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심사위원 만장일치 나왔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자 박종진

종이인가? 도자기인가? 화제의 한국인 수상자 박종진과 나눈 일문 일답

프로필 by 손안나 2026.07.01

THE NEWEST LAYER


1846년 마드리드의 장인들이 세운 가죽 공방은 시간이 흘러 세계적인 럭셔리 하우스로 성장했고 하우스는 여전히 자신들의 근간을 잊지 않았다. 2016년 제정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하우스의 유산을 바탕으로 전통 기술을 오늘의 언어로 확장하는 동시대 공예가를 조명하고 있다.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만난 현대공예의 모든 것.


박종진, 대한민국, <Strata of Illusion>, 2025, 도자기, 종이, 스테인, 유약, 750x450x560mm.

박종진, 대한민국, <Strata of Illusion>, 2025, 도자기, 종이, 스테인, 유약, 750x450x560mm.


나카히라 미사코, 일본, <Interaction #YB>, 2024, 양모, 면.

나카히라 미사코, 일본, <Interaction #YB>, 2024, 양모, 면.


난웨이, 중국, <Knot-Loving>, 2025, 옻칠, 소가죽, 리넨.

난웨이, 중국, <Knot-Loving>, 2025, 옻칠, 소가죽, 리넨.


(왼쪽부터) 예르트루드 할스, 노르웨이, <Scala>, 2025, 3~5번 작품으로 구성, 면사, 아마사 및 수지. 잰시 서머스, 짐바브웨, <The Caretaker’s Clotheshorse>, 2025, 유약 석기.

(왼쪽부터) 예르트루드 할스, 노르웨이, <Scala>, 2025, 3~5번 작품으로 구성, 면사, 아마사 및 수지. 잰시 서머스, 짐바브웨, <The Caretaker’s Clotheshorse>, 2025, 유약 석기.

얼마 전 아트부산에서 LA의 한 가구 디자이너와 대담을 나눈 적 있다. 프로그램의 주제는 ‘크리에이티브의 경계를 넘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장터에서 가구라니 누군가에겐 생경했을 광경 탓인지 관객 중에서 질문이 나왔다. 디자인과 예술, 공예와 예술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문제를 해결하는가, 질문을 유발하는가’로 갈음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어떻게 인식하게 할 것인가?’로 되려 반문했을까? 과거라면 쉽게 튀어 나왔을 몇 가지 구분이 더는 무용하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공예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실감하곤 한다. 내가 떠올린 대답은 일주일 전, 싱가포르 출장으로 참석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었다. 지금 싱가포르 현대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작들을 보고, 공예가 반드시 기능을 담보한다는 발상은 이제 접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떤 작품은 매우 회화적이었고 어떤 작품은 개념미술에 가까워 보였다. 한편으로 어떤 작품은 신예의 도발이었고 어떤 작품은 수십 년간 기술을 연마한 장인의 인생 그 자체였다. 이토록 다양한 아이디어, 이토록 다양한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건 지금 로에베 재단 공예상이 공예 신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 출품작 중에는 공예를 표현의 도구 혹은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작업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원형을 통해 진실과 기억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탐구한 조수현, 수천 개의 은 조각을 반복적으로 연결하는 수행적 노동을 통해 작업을 완성한 박지은, 새의 둥지와 알에서 착안한 디자인으로 안식처라는 원초적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한 이소명, 기능과 조형이 만나는 가구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 이종인, 사람들의 각기 다른 그림자를 모티프로 제작한 꼭두각시 브로치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삶의 가치를 꿈꾸는 성코코까지. 전 세계 133개 국가 5천100여 점의 작품 중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한국인 공예가 6인의 작업도 일종의 자기 표현의 그릇이었다.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우승을 거머진 도예가 박종진의 <착시의 층위(Strata of Illusion)>도 대표적인 예시다. 의자를 닮은 이 조형물은 “깨진 것은 왜 나쁜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재료와 기법으로 전복한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다. 3년째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건축가 조민석은 “이번 당선작에 대해서 심사위원 전원 이견이 없었다”고 귀띔했다. 한 심사위원은 이집트의 고대 파피루스를 떠올렸지만 조민석은 정반대의 측면을 바라봤다는 점은 이 작품의 다층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현대성이었다. 조민석은 “처음엔 사진으로 접하고 텍스타일 작업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오감을 통해 보니 아주 다르더라. 그게 마치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해독제처럼 느껴졌다. 건축도 비슷하다. 직접 발품을 팔고 손으로 만져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나. 바로 이 점이 지금 공예가 각광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건축이나 공예나 시간을 재료로 공을 들여 만드는 작업이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 사이에서 더 새로운 걸 찾아내는 일. 전통이란 항상 변화를 담보할 때 존중받으며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인정신과 실험정신. 조민석의 말을 거칠게 요약한다면, 2인의 특별상 수상자인 고대 금속공예 기법인 니엘로 장식을 더해 완성한 그라치아노 비신틴의 목걸이와 가나 외딴 마을의 장인 공동체와 협업한 알바로 카탈란 데 오콘의 테피스트리가 전자이고 우승자 박종진의 작업은 후자이다. 로에베 재단 회장 쉴라 로에베(Sheila Loew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잭 맥컬로(Jack McCollough)와 라자로 에르난데스(Lazaro Hernandez)를 비롯한 심사위원단은 도자기에 대한 기존의 예상을 뒤엎고 조형적 존재감을 드러낸 점을 높이 평가하며 <착시의 층위(Strata of Illusion)>를 우승작으로 선정했다. 흙물을 발라 겹겹이 쌓아올린 키친 타월은 뜨거운 가마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한다. 종이는 모두 타서 사라지고 기존의 형태는 무너져내린다. 통제와 붕괴 사이의 긴장감을 오롯이 드러내는 새로운 기물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다음은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우승자 박종진과 수상 전후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에서 나눈 일문일답이다.

