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영국 천재 프로듀서, 마크 론슨에게 삶은 거대한 DJ 믹스다

마크 론슨이 말하는 DJ의 삶, 뉴욕의 밤.

프로필 by 손안나 2026.04.08

SOUND EFFECTS


음악 천재 마크 론슨(Mark Ronson)이 말한다. 삶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거대한 DJ 믹스와도 같고 그 순간에 비로소 마법이 깃든다고.


 <Night People> 출간 기념 파티에서 DJ로 음악을 트는 마크 론슨.

<Night People> 출간 기념 파티에서 DJ로 음악을 트는 마크 론슨.

지난봄, 르네상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구찌 2026 크루즈 패션쇼’가 열렸다. 15세기 팔라초 세티마니에서 시작된 쇼는 모델들이 런웨이를 누비는 순간부터 이미 비일상적인 분위기를 암시했다. 이어 산타마리아 노벨라 수도원의 고요한 회랑에서 촛불이 흔들리는 만찬이 펼쳐졌다. 밤의 정점은 600년 역사를 품은 공동 식당인 리펙토리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댄스 파티였다. 줄리아 가너, 폴 메스칼, 야라 샤히디 등 스타들이 모여든 그 무대에서, 그래미와 오스카를 모두 거머쥔 음악 프로듀서 마크 론슨이 DJ 부스에 서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아올랐다. 역사적인 무대와 현대적인 사운드가 뒤섞인 그 밤은, 모두가 쉽게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모델과 에디터들은 구두를 벗어던진 채 소파 위로 뛰어올랐고, 네온빛이 번지는 높다란 DJ 부스 위에서 론슨은 여유롭게 밤의 공기를 조율했다. 그에게 곧장 올라가 플레이리스트에 관해 몇 마디 조언을 건넬 용기를 낸 이는 단 한 사람, 모델이자 활동가로 패션계에서 길을 닦아온 베단 하디슨이었다. 커다란 선글라스, 활짝 웃는 얼굴들은 말 그대로 ‘바이브가 살아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론슨이 브루노 마스와 함께한 2014년 히트곡 ‘Uptown Funk’를 트는 순간, 폭발적인 함성은 수백 년 된 창문의 유리를 흔들 정도였다. 그 장면은 영적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였고,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광경을 본 수도승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Uptown Funk’를 틀고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좋아요. 제가 해온 모든 작업 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곡이죠.” 론슨은 자신의 신간 <Night People: How to Be a DJ in ’90s NYC>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은 그가 10대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Y2K 이전 뉴욕 클럽 신에서 레코드를 돌리며 보낸 초기 DJ 생활을 담은 회고록이다. 곡이 나오자마자 피렌체의 패셔니스타들이 열광하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니 그 말이 바로 이해되었다. 청자로서도 창작자로서도 론슨은 성인이 된 이후 줄곧 그런 황홀한 순간을 좇아 살아온 사람이었다.

초창기부터 론슨은 ‘딱 맞는 순간에, 딱 맞는 곡을 틀어 군중을 띄우는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집착은 변함없다. 구찌 파티가 끝난 몇 달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늘 사람들이 더 높이, 그리고 또 더 높이 올라가길 바라요. 디제잉의 매력은 제가 사랑하고 거의 집착에 가깝게 파고든 음악을 틀면서 동시에 군중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거죠. 그 순간들이 결국 제 ‘무리’를 찾아준 셈이에요.”

요즘 론슨은 소호의 레코딩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지낸다. 이곳은 그가 레코드 상자를 들고 다니던 시절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레이디 가가, 두아 리파와 함께 시대를 정의하는 음악을 만들기까지, 간헐적으로 그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온 공간이다. 지금은 스튜디오 근처에서 배우 그레이스 거머와 두 딸과 함께 사는데,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에 살짝 빠져나와 이곳으로 향한다. 겉보기엔 장식도 거의 없는 평범한 건물이다. 하지만 만약 이 벽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쏟아질까. 론슨은 아직도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그래미를 수상한 앨범 <Back to Black>의 가사를 써 내려갈 때 쓰던 소파를 그대로 두고 있다.

