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작고 날카로운 토템을 만드는 조각가, 황수연

황수연 작가가 검게 칠한 종이로 만든 납작한 조각은 타인의 안위를 기원하고 애도의 순간을 마련한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4.10.26

취미로 옷을 만든다고. 옷 짓는 취미가 대표작인 <종이 몸> 시리즈로 발전한 과정에 관해 듣고 싶다. 옷을 만들 때 겨드랑이, 엉덩이, 등 같은 부분을 위해 재단용 곡선자를 사용하는데, 곡선자를 쓰면서 자가 그리는 선이란 게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동세를 축적한 데이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 날 곡선자를 이용해 종이로 입체 형상을 만들어 세워봤는데 그 조형성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어떤 생명체를 떠오르게 하지만 전형적인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덩어리에서 인간성을 감지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미숙하고 불완전한데도 강렬함이 있어서 특유의 표정을 따라가다가 <종이 몸> 시리즈가 나왔다.
5~6년간 여러 전시에서 지속적으로 <종이 몸> 시리즈를 보면서 아주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똥파리, 넙치, 인간 등을 닮은 입체 작품들은 코믹한 동시에 구슬펐는데 무엇보다도 야생적이었다. 이런 복합적인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글쎄, ‘야생적’이라고 하니, 인류가 유구하게 지속해온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행위에 관심이 많다는 걸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종이접기, 요리하기, 모래성 쌓기, 칠하기, 옷 입기 같은, 너무나 당연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행위 말이다. 나는 조각가보다는 ‘만드는 사람’이라고 불리고 싶다. 나에게 만들기는 존재할 수 있는 방식과 그 조건을 이해하는 일이다. 신체가 어떤 물질에 닿으면 물리적인 마찰이 일어나기 마련이기에 촉각적이고 동력이라는 게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계와 변화를 조각화하는 게 나의 작업인데, 중요한 건 생활하듯이 만들고 싶다는 거다. 빨래를 개고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하는 일상 행위를 통해 삶을 이해하듯이 궁금하면 만들어보면서 이해한다.
그런데 취미로 만든 옷을 실제로 입기도 하나? 그렇다. 만든 옷을 입고 다닌 흑역사가 있다. 바지는 만들기가 까다로워 원피스가 대부분이었다. 전문적으로 기술을 배워 만든 옷이 아니다 보니 실밥이 다 터져 있기도 하고 마대를 뒤집어쓴 것처럼 사이즈가 엉망이기도 했다.(웃음)

황수연, <작은 밤에 날카로운 예쁜 눈으로>, 2023, 부조.

