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82세 할머니 모델을 아시나요?

모델 최순화가 말하는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드는 법

프로필 by 정혜미 2025.01.06
코트는 Coach. 귀고리는 & Other Stories. 반지는 개인 소장품.

코트는 Coach. 귀고리는 & Other Stories. 반지는 개인 소장품.

1943년생 모델 최순화
세월의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풍성한 백발, 시간의 훈장이 새겨진 단정한 피부, 부지런함이 엿보이는 건강한 몸매까지. 모델 최순화의 첫인상은 흐르는 시간을 거스르려 애쓰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 아름다움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 것, 이는 얼마나 어려우며 용기 있는 일인가.
일각에서는 그가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꿈을 좇을 여유가 있었다고 추측하지만, 최순화는 누구보다도 인생의 굴곡을 겪어왔다. 빚을 갚기 위해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던 중 한 환자로부터 시니어 모델을 권유받았으나, 현실의 벽에 막혀 그 여정을 시작하는 데 4년이 걸렸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간병 일을 병행하며 병원에서 숨죽여 워킹 연습을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 72세에 시니어 모델로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최고령자로 미스 유니버스 코리아 무대에 올랐다. 삶의 풍파가 빚어낸 단단한 내면의 우아함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퍼스 바자 여든한 살에 미스 유니버스라는 큰 대회에 참가하셨어요. 나이가 많을수록 도전에 소극적이기 쉬운데 말이죠.
최순화 나이를 의식하거나 특별히 한계를 느끼지는 않지만, 나이 들수록 남은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요. 7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미인대회에서 연령 제한이 폐지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죠. 그렇지 않으면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퍼스 바자 참가해보니 어떠셨나요?
최순화 마냥 즐겁고 감사했어요. 외신에서도 인터뷰를 오는 꿈만 같은 날들이었죠. 딱 60살 어린 참가자와 짝을 이루었는데 그 친구도 즐거워하니 희한한 거예요. “선생님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하퍼스 바자 처음 모델을 제안받았을 때 ‘이 나이에 무슨…’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최순화 마치 잠에서 번쩍 깨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사느라 잊고 있던 꿈을 일깨워준 기분이랄까? 어릴 적부터 극장을 자주 다녔고, 한편으로 배우를 꿈꿨어요. 할머니가 늘 데리고 다니셨지. 우리 할머니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 싶어요.
하퍼스 바자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최순화 솔직히 모델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이들과 부지런히 사느라 나이를 의식하거나 한탄할 겨를이 없었어요. 지금은 세월을 몸소 느껴요. 피부에서 수분과 근육이 빠지는 게 보이죠. 그러나 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물론 모두가 좋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응원해주는 분이 대부분이지만, 우려나 부정적인 말을 하는 이들도 있죠. 그런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80세 할머니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해?’라는 용기를 갖길 바랄 뿐이에요.
하퍼스 바자 요즘엔 노화를 부정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슬로에이징’을 추구해요.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최순화 솔직히 특별할 건 없어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걷기 운동을 하고, 아침에 채소와 달걀을 섭취해요. 생선을 좋아해서 고기보다는 주로 생선을 먹고요. 챙겨 먹는 영양제도 없어요. 아, 빵순이였는데 빵을 끊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밀가루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더군요. 동네 파리바게뜨를 지날 때마다 풍기는 빵 냄새에 얼마나 고민이 되던지.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건 이 나이에도 어려운 일이에요.(웃음)
하퍼스 바자 피부 관리는요?
최순화 토너, 에멀션, 크림, 자외선차단제 정도만 사용해요. 클렌저를 안 써봐서 세안 시에는 도브 비누를 쓰고요. 몸이 건조할 땐 바세린을 바르는 정도예요.
하퍼스 바자 시술을 받으신 적도 없다고 들었어요.
최순화 나이에 맞게 주름도 좀 있어야지, 팽팽하게 펴면 보는 사람도 거북스러워. 물론 주름이 보기 좋지는 않아요. 그건 당연해. 하지만 주름은 삶의 경험이 남긴 흔적이에요. 한 번에 찾아오진 않죠. 주름 하나하나에는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사실은 귀한 거예요. 모든 사연을 겪고 극복했다는 의미이니까. 또 ‘엄마도 이렇게 늙어갔구나, 그땐 엄마의 심정을 몰랐네’ 하고 부모 세대와 교감하는 도구이기도 해요.
하퍼스 바자 성격은 얼굴에서 나타나고, 5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최순화 내면의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다는 데 동의해요. 나 역시 40대까지는 인상이 강했어요. 말 붙이기 어렵다고 할 만큼 고약했던 거지. 50대에 큰일을 겪으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려놓는 연습을 했어요. 물론 불행이 찾아왔을 땐 매우 고통스러워요. 자신을 책망하거나 자식을 원망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삶이 다 비슷하잖아요. 안 좋은 상황이 왔다가도 또 좋은 일이 찾아오고. 그럴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다’라고 받아들이며 생각을 바꾸려고 해요.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아요. 긍정적인 생각도 훈련이 필요해요. 계속 노력하면 그 노력이 결국 내 것이 되죠.
하퍼스 바자 긍정적인 사고가 건강의 근원인 것 같아요.
최순화 부정적인 생각은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요. 찡그리니 주름이 생기고, 건강에도 당연히 이상이 생기죠. 갱년기에 노화가 급속도로 찾아오는 것처럼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걱정거리나 부정적인 생각들은 빠르게 청소해야 해요.
하퍼스 바자 마음을 청소하는 방법을 추천해주세요.
최순화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책을 많이 읽어요. 사색이나 명상을 하기도 하고요.
하퍼스 바자 최순화에게 나이란 무엇인가요?
최순화 나이가 사람을 좀 가르쳐. 젊었을 때는 내 잘난 맛에 살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해도 이해하게 되고, 질투하기보다 인정하게 될 줄도 알고요. 나이는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어요.
하퍼스 바자 멋진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요?
최순화 배려해야 해요. 나이 들어보니까 타인을 배려한다는 게 참 쉽지가 않아요. 지내온 시간만큼 고집이 세지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기 쉽거든.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리고 나이를 권력으로 여겨서는 안 돼요.

Credit

  • 사진/ 영배
  • 헤어/ 경민정
  • 메이크업/ 유혜수
  • 스타일리스트/ 이명선(Tikitaka)
  • 어시스턴트/ 안나현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