론슨의 책 <Night People>의 원제는 <93 ’Til Infinity>. 오클랜드 힙합 그룹 소울스 오브 미스치프(Souls of Mischief)의 동명 앨범에서 차용한 것으로 공교롭게도 론슨이 DJ를 시작한 해와 같은 1993년에 발표된 음반이다. 이 책은 론슨이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영국에서 넘어와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자리 잡은 젊은 이주자였고,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음악으로 찾아가던 때였다. 론슨의 성장 배경 역시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그의 아버지 로렌스 론슨은 음악 매니저이자 부동산 개발자로 활동했고, 어머니 앤 덱스터 존스는 뉴욕 사교계에서 이름난 호스트이자 주얼리 디자이너였다. 두 사람은 론슨이 다섯 살 때 갈라섰다. 이후 론슨과 쌍둥이 자매 샬럿, 사만다는 어머니 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가 밴드 포리너(Foreigner)의 기타리스트 믹 존스와 재혼하자, 론슨의 삶은 자연스럽게 음악과 파티 문화가 뒤섞인 세계 한가운데로 흘러들었다. 장차 ‘밤의 사람(night person)’이 될 소년 론슨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어머니 앤 덱스터 존스가 찍은 어린 시절의 마크 론슨.

어머니 앤 덱스터 존스가 찍은 어린 시절의 마크 론슨.

론슨의 어린 시절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숀 레넌이었다. 론슨은 <나이트 피플>에서 숀과 그의 어머니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의 전설적인 레지던스, 다코타 아파트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한다. 한번은 마이클 잭슨이 <Bad> 투어 중 잠시 들른 적이 있었는데, 론슨과 숀은 그를 기다리는 동안 젖은 휴지를 단단히 뭉쳐서 창밖으로 던지며 놀았다고 한다.

론슨의 첫 번째 꿈은 밴드를 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낮에는 졸린 눈으로 사립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클럽에서 소리를 뒤흔드는 DJ로 변신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90년대 중반의 뉴욕 밤문화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파이낸스 브로들이 힙합 모굴들과 손을 잡고,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와 첼시 서쪽 끝에는 거대한 건물들을 개조한 새로운 클럽과 라운지가 속속 문을 열었다. 줄리아니의 헤어라인은 아직 녹아내리지 않았고 그 시대의 파티 피플에게 ‘성배’는 클럽에서 프린스를 목격하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론슨은 단숨에 도시에서 가장 바쁜 DJ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스타들이 가득한 파티에서 턴테이블을 돌리고 유명 인사들과 어울리며 평생 동경하던 음악적 우상과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들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타미 힐피거가 주최한 ‘음악과 패션의 결합’ 쇼핑몰 투어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무대에는 알리야, 케이트 허드슨, 사이먼 렉스, 키다다 존스 그리고 그녀의 동생 라시다 존스까지. 1990년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담은 그 투어 영상은 요즘도 알고리즘 속에서 되살아난다. “지금 같은 시대엔 그런 일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어요.” 론슨이 회상한다. “당시 겨우 스물한 살이던 라시다 존스가 18세에서 22세 사이의 우리를 이끌고 애틀랜타의 거대한 쇼핑몰에 나타나면, 우리는 저메인 듀프리의 트랙을 틀고, 그 위로 사람들이 런웨이를 걸어 다녔죠. 정말 이상하고도 멋진 시대였어요.”

2000년대 초가 되자, 론슨은 뉴욕 곳곳에 등장하는 대세 인물이 되어버렸다. 언론이 그의 직업을 새롭게 규정하며 ‘셀러브리티 DJ’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2001년 영화 <주랜더>에도 본인 역할로 출연했다. “벤 스틸러가 쓴 시나리오 안에 제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고, 아 정말 대중문화 속에 제대로 들어왔구나 싶었어요.” 그는 회상한다. 하지만 론슨은 동시에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진정성도 쌓고 있었다. “음악을 사랑한다면 정말 짜릿한 시기였어요.” 그가 말한다. “비기, 우탱, 제이지…. 뉴욕이 음악의 중심지였던 마지막 시대죠.” 나는 론슨에게 “그런 본인이 원조 한나 몬타나였다고 느끼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일리라는 사람과 그녀의 음악은 잘 알지만, 그 시트콤 자체는 거의 몰라요.”(론슨은 마일리 사이러스(Cyrus)의 2020년 앨범 <플라스틱 하츠(Plastic Hearts)>에서 세 곡을 함께 작업했다.) 나는 그 시트콤의 설정을 설명했다. 그 작품에서 사이러스는 평범하고 반듯한 10대 학생이지만 사실은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활동하는 비밀 팝스타라는 이중생활을 한다. 론슨은 그 설명을 듣고 바로 이해했다.(가발 부분만 빼고.) “저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가 말한다. “그때쯤엔 이미 밤이 저를 완전히 삼켜버렸거든요.”

