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파리에서 만난 에르메스의 여덟 번째 하이주얼리 컬렉션

‘컬러의, 컬러에 의한, 컬러를 위한’. 피에르 아르디의 손끝에서 탄생한 에르메스의 여덟 번째 하이주얼리 컬렉션을 만나다.

프로필 by 윤혜영 2024.07.24

Master of Colors


에르메스 디아프르.

에르메스 디아프르.

아노 바토네.

아노 바토네.

 컬러 플래쉬.

컬러 플래쉬.

때이른 여름이 불현듯 찾아온 파리의 6월. 코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은 도시에 들뜬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파리지앵과 관광객이 뒤섞인 분주한 파리장식미술관 한쪽, 조용한 발걸음으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르메스의 하이주얼리(Haute Bijouterie), 그 여덟 번째 컬렉션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프레젠테이션 행사가 열렸기 때문.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그들만의 리듬과 속도로 컬렉션을 선보이는 하우스답게 거창한 파티 대신 프라이빗한 프레젠테이션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너무도 에르메스다운 행사였다.
고요한 블랙으로 뒤덮인 행사장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비주얼 아티스트 이샴 베라다(Hicham Berrada)의 시노그라피 작품이 맞이했다. 신비로운 에메랄드 컬러로 재해석된 ‘갈로 데르메스’ 반지와 형형색색의 외계(혹은 심해) 생명체가 어우러진 그의 입체적인 영상은 새로운 컬렉션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컬렉션의 이름은 ‘컬러의 형태(Les Formes de Couleur)’. “에르메스의 본질을 구성하는 컬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강렬하고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었습니다. 이 컬렉션은 컬러를 형상화한 컬렉션입니다.”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피에르 아르디의 말이다. 여기에 에르메스 하이주얼리의 뿌리와도 같은 승마 모티프가 어우러졌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색의 이론을 함축한 9가지 챕터가 공개되었다. ‘포르트레 드 라 꿀러르(Portraits de la Couleur)’ ‘프레쉬 페인트(Fresh Paint)’ ‘아르크 앙 꿀러르(Arc en Couleurs)’ ‘에르메스 디아프르(Hermès Diapres)’ ‘수프라컬러(Supracolor)’ ‘컬러 바이브(Color Vibes)’ ‘컬러 플래쉬(Color Flash)’ ‘컬러 아이콘(Color Icons)’ ‘아노 바토네(Anneau Batonnet)’가 바로 그것.
어둠 속에서 고요히 존재감을 드러낸 주얼리들은 형형색색의 컬러를 입고 신선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작품을 감상하듯 천천히 행사장을 둘러본 뒤 피에르 아르디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시종일관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한 피에르와의 대화 속에서 그의 열정과 감각, 독창적인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다.
컬러 바이브.

컬러 바이브.

프레쉬 페인트.

프레쉬 페인트.


하퍼스 바자 여덟 번째 하이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예상과 달리 무척 컬러풀하다.
피에르 아르디 컬렉션을 관통하는 단어가 바로 ‘컬러’이기 때문이다. 2010년 하이주얼리 라인을 시작한 이래 색에 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초창기와 비교해보면 다양한 컬러와 크기의 스톤을 사용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에르메스에게 컬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실크 컬렉션의 컬러 라이브러리에는 무려 7만5천 가지 색상이 보관되어 있다.
하퍼스 바자 컬러 스톤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장 선호하는 스톤은 무엇인가?
피에르 아르디 특별히 선호하는 건 없다. 난 그저 스톤을 컬러 팔레트라 여기고 작업한다. 그림을 그리듯 색을 조합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오늘 선보이는 컬렉션에는 처음으로 그린, 레드, 블루, 화이트 등 컬러 스톤을 동시에 사용했다. 여기에 프레셔스 스톤과 세미 프레셔스 스톤이 마치 아라베스크(Arabesque, 이슬람 문화권에서 발달한 장식 무늬)처럼 깊고 미묘한 생동감을 뽐낸다. 다만 하우스의 가장 상징적인 오렌지 컬러 원석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하퍼스 바자 지금까지 당신의 창조물을 보면 그 시작점이 늘 궁금했다. 이번 컬렉션의 영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피에르 아르디 순수미술을 전공했던 학생 시절 처음 접한 색채이론을 다시 열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색채이론은 색상을 1차색, 2차색, 3차색으로 구성한 기본 구조를 기반으로 색상과의 관계, 상호보완성, 색의 온도를 분석한다. 난 늘 체계적으로 일하는 걸 즐기며 구조적인 것, 명확하고 빈틈 없는 것에서부터 아이디어를 확장해나가는 편이다.
포르트레 드 라 꿀러르.