지난 프리즈 서울 2024에서 지갤러리와 선보인 솔로 부스가 인상적이었다. 유례없이 키가 큰 ‘종이 몸’은 다이빙 보드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고 여러 점의 모래 조각은 물속에 잠겨 있는 그 독특한 풍경에 한참이나 부스를 떠나지 못했다. 물에 담긴 것들은 모두 소장되었다. 모래 조각 시리즈를 만들 때면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그간 작은 사이즈로만 만들다가 이번에 크기를 키워보았다. 모래라는 재료는 가변적으로 되려고 하는 저항성이 크다. 말하자면 덩어리였던 시기를 지나온 재료로, 돌이나 점토보다도 원초적이다. 나는 그걸 다시 예전으로 돌려놓아 재료의 본래 물성을 거스르는 셈이다. 그 야생의 재료에 현대의 화학 약품인 본드를 더해 형상을 만들고 레진을 입히는 과정을 해나가면서 이 조각이 마치 세라믹을 흉내 내는 것 같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재밌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섯 점의 모래 조각은 중력에 반응하며 가라앉고, 몸집은 거대하지만 막상 들어보면 가볍고 연약한 ‘종이 몸’ <블랙 이펙터>는 다이빙대 끝에 서 있다. 인간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잖나. 그와 같은 인간 군상의 해학적인 순간을 재료와 질량의 대비를 통해 묘사하고 싶었다.
지난 9월 말 끝난 지갤러리 개인전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들»에서는 최근 작업한 부조 작품을 중점적으로 선보였다. 이 시리즈의 탄생부터 지켜봤고 이번 개인전을 기획한 장혜정 큐레이터에 따르면 “이름 없이 태어난 종이 콜라주는 한때 ‘녹는 점’이라고 불리다가 어느 순간 ‘작고 날카로운’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큐레이터는 작업의 제목이 바로 지어지지 않고 뒤늦게 따라오는 시차가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 관해 듣고 싶다. 2020년 누크 갤러리에서 작업실을 공유하는 박광수 작가와 작업실 이사 전에 오픈 스튜디오 개념으로 드로잉 전시 «기대는 그림»을 하게 됐다. 그때 전시의 기획이 평소에 하던 작업과 다른, 드로잉으로 만들어낸 흑백의 세계였다. ‘입체’를 하던 내 경우엔 ‘평면’에 도전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녹는 점>이 시작됐다. 평소 작업실에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만든 도면을 중첩해서 걸어놓는다. 이때 여러 부분에 칼집을 내서 납작하게 찌부러뜨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조각이 녹아서 죽어 평평해지는 듯했다. 눈사람이 녹아 내리듯이 말이다. 우뚝 서 있던 조각이 쓰러지는 모습에 노출된 상태에서 평면 작업에 대한 요구를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 기억이 작업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즉흥성과 유희성이 가득한 <종이 몸, 종이 얼굴>이 ‘녹는’ 순간들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정도의 작업이었고, 자연스럽게 <녹는 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후 <녹는 점>의 향방에 관해서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한 채 일정 시간이 흘렀고 어느 여름, 범죄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작업을 하는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약자에 대한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묘사하는 세태에 분노하고 슬퍼하고 전이된 공포감에 떨면서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조각칼, 식칼, 포크, 메스, 샤프 등 긴급한 상황에서는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도구의 형상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에 붙인 제목은 <작고 날카로운>이다.
<작고 날카로운> 시리즈의 모든 작품 뒷면에는 작업하면서 떠올리거나 참조한 몇 세기 전 석상의 신체 한 부분의 사진을 붙여놓거나 제목과 연관된 메모 같은 것을 적어놓았다. 액자가 된 상태로 작품을 소장하게 된다면 컬렉터조차도 확인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뒷면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나? 앞서 말한 그런 사건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미술은 너무 연약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남긴 아름다운 신체의 형상이 지닌 주술적인 힘을 작품에 불어넣고 싶었다. 나와 같은 약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토템을 만들고자 했다. 이 뒷면은 볼 수 없지만 존재한다. 사진 이미지는 액자의 패드와 접착하는 부분에 있어서 떼어내 확인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이 뒷면을 위한 책을 따로 만들었다.
지금 얘기한 대로 디자이너 듀오 신신이 디자인한 아트 북 <이름>을 통해 <작고 날카로운> 시리즈의 뒷면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데, <작은 밤에 날카로운 예쁜 눈으로> 뒷면에는 엄청나게 큰 동그란 눈을 가진 두상이, <고르고 평평하게, 작고 납작한 그릇 혹은 날카로운 거울에 누워서> 뒷면에는 성인 남성 조각의 상반신이 붙어 있다는 걸 확인했다. 평소 마음에 드는 고대 조각의 이미지를 프린트해서 보관해두고 보는 편이기도 하고, 이 작업을 할 당시 신체 이식, 텔레파시 같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도 했다. 가깝게는 몇 백 년 멀게는 수십 세기 전에 만들어진 조각의 신체가 지닌 힘을 빌려서 범죄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애도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문명에서 발견된 미술품 가운데 외계인이라고 의심받는, 눈이 과장되게 표현된 조각들이 있다. 이 조각들은 대부분 신전 근처에서 발굴되었는데, 그들은 빛과 어둠을 받아들이는 기관으로서 눈을 중요시했기에 그렇게 크게 표현했다고 한다. 남성 조각의 상반신 부분은 고르고 평평한 근육 표현이 납작한 그릇을 떠오르게 해서 붙여놓은 것이다.

지갤러리에서 열린 황수연 개인전 «파스텔, 총알, 아름다운 손가락» 전시 전경. © Hwang Sueyon Courtesy of the artist and G Gallery Photo: Lee Euirock

공간 설치 또한 무척 공을 들인 듯하다. 전시장에 지은 가건물 안에 <작고 날카로운> 시리즈가 걸려 있고, 건물 안팎으로 길고 좁은 통로, 레진으로 표현한 침수, 벽화 등이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한다. 천천히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디테일이 많다. <작고 날카로운>은 종이가 거의 찢어지기 직전까지 흑연을 덧입혀 검게 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간혹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종이를 검은색으로 채운다기보다 닦아준다는 생각으로 임해서인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사실 그보다는 다음 과정이 더 막막하다. 그렇게 검게 칠해 원하는 형상으로 자른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최종 형태가 나오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 이번 개인전은 <작고 날카로운>이 주가 되는 전시니까 이 작업을 할 때 내가 경험하는 그 모호한 느낌을 풍경으로 풀어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게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고 희미한 상태를 구현하려 했고 동시에 세제 통이나 배드민턴 라켓 같은 일상적인 물건이 예외적인 형상으로 들어와 관객에게 의아함을 주길 바랐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 <작고 날카로운> 시리즈를 걸어놓을 수 있는 임시적 거처로서 집을 지었다. 나를 숨겨줄 수 있지만 바닥에는 어디선가 침범해 들어온 물이 고여 있고 뚫린 천장에서 연약한 빛이 들어오는, ‘셸터’로서 완벽하지는 않은 집 말이다. 집 옆으로는 좁고 긴 통로가 있어서 그 통로 끝에는 두려움에 떠는 나를 기다려줄 누군가가 있을까,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장의 조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조각을 다룰 때 색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색채가 들어오면 회화성이 불거진다. 그보다는 물질의 표면이 지닌 반사광이라든지 윤기, 촉감 같은 것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이번 전시의 조도가 그 점을 정확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해줬다.

안동선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황수연 작가의 <작고 날카로운> 시리즈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옮길 때마다 변하는 질감을 직접 확인하고 아트 북 <이름>을 통해 토템의 증거를 살펴야 한다.

Credit

  • 글/ 안동선
  • 사진/ 이우정(인물), 지갤러리 제공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