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올해로 벌써 61세인 '마크 제이콥스'가 전하는 패션 스토리

지난 40년 동안 개인적이면서도 시대를 정의하는 패션을 구축해온 마크 제이콥스. 그는 “패션을 사랑하고 있다고 깨달은 후엔 결코 그 사랑이 질리지 않게 됐다”고 고백했다.

프로필 by 윤혜연 2024.06.09
(왼쪽부터) 발레리 셰르징거가 착용한 2024 S/S, 우그바드 아브디가 착용한 2011 S/S, 제시카 스탐이 착용한 2003 F/W, 알렉 웩이 착용한 2001 S/S 컬렉션은 모두 Marc Jacobs.

(왼쪽부터) 발레리 셰르징거가 착용한 2024 S/S, 우그바드 아브디가 착용한 2011 S/S, 제시카 스탐이 착용한 2003 F/W, 알렉 웩이 착용한 2001 S/S 컬렉션은 모두 Marc Jacobs.

올해 61세인 마크 제이콥스. 그는 자신이 패션을 꿈꾸게 된 건 그의 브랜드가 성공가도를 달린 40년보다도 훨씬 오래됐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잠들기 위해 양을 세곤 합니다. 대신 저는 라코스테의 레드 코듀로이 셔츠를 접는 걸 상상했죠.” 그는 12~13살 무렵 할머니 헬렌과 뉴욕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살 때 갖고 있던 취침 의식을 회상했다.
우리는 소호에 있는 그의 새하얀 사무실에 앉아 있다. 2009년경 날씬했던 제이콥스의 누드 사진이 한쪽 벽에 걸려 있고, 반대편 책장 아래 바닥에는 1990년대 중반 그런지 스웨터를 입은 제이콥스와 스타일리스트 베네치아 스콧,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 조이 카사베티스가 다 같이 침대에서 누워 찍은 사진이 자리했다. 그리고 지금, 슬릭한 보브 커트를 한 제이콥스가 은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칼하트 후디, 생 로랑 데님 팬츠, 캑터스 플랜트 플리마켓 나이키 슈즈 차림으로 서 있다.
우리가 아는 마크 제이콥스는 수년 동안 변모했던 다양한 모습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1980년대 유명했던 맨해튼 부티크 샤리바리(Charivari) 창고에서 일한 15살짜리 패션광 소년, 현대예술가 엘리자베스 페이튼이 애정했던 우울한 젊은 디자이너, 사진가 유르겐 텔러의 필름 속에서 과감하게 헐벗고 있는 청년…. 그는 루이 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1997년부터 2013년까지 파리에서 화려한 컬렉션을 선보인 후 경건하게 인사하는 유능한 쇼맨이기도 했으며, 뉴욕에서 열린 마크 제이콥스 런웨이 피날레에 소심하게 등장하는 수줍은 디자이너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큰 비둘기 복장 차림을 하면서도, 메트 갈라에선 멋들어지게 드레스업하고 케이트 모스를 에스코트한 사람이기도 하다. 음, 어쩌면 제이콥스의 ‘진짜 일상’ 속 모습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뉴욕 라이 지역 자택에서 남편 찰리 데프란체스코와 사랑을 속삭이고, 진주 목걸이를 한 채 책 <냉혈한(In Cold Blood)>을 읽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책벌레일 수도 있다.
물론 정답은 이 모든 모습이 그라는 것이다. “재창조나 변신이 패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제이콥스가 책상 건너편에서 말했다. 실제로 그의 굶주린 호기심은 그를 동시대 가장 흥미로운 디자이너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매 시즌 변주하며 만들어낸 컬렉션을 통해 패션을 향한 사랑, 끊임없이 창조하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을 실현했다. “컬렉션을 준비할 때 제이콥스는 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뭐든 받아들일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죠. 그의 컬렉션에는 그가 표현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인 디자이너 안나 수이가 증언했다. 제이콥스는 의식주 중 하나로서의 생존재가 아닌, 어떠한 아이디어를 담거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옷을 만드는 몇 안 되는 뉴욕 디자이너 중 하나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엔 감정을 자극하는 순수한 열정이 본능적으로 반영된다. 그는 이 ‘본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어떠한 힘이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나옵니다. 이 에너지는 제 옷을 입은 이에게도 전해지고, 결국 그가 어디로 가든 그 힘이 옮겨가죠.”