포르트레 드 라 꿀러르.

아르크 앙 꿀러르.

아르크 앙 꿀러르.

하퍼스 바자 어떤 방식인가?
피에르 아르디 색채이론은 다양한 접근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9가지 챕터로 다채롭게 선보 일 수 있었다. ‘포르트레 드 라 꿀러르’ 챕터를 예로 들어보겠다. 대학생이었던 1970년대, 바우하우스의 순수 이론을 배운 적이 있다. 빨간 큰 사각형을 고정해놓고 몇 시간 동안 명상하듯 바라보면 정사각형 형태가 된다. 파란색은 곡선, 노란색은 삼각형이 되고. 이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색상에 대한 우리 몸의 물리적 반응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눈과 몸의 감성이 가진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신체가 이런 색상의 진동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같은 형태가 나타난다. 이런 색의 실험을 주얼리에 적용해보고 싶었다.
하퍼스 바자 굉장히 흥미롭다. 다른 예도 궁금하다.
피에르 아르디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프리즘의 결정구조가 빛을 굴절시켜 무지개색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이 현상을 시적이면서도 여성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디아프로’다. ‘아르크 앙 꿀러르’는 색상이 얼굴과 몸, 그리고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고, 마치 메이크업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퍼스 바자 컬렉션을 2년마다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피에르 아르디 단순한 이유다. 최고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꼬박 2년이 걸린다. 언젠가 매년 컬렉션을 선보이고 싶다.
하퍼스 바자 2018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얼리 디자인에 대한 접근을 ‘탐험’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
피에르 아르디 이번 컬렉션 역시 마찬가지다. 말 머리를 형상화한 ‘갈로 데르메스’ 반지가 대표적인 예다. 아이코닉한 디자인에 새로움은 더해 사람들이 감탄사를 외치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신비로운 에메랄드 컬러와 컬러 스톤 그러데이션이다. 내 작업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승마와 관련된 어휘를 강화하고 변형하며, 또 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결과물이 에르메스 세계관에 잘 결합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에겐 끊임없는 연구와 창작이 필요하니 말이다.
컬러 아이콘.

컬러 아이콘.

수프라컬러.

수프라컬러.

하퍼스 바자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갈로 데르메스’ 반지와 어우러진 영상 작품이 게스트들을 맞았다.
피에르 아르디 프랑스의 젊은 아티스트 이샴 베라다의 시노그라피 작품이다. 화학적 입자와 물리적 반응을 이용해 시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아티스트다. 아트보다 과학에 가까운 실험적인 텍스처는 마치 아름다운 신세계 혹은 우주 행성을 보는 듯하다. 자신을 화가라고 규정하지만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나는 그의 작품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하이주얼리의 역할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플레이되는 신비로운 사운드는 휘슬러 뮤지션 몰리 루이스(Molly Lewis)의 휘파람 소리다.
하퍼스 바자 이번 컬렉션 중 가장 구현하기 어려웠던 피스는 무엇인가?
피에르 아르디 피스마다 어려움이 있다. 약 1천4백 개의 원석이 사용되는 ‘아르크 앙 꿀러르’의 경우 완성까지 수천 시간이 소요된다. 일부 작품은 오늘 프레젠테이션 8시간 전에 도착했을 정도다. 2년 전에 작업을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나조차 놀랍다. 여러 기술이 동시에 적용되어야 하는 어려움이나 커다란 부피를 가진 제품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것도 도전이었다.
하퍼스 바자 에르메스에서 슈즈 디자이너로 15년을 보낸 후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몇 년 전부터는 뷰티 카테고리의 오브제 디자인까지 겸직하게 되었다. 작업 방식에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피에르 아르디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신체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뷰티의 경우 신체에 그림을 그리는 가벼운 방식이다. 슈즈는 신어보고 발로 걷는 무게감이 존재한다. 주얼리는 스포트라이트처럼 피부에 빛을 비추는 역할이다. 이 모든 작업들의 공통 플랫폼은 신체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Credit

  • 사진/ © Hermès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