 다니는 법을 배웠어요. 소호에 처음 간 것도 기억나는데, 마치 화성에 도착한 것 같았어요. 트럭과 유기된 건물들밖에 안 보였으니까요.” 그녀는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어머니께서 ‘여기, 1백 달러’, ‘여기 또, 1백 달러’ 식으로 보내주셨어요.” 당시 그녀는 딱 한 번 모델 일을 했다. “여성지 에 실린 장 루이 데이비드(Jean Louis David)의 광고였죠. 2~3백 달러 정도 벌었는데 당시 엘리트(그녀의 에이전시) 사람들이 말했어요. ‘너무 실망하지 마라. 곧 파리에 보내주겠다.’라고.”그렇게 그녀는 다른 두 모델들과 함께 파리로 향했다. “짐 모리슨이 죽은 곳 근처 상탕드레 데자르(St. André des Arts) 호텔에 묵었죠.” 그녀가 처음으로 촬영한 화보(특유의 고양이 눈이 돋보이는 잡지 표지) 중 하나의 준비 과정에서는 어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촬영 스태프 모두가 점심을 먹는 동안 그녀를 방 안에 가둬두고선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한 일도 있었다. 그것도 두 시간 동안이나. “그녀가 돌아왔을 때 약간의 블랙 파우더가 볼에 떨어졌는데, 그걸 보고선 엄청나게 화를 냈어요.”그러나 에반젤리스타는 모델 일이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는 평생 주조 공장에서 일하셨기에 힘든 일이 어떠한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주 순진했죠. 그 후 내게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났고, 나쁜 일도 많이 일어났어요. 3년이 지나서야 아서 엘고트, 피터 린드버그, 스티븐 마이젤 같은 훌륭한 포토그래퍼와 일하기 시작했고요. 다 제자리를 찾게 되었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데는 시간이 걸렸어요. 사다리를 힘들게 천천히 올라간 경우라고 할 수 있죠.”에반젤리스타의 사다리는 그녀가 자라난 빨간 벽돌집에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계로 가톨릭 신자인 친척들이 전부 근처에 살았던 그녀의 집, 화보에 사용된 이 집에서 그녀는 부모님 및 두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가족은 지난 7월 집을 팔았다고.) “촬영을 하면서 온갖 감정이 치밀었어요.” 그녀가 말한다. “내 침실은 너무도 작아서 가운데 서면 두 팔로 양쪽 벽을 건드릴 수 있을 정도였거든요. 다행히도 나 혼자서만 사용한 방이었죠.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 정도만 가지고 자라났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비슷한 정도만.” 이 화보에 포함된 침실은 사실 에반젤리스타의 이모의 집 침실이다. “할머니는 담요를 직접 코바늘 뜨개질로 짜서 만들었어요. 어린 시절 익숙했던 모습 그대로죠. 부모님의 집, 할머니의 집, 모든 것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것 같아요. 집 안 곳곳이 종교화로 가득했죠. 방마다 이 걸려 있었으니까요.”에반젤리스타는 아르바이트 경력이 다양하다. 주얼리 가게에서도 일한 적이 있었고 (“미국 감정사 협회 소속 보석 감정사만큼이나 다이아몬드를 잘 감정할 수 있어요. 그 일을 아주 좋아했죠.”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할리우드 밀랍인형관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할리우드 만세! 마이클 잭슨, 마릴린, 모두 다 있었죠. 나는 우리처럼 생긴 부스에서 표를 팔았어요. 항상 세 군데 정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죠. 패션 아이템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방과 후 가능한 모든 시간을 아르바이트로 보냈습니다.”패션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열한 살인가 열두 살 되었을 즈음 울면서 어머니를 앞에 앉혀놓곤 ‘옷이 더 필요하다. 정말 중요하다’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당시 내게는 내 생각을 표현할 유일한 방식이었으니까요. 코듀로이 팬츠와 웨지 슈즈에 맞춰 입을 러플 피터 팬 칼라 블라우스가 필요했어요. 어머니는 승낙하셨고, 나는 그렇게 원하던 옷을 손에 넣을 수 있었죠.”에반젤리스타는 항상 옷차림에 있어 철저했다. “항상 다음 입을 옷을 계획해두고 있었어요. 마치 수트 같았죠.” 그녀가 회상한다. “블레이저, 스커트와 블라우스, 귀고리, 슈즈. 근처 몰에 가거나 캐나다 달러가 미화보다 강할 때는 강을 건너 뉴욕 주 나이아가라 폴스나 버팔로까지 쇼핑하러 갔어요.” 그러나 돈을 아끼기 위해서는 작전이 필요했다. “관세를 물지 않으려고 집에 돌아오기 전에 새로 산 옷을 차 안에서 갈아입어야 했죠.”어떤 자동차였나? 1982년도산 청동색 엘도라도. “탱크에 구멍이 나 있어서 좌회전을 할 때마다 기름이 샜어요. 오빠와 내가 돌아가며 몰던 차였죠.” 에반젤리스타는 시간적 여유가 나면 친구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1950년대와 60년대에 지어진 호텔에 가곤 했다.(화보에 등장한 스페이스 모텔(Space Motel)처럼.) “1950년대에는 아주 럭셔리하고 특별한 곳이었어요. 신혼부부들이 가는 호텔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녀가 자라난 1980년대에는 전부 일찍 문을 닫아서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아니면 허름한 중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곤 했다. “물론 클로에를 입고 가지는 않았어요.” 화보 속 짐머만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웃는다.사람들과 어울리던 추억을 언급하니 궁금하다. 에반젤리스타는 나이아가라 폴스나 공항 탑승구에 슬퍼하는 남자를 남겨두고 뉴욕으로 떠났나? “아니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사귀는 사람은 있었지만, 모델 일을 하려고 헤어지지는 않았어요.”에반젤리스타는 전설적인 국제적 커리어를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집을 떠나지 않았다고. “이웃 사람들이 촬영을 구경하러 왔어요. 노와코우스키(Nowakowski) 가족, 길 건너 사는 사람들 전부 다요. 예전이랑 똑같아요. 내가 기억하는 동네 모습 그대로죠. 지지(Zizi) 이모가 촬영 스태프는 물론 구경 온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잔뜩 준비하셨어요. 우리 가족은 그래요. 항상 남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죠.” 화보 촬영 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에반젤리스타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홉 살 난 아들 오거스틴(Augustin, 그녀는 ‘오기(Augie)’라고 부른다)을 보러 집으로 간다. 그녀는 짐머만이 하늘하늘한 구찌 옷을 입고 자신의 어린 시절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생각해보면 내가 성에서 자라났어도 똑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예요. 텐트에서 자라났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