론슨의 엄마는 공연이 끝난 뒤 프로모터들에게 아들을 택시에 태워 보낼 때마다 몰래 전화 한 통 달라고 당부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어린 시절은 디즈니 채널에선 절대 방송되지 않았을 삶이었다. 중서부의 평온한 교외에서 자란 나에게 론슨의 성장기는 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밤은 자는 시간이고 늦게까지 깨어 있는 건 말 안 듣는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론슨이 기억하는 밤은 전혀 달랐다. “그때의 밤은 파티였고, 음악이었고, 모두가 장난기 어린 분위기였어요. 아이였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짓궂었지만 동시에 가벼웠죠.” 가정생활도, 학교생활도, 뉴욕에서의 삶도 혼돈 그 자체였지만, 믹싱을 할 때만큼은 달랐다.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 자란 나에게 DJ 부스는 완벽한 은신처였어요. 혼자서 조종하는 지휘본부 같았죠. 페이더 하나, 다이얼 하나로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그의 책 <Night People>에 사운드트랙이 있다면 어떤 곡이 담길까? 내가 묻자, 론슨은 곧바로 다섯 곡을 쏟아냈다.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 “제가 인생에서 처음 DJ를 한 곡이에요. 어머니 결혼식에서 틀었죠. 춤추는 어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았어요. 아, 내가 뭔가 제대로 해냈구나.” 피트 록 & C.L. 스무스의 ‘They Reminisce Over You (T.R.O.Y.)’. “제가 처음 힙합에 사랑에 빠지게 만든 곡이죠.” AC/DC의 ‘Back in Black’. “치타라는 클럽에서 월요일 밤 파티에 틀었어요. 엄청난 모험이었죠. 솔직히 맞아 죽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히 폭발했어요. DJ로서 제 커리어의 큰 전환점이 됐죠.” 노토리어스 B.I.G.의 ‘Hypnotize’. “인터넷 시대 이전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럽에서 처음 듣는 음악에 반응하곤 했죠.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때 400명이 동시에 그 에너지를 느끼는 장면을 아직도 기억해요.” 니카 코스타의 ‘Like a Feather’. “제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레코드예요. 어느 밤 이 곡을 틀고 있는데, 제 우상 DJ 프리미어가 부스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너무 긴장했죠. 그런데 그가 ‘좋다’고 해줬어요.”

히트곡 ‘Uptown Funk’를 함께 만든 브루노 마스와.

히트곡 ‘Uptown Funk’를 함께 만든 브루노 마스와.

론슨은 202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제임스 셰필드-드위스(일명 DJ 블루 젬즈)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공연한 뒤 <Night People>을 쓰기로 결심했다. 추모식 당일, 그는 오래된 레코드들을 뒤적이다가 오랜만에 본 인디 힙합 트리오 트렌드 오브 컬처(Trends of Culture)의 켈리 그린 색상 앨범 한 장을 발견했다. 그는 1993년 록 앤 소울 DJ 상점에서 그 앨범을 5달러에 샀던 기억을 떠올렸고 자신의 모든 레코드가 단순히 음악적 취향뿐 아니라 더 크고 깊은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형성해온 사람, 장소,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친구들 중 몇몇은 이제 세상에 없었고, 그는 그 기억들마저 희미해지기 전에 그 시기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게 바로 모든 걸 제 자리로 딱 맞춰준 계기였어요.” 론슨은 말한다. “이 기억들을 빨리 적어두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 같았거든요.”

론슨이 결국 써내려간 것은 음악이 그의 삶에 열어준 수많은 관계와 경험의 지층 속에 숨은 어떤 더 깊은 진실이었다. 그는 치료사에게 이 책이 ‘연결의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다소 뜻밖이었다. 치료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연결이라고요?” 론슨은 덧붙인다. “치료사는 ‘당신에게서는… 글쎄요, 연결보다는 강박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라고 했죠.”


Credit

  • 글/ Derek C. Blasberg
  • 사진/ Ann Dexter-Jones, Getty Image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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