2016 F/W 쇼의 레이디 가가. 1989 S/S 쇼에 선 베로니카 웨브와 나오미 캠벨.  2016 F/W  2015 S/S 1994 F/W 제이콥스의 1985년 ‘스케치북(Sketchbook)’ 컬렉션 기념 파티. 2018 F/W 2020 F/W 쇼의 마일리 사이러스.
그의 경력은 패션 브랜드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배우고(또 모방하고) 있는, 일종의 업계 바이블이 됐다. 제이콥스는 1984년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자마자 차후 그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로버트 더피에게 고용돼 컨템퍼러리 라인인 ‘스케치북(Sketchbook)’을 디자인했다. 같은 해 두 사람은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를 설립했다. 제이콥스는 내게 “제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일하리라 예상치 않았다”고 말했으나,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직장’에 ‘재직’하기도 했다. 처음엔 페리 엘리스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의 4년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경력은 1992년 그런지 컬렉션으로 인해 해고되는 결말로 마무리됐다. 이후 그는 LVMH 창립자이자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 제국의 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루이 비통에서 미국인 최초로 프랑스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왕관을 썼다. LVMH 패션 그룹의 전 회장인 시드니 톨레다노는 “디올의 존 갈리아노처럼 마크도 아르노가 감수한 리스크였다”고 회상했다.(LVMH는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의 대다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기업은 결국 그 리스크를 보상받았고, 그 결과 독립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를 뽑아 유럽 하우스 브랜드의 왕좌에 앉히는 것은 이제 흔한 관행이 됐다. 루이 비통에서 제이콥스는 스테판 스프라우스, 다카시 무라카미, 리처드 프린스와 같은 아티스트와 협력해 클래식 ‘LV’ 모노그램을 변형했는데, 이게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럭셔리 브랜딩의 새로운 방법이 됐다.(‘스프라우스 스피디’ 백은 이제 모두가 탐내는,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 됐다.) “제겐 그가 동시대 최고 디자이너 중 하나예요.” 톨레다노가 제이콥스에 대해 묘사했다. “그가 루이 비통에서 한 일은 혁신적이었죠. 기성복에 패션 스피릿과 창의성을 가져왔으니 말이에요.” 그 외에 제이콥스로 인해 패션 업계에서 흔한 관행이 된 것이 더 있다. 소규모 자매 브랜드나 보급형(Diffusion) 라인 출시가 그 예다.(제이콥스는 2001년에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를 론칭했고, 2020년에 후속으로 ‘헤븐 바이 마크 제이콥스’를 시작했다.)
브랜드 마케팅에 영향력 있는 뮤지션과 배우, 감독 등 시대적 예술가들의 스타 파워를 동원하는 것 또한 그의 큰 무기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위해 전반적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제이콥스에겐 일도 아니다. 그들 대부분이 그의 친구이기 때문. “마크는 내게 가족 같은 존재입니다.” 20년 동안 제이콥스를 알고 지낸 릴 킴이 말했다. 패션쇼에서 시작한 그들의 우정은 제이콥스의 스튜디오에서 함께 딸기를 먹는 사적인 순간부터 메트 갈라로까지 이어졌는데, 킴은 자신의 가장 어둡고 힘든 시기에 제이콥스가 보여준 관대한 서포트를 소중히 추억한다. 이어 “그는 당시 제 미래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도 앞서 생각해줬고, 전 그의 그런 마음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그는 절 위해 호화로운 파티를 열어줬고, ‘마크 러브스 킴(Marc Loves Kim)’이라는 티셔츠 라인도 만들어줬죠”라고 덧붙였다.
그의 성공가도나 그가 패션계에 미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스는 상업적 목적을 갖고 쇼를 열거나 컬렉션을 디자인한 적은 없다고 확언했다.(톨레다노는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마크 제이콥스의 브랜드 가치가 가히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특히 루이 비통을 맡을 땐 극장에서의 경험을 추억하며 착수했습니다.” 제이콥스는 회상했다. 또 그는 현대무용가 캐롤 아미티지가 안무를 맡은 2020년 가을 마크 제이콥스 쇼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런웨이이자 완성도 높은 컬렉션 중 하나로 꼽았다. (마치 미국 배우이자 개그우먼인 재키 오를 연상케 하는 1960년대 모드 드레스, 펑키한 플래드 패턴, 메탈릭 텐셀 원단으로 만든 미니 드레스가 등장했던 쇼다.) “꼭 필요한 옷을 소개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고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전달하죠.” 제이콥스가 자신의 패션관에 대해 말했다.


