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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를 총괄한 큐레이터 콜렉티브 CAC 인터뷰

한국관 설립 30주년. 우리나라 건축전 참여 이래 최연소 공동 예술감독.

프로필 by 손안나 20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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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를 총괄하는 예술감독 CAC는 우리나라의 건축전 참여 이래 최연소 공동 예술감독이다. 한국관 설립 30주년을 맞이해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다.


큐레이터 콜렉티브 CAC. 왼쪽부터 김희정, 정다영, 정성규.

큐레이터 콜렉티브 CAC. 왼쪽부터 김희정, 정다영, 정성규.

1995년 한국관 건립 당시 자르디니 공원 안의 나무를 보존하고 시민에게 쉼터로 개방해야 하는 등 여러 제한 조건이 있었다. 일반적인 전시관 같지 않은 철골조의 비정형 유리 건물은 저평가된 공간이라는 평과 특수한 공간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김희정 “거의 설계가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들여다보니 한국관에만 적용된 조건은 아니었다. 자르디니는 공원이기 때문에 수목을 보존해야 하는 당위가 있다. 베니스라는 도시가 생성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한국관을 짓기 어렵게 하는 한계가 아닌, 도시가 생존하기 위한 기본 바탕이자 조건이었다. 오히려 타 국가관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발견한 것 같았다. 나 역시 전시관스럽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했고, 많은 빛이 쏟아지고 곡률과 모서리가 많은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관 역시 분명한 의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의 결과물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공간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정성규 입면, 그러니까 건물의 첫인상이 매번 다르다는 것. 옥상을 올라갈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다른 국가관들은 옥상을 이용할 수 없는데 한국관은 옥상에서 주변 자르디니의 모습이라든지 베니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Intelligens. Natural. Artificial. Collective’라는 주제를 한국관 전시에 어떻게 수용했나? 정다영 어느 순간부터 대주제에 전시 방향을 맞추는 관습이 다소 흐릿해졌다. 10년 전만 해도 강한 요청이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관별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주제 발표도 늦어져 따르기 쉽지 않은 구조이기도 했다. 다만 흥미로운 건 제시된 키워드 중에 ‘콜렉티브’가 있는데 큐레이터인 우리들 자체가 콜렉티브라는 점이다. 또한 우리 전시가 자연에 대응하는 집단 지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전시 주제와 자연스럽게 조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껍아 두껍아’는 한국인이라면 잘 알고 있는 집 짓기 노래다. 다분히 한국적인 소재에서 전 세계 관람객과 공명하기 위한 지점을 어디에서 찾았나? 정다영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굳히기 전에 ‘나무의 집’이라는 가제가 있었다. ‘한국관’이라는 건축물을 화이트큐브 전시장이 아닌 집이라는 대상으로 보면서 준비했는데 ‘나무의 집’이라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좀 오해를 받더라. 목조 건축에 대한 전시인지 친환경에 대한 전시인지 반복되는 질문을 받아오다 우리가 하려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퇴색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를 했다. 한국만이 가진 고유의 레이어를 통하면 거꾸로 한국적인 것에 갇히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를 더 강하게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도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했다. 그때 마침 로제의 ‘APT.’라는 노래가 확 뜨고 있었다. 아파트라는 한국적인 주거 환경을 생각하다 ‘두껍아 두껍아’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렸고 가사를 좀 더 들여다보니 전시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정말 잘 맞았다. 또 두꺼비라는 동물의 상징이 동서양 공통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재생과 변화라는 의미를 담아 전시를 매개하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화자로 두기도 했다.


한국관 모형과 초기 구성 ⓒ 김석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기증: 김석우).

한국관 모형과 초기 구성 ⓒ 김석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기증: 김석우).

