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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배우가 남기고 간 것들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김수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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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삶의 이치를 알려준 한 배우의 부고를 접하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쓴 추도사에 가깝다. 작은 단역에서 출발해 묵묵히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며 자신이 곧 독보적 장르가 된 배우. 이 사실은 그가 떠난 자리에 남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와 힘이 된다.
세상은 어깨 펴고 입꼬리 올리며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라고 외치라 한다. 하지만 뼈아픈 사실은 우리 모두가 주연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깨닫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지만,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 삶이 편해졌다. 남들을 앞질러야 성에 차던 과거와 달리 가장자리에 마음을 둔다. 작고 큰 역할이 합을 이루며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현장에서 직접 깨지고 부서지며 배우며 얻은 교훈이기는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이나 쓸데 없는 에고(ego)를 버리지 못했다면 늘 괴로웠을 것이고, 오래 방황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변방의 멋짐을 아는 이에게 일종의 동질감에서 오는 호감을 느낀다. 배우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쓰임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비롯한 작품 선택, 맡은 배역이 ‘되고야 마는’ 직업인. 배우를 좋아하게 되는 지점은 늘 이곳에서 출발하곤 했다.
그를 처음 본 건 문화방송(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였다. 낯이 익던 최불암 아저씨보다 일용엄니에게 눈길이 자꾸만 갔다. 몇 년이 훌쩍 지나 삼십 대 초반의 배우가 노인 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걸로 짐작된다. 노역이 싫어서 촬영장을 뛰쳐나가 도망간 적이 있었다고 고백도 했으니. 하지만 이미 작은 배역이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까지 멀리 내다봤던 것 같다. 깍두기 역할도 괜찮으니 이왕 망가질 거 더 망가져 보자는 마음으로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촬영에 임했다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이후 배우는 엄마나 할머니 역할을 부지런히 맡으며 연기파 중년 배우로 뇌리에 각인되었다.
배우의 연기를 특히 좋아했다.그는 온몸으로 연기한다.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여성을 진솔하게 그린다.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고집이나 몸을 사리는 일은 전혀 없다. 특유의 솔직함과 자유로움이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같이 화를 낼 때 ‘쌍욕’ 퍼붓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욕설’은 배우의 연기를 설명하는 메인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불쾌하지 않다.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다. “옘병”이라고 읊조리는 목소리가 일용이를 부르는 엄니의 목소리와 포개져 푸근하다. 자칫 촌스럽고 억지 눈물을 쥐어짜는 한국식 상업 영화의 억지 설정마저 그의 연기가 얹어지면 무장해제된 웃음과 함께 요상한 설득력을 얻곤 했다.
다수의 조연을 통해 탄탄해진 배우의 업력은 단연 2005년 방영된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빛을 발한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의 자아를 완전히 벗어 던진 채. 그가 연기한 이사벨은 20대 나이에 남자에게 정기를 빼앗겨 50대가 된 슬픈 뱀파이어였다. 아름다운 드레스와 화려한 장신구로 한껏 꾸며 여성성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소주를 한 손에 들고 병나발을 분다.) 그가 부른 젠틀맨송은 국민 유행가가 되었으며 수많은 유행어를 남겼다. 존재만으로 웃음을 보장하는 코믹 연기의 아이콘이 되었다. 비로소 일용엄니를 넘어선 ‘캐릭터 있는’ 배우로 우뚝 성장한 것이다. 애초에 그가 연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모습도 모성에 한없이 기대는 것이 아닌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마음껏 펼치는 주체적 배우였을 거다.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뜯어 봐도 엄마 자아에 머문다기 보다는 ‘본캐’가 따로 있는 입체적 인물을 주로 맡았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 영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의 배역이 그랬다. 가장 최근 며느리 서효림과 함께 출연한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 그는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상상을 마음껏 펼친다. 이처럼 배우는 여성성과 모성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망가지고 비웃음 사는 일도 마다했다. 가끔 균형을 놓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인기를 등진 채 “더 이상 코미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대중 앞에서 당당히 선언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국민 엄마, 코믹 연기의 대가, 요리 솜씨 좋은 사업가, 따뜻한 마음과 손이 큰 대선배….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정말 많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 진정성 넘치는 배우였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지난 25일 75살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김수미 이야기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 김수미는 거침이 없었다. 30년 넘게 한 길을 걸으며 조그만 체구를 불태웠고, 주어진 배역보다 훨씬 큰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자신을 내던지면서 타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고인 덕분에 티브이와 스크린 앞에서 우리는 시원하게 욕하고, 호탕하게 웃고, 한없이 울었다.
세상은 어깨 펴고 입꼬리 올리며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라고 외치라 한다. 하지만 뼈아픈 사실은 우리 모두가 주연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깨닫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지만,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 삶이 편해졌다. 남들을 앞질러야 성에 차던 과거와 달리 가장자리에 마음을 둔다. 작고 큰 역할이 합을 이루며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현장에서 직접 깨지고 부서지며 배우며 얻은 교훈이기는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이나 쓸데 없는 에고(ego)를 버리지 못했다면 늘 괴로웠을 것이고, 오래 방황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변방의 멋짐을 아는 이에게 일종의 동질감에서 오는 호감을 느낀다. 배우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의 쓰임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비롯한 작품 선택, 맡은 배역이 ‘되고야 마는’ 직업인. 배우를 좋아하게 되는 지점은 늘 이곳에서 출발하곤 했다.

사진/ MBC 제공
배우의 연기를 특히 좋아했다.그는 온몸으로 연기한다.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여성을 진솔하게 그린다.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고집이나 몸을 사리는 일은 전혀 없다. 특유의 솔직함과 자유로움이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같이 화를 낼 때 ‘쌍욕’ 퍼붓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욕설’은 배우의 연기를 설명하는 메인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불쾌하지 않다.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다. “옘병”이라고 읊조리는 목소리가 일용이를 부르는 엄니의 목소리와 포개져 푸근하다. 자칫 촌스럽고 억지 눈물을 쥐어짜는 한국식 상업 영화의 억지 설정마저 그의 연기가 얹어지면 무장해제된 웃음과 함께 요상한 설득력을 얻곤 했다.





사진/ Ose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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