사라지는 종이 한국에서 전통적인 도자 기법을 배우다가 유학을 가면서 새로운 방향에 눈을 떴다. 가장 흔하고, 가장 싸고,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인 종이로 실험을 해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어느 날 작업을 위해 쌓아둔 종이를 보고, 불현듯 지금까지 내가 무언가 새롭게 해보려고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종이에 압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이를 도예로 구현해서 거기에 나의 생각, 상황, 감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엔 종이의 결을 닮은 도자기를 만들고자 시도하다가 나중엔 종이 자체를 이용하게 되었다. 종이 위에 백자의 흙물을 발라 쌓아 가마에 굽는다. 아주 고온으로 구우면 종이는 타고 흙물만 남는다. 제작 과정에 일종의 재료적 희생이 담겨 있는 셈이다.

붕괴 미학 한 달 반 동안 종이에 흙물을 바르고 쌓은 뒤 가마에 넣었는데 소성 과정에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처음에는 그동안의 노력이 날아갔다는 생각에 실망했지만, 다시 보니 그 형태가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이 작품에는 그동안 붙여왔던 ‘아티스틱 스트라텀’ 대신 ‘착시의 층위’라는 새로운 제목을 붙였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마 안에서는 언제나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고였다. 하지만 내게 매우 의미 있는 사고였다. 그 사고가 결국 이 상을 가져다 주었으니까.

목수의 기쁨 도예를 전공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철저한 통제였다. 금이 가거나 깨지면 잘못된 것, 실패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왜 도자기는 한 번 구우면 더 이상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을까’ 묻던 나는 지금도 이 질문의 연장선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 도예는 가마에서 나온 뒤 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기법은 오히려 소성 이후부터가 형태의 시작이다. 목수들이 나무를 가져와 관찰하고 그것을 어떻게 깎고 다룰지 고민하듯, 나 역시 가마 소성이 끝난 뒤 작품을 관찰하고 그 상태를 보며 어떻게 작업을 이어갈지 결정한다. 이후에는 전동 도구를 사용해 형태를 다듬는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나무 고목을 깎아서 속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영감의 색 어떤 이들은 내 작업을 한국의 조각보와 연결짓기도 하지만, 모 평론가가 내 작업을 ”즉흥성과 순발력이 중요한 작업이고, 한국적 사유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동의한다. 나는 그냥, 작업한다. 그런 맥락에서 색감 때문에 한국적 정서를 취한다고 말하는 것도 다소 억지스럽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해외 축구의 유니폼 컬러 같은 일상의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스케치도 하지 않고 바둑 두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걸 넣고 저걸 넣고…” 식으로 색상을 결정해 나간다. 물론 길을 잘못 든 것 같을 때도 있다. 신경이 쓰이지만 그렇다고 다시 작업하진 않는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아진다. 오히려 내 작업에 깃든 사유는 그런 것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세 번째 도전이었다. 작년에 이 작품을 본 동료 작가와 선생님들이 응모해 보라고 조언해줘서 용기를 얻었다. 여타의 공모전들이 상금만 주고 끝난다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오히려 그 다음 해부터 본격적이고 지속적으로 작가들과 연결성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격이 다르다고 느낀다. 현 시점에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동시대 공예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하는 시선이자, 전 세계 작가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교류의 장일 것이다.

Credit

  • 사진/ 로에베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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