집에 명패를 달듯 한국관의 존재를 명명하는 데 지하, 지상, 옥상과 주변의 수목까지 구석구석을 활용했다. 정다영 보통 건물이 완성되면 설계자의 이름이나 완공 연도를 쓴 명패를 건다. 그런데 한국관은 그런 게 없는 임시 건축물 같아 보인다. 건물의 형상 자체가 배 같기도 하고 정자 같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던 이런 형상이 만들어진 이유를 기획자인 우리는 알지만 관람객들은 알기 어렵지 않나. 30년 가까이 한국의 수많은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들이 지나갔던 곳이고 “이곳에는 이런 얘기가 있어, 그러니까 이런 이름이 주어져야 마땅해”와 같은 제스처를 하고 싶었다. 파빌리온이라는 단어 자체가 임시 건축이라는뜻인데 어떤 걸쇠를 거는 느낌으로 애정을 담아서 호명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김희정 옥상 공간 같은 경우 초기 설계 단계였을 때부터 도면에 ‘제4 전시실’이라고 명명이 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던 원형 계단이 없어지면서 단절된 외부가 되었고 사실상 전시실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공원을 찾는 외부인에게 쉼터로 개방해야 하는 공공의 목적을 갖고 지어졌으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 전시와 공공의 목적을 둘 다 충족시키려고 했다. 나무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무를 대하는 국가관들의 태도가 다양하고 재미있다. 스칸디나비아관 국가관들 같은 경우 건물 안으로 나무를 품고 있다. 캐나다관은 온실처럼 나무를 보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관은 나무를 피하기 위해 생긴 여러 굴곡이 있다. 나무라는 주제를 설정함으로 국가관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시선이 생겼고 그 안에서 한국관의 특징을 깊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다미, 양예나, 박희찬, 김현종 네 작가를 선정한 이유는? 정다영 일단 우리와 비슷한 세대의 작가들을 선정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건축가의 작품을 보여줬기에 동 세대와 함께 대화와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전시를 열고 싶었다. 두 번째로 건축 전시에서 건축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시에 더 비중을 뒀다. 전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건축가 중에 선별했고 성비도 맞췄다. 이다미 작가는 앞으로 한국 건축계에서 굉장히 유니크한 존재가 될 것 같다. 건축이라는 남성적인 작업에서 여성주의적 시각의 건축과 주변부에 대한 관심으로 서사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양예나 작가는 이탈리아 건축가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면서 설치 작업을 하는데 건축의 사적인 기억을 공간으로 풀어가려는 방식에 관심이 갔다. 박희찬 건축가는 굉장히 다재다능하다. 빌딩 단위에서 오브젝트 단위까지 스케일을 유연하게 오가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동시대적인 한국 건축의 현주소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김현종 건축가는 섬세한 만들기를 한다. 소위 말하는 손맛과 감각이 있다. 건축이 반드시 이론적으로 설명돼야 되느냐? 감각적인 것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선정했다. 네 명의 작가는 기존 한국 건축의 뿌리 깊은 서사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성규 정보와 자료가 정리돼 있는 상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당시 한국관 공동 설계자인 프랑코 만쿠조의 아카이브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작가들과 함께 해석하고 재미난 지점을 찾아내며 공유했다. 모두 함께 베니스를 다녀왔을 때도 단순한 답사의 차원이 아니라 내용을 확장시키고 연결고리들 만드는 경험을 한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새로운 지점이 아닐까 싶다.


한국관 준공 당시 전경 ⓒ 만쿠조&세레나 건축사무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한국관 준공 당시 전경 ⓒ 만쿠조&세레나 건축사무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제공.

‘CAC 리딩룸’이라는 공간을 운영 중이다. 첫 공간 프로젝트이자 책을 매개로 건축을 탐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리딩룸을 통한 활동이 비엔날레 전시를 준비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정다영 리딩룸 프로그램은 건축가들만 초대하는 자리가 아니다. 리딩룸 활동과 이번 전시의 연결점은 리딩룸을 통해 다양한 시각 문화 예술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웠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시를 꾸렸다는 것이다.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비디오그래퍼들과 협업하고 있는 지금 훨씬 수월하게 소통하고 있다.

5월부터 비엔날레가 시작된다. 앞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달해준다면. 정다영 아까 얘기한 것처럼 콜렉티브로 전시를 만드는 국가관이 많아 다양한 큐레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전시들이 어떤 모습일지 나 또한 기대된다. 건축이라는 게 결국 사회적 의제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국제적인 이슈들이 있지 않나? 기후 위기나 전쟁과 분쟁을 스쳐 지나가는 주제들이 많은 것 같고. 근 10년을 쭉 지켜봤는데 예전에 비해 구현하는 매체가 굉장히 세련되어졌다. 기존 건축 전시에서의 경험보다 조금 더 진화된 다른 모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규 대주제에 포함된 AI나 자연과 같은 키워드를 직관적으로 얘기하기보다 경유하면서 풀어낸다. 생태학자나 지리학자처럼 건축 외 분야에 종사하는 구성원들의 참여가 흥미롭다.

건축은 지속과 탄생이 교차되는 상징적인 분야다. 이런 흐름 안에서 건축이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정다영 일반적으로 건축의 모습이라는 건 완공된 직후의 모습이 지배적이다. 이번 건축전 전시도 한국관의 30년 전 과거보다 이후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가 핵심이었다. 건축을 훨씬 더 생애 주기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사라지는 건축과 어떻게 잘 작별할 수 있을까, 건축의 풍화는 어떻게 진행될까, 건축이 늙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CAC 역시 당분간 이런 주제의 작업을 할 것이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한국관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들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의 구성원 정다영은 건축 잡지 <공간> 에디터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으며, 현재 건국대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김희정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코디네이터를 거쳐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정성규는 원예가로도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다. 세 사람은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 부큐레이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각각 참여했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김연제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