 2024 S/S  2018 S/S 2020 S/S  2013 S/S 1999 F/W 2003 S/S  2021 F/W 2012 S/S 발표를 기념하는 킴 고든과 제이콥스, 소피아 코폴라. 2005년 메트 갈라에서의 제이콥스와 릴 킴. 2009년 메트 갈라에서의 제이콥스와 케이트 모스.
재창조나 변신이 패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제이콥스가 사랑한 건 그의 브랜드 정체성이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시대정신적 분위기를 포착하거나 특정 유형의 여성을 위한 라인을 갖추고, 특정 아이템에 대한 시장 요구에 부응하려 시도한 반면, 제이콥스 컬렉션은 유행을 좇지 않고 전적으로 그의 ‘애정’에 의해 움직였기 때문. 유행을 좇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트렌드를 창조해내거나 전체적인 컬렉션 룩 무드를 정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의미다. “패션을 사랑한다고 깨달은 후엔 패션을 향한 사랑이 결코 질리지 않게 됐어요. 새로운 단어를 배우면 그 단어만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해요. 경험이나 패션도 마찬가지죠. 패션을 사랑할수록 패션 피플이 절 끌어당기고, 저 또한 그들을 끌어당겨요. 저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탐욕을 지닌 듯해요.” 그가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맥락의 성과를 계속해서 이뤄냈다. 2004년 가을, 라운드 칼라와 잘록한 허리 라인의 블라우스를 생각해보자. 이는 제이콥스가 사랑하는 스크린 사이렌(Screen Sirens, 일반적으로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여성 배우를 지칭하는 용어지만 여기선 화려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의미로 표현)에 대한 경의를 표한 것으로, 친구인 조각가 레이첼 파인스타인의 감각적이면서도 우아한 드레스를 본땄다. 영국 재즈 밴드 자미로콰이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패션 저널리스트 린 예거를 오마주한 2012년 가을 컬렉션도 눈에 띈다. 또 2015년 가을 시즌은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타이트한 허리 라인 아래 니하이 부츠를 신은 채 그녀의 시그너처인 붉은색 아파트 거실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며 찬사를 보낸 것이었다. 이 외에도 그의 영감은 다양한 분야에서 엿볼 수 있다. 제이콥스의 런웨이에서 미국 록 밴드 소닉 유스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의 ‘블루 밴드(Blue Band)’ 등이 공연했고, 2005년 가을 시즌엔 애니메이션 영화 <인크레더블>의 침울한 청소년 슈퍼히어로 ‘바이올렛’, 2023년 봄엔 반항적 펑크 정신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뮤즈로 삼기도 했다. 제이콥스의 디자인 역사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히 패션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이콥스 자신을 움직이는 사람, 예술, 아이디어를 엿보는 것이다. 이러한 컬렉션들이 모두 전략적으로 구상한 결과가 아니었던 점 또한 흥미롭다.
제이콥스의 패션쇼가 프로급 공연으로 진화하는 동안 그의 스타성도 대중문화계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98년은 그야말로 마크 제이콥스가 셀러브리티로 등극한 해라고 할 수 있겠다. 그해 ‘VH1 패션 어워즈’에서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패션과 대중문화 간 초기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미국 배우 위노나 라이더가 절도 사건 공개 재판에서 그의 드레스를 입은 2001년, 제이콥스는 이를 계기로 가뜩이나 수적 성장세를 타고 있는 셀러브리티 추종(celebrity-obsessed) 고객들의 관심을 사게 됐다. 2005년에는 모델 제시카 스탐의 이름을 딴 백이 린제이 로한과 비욘세 등 파파라치를 몰고 다니는 ‘잇 걸’의 선택을 받았다. 그의 캠페인과 런웨이 프런트 로에는 점차 더 유명 셀러브리티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2008년 광고에서 빅토리아 베컴은 엄청난 쇼핑 더미 속에서, 2014년 광고에선 마일리 사이러스가 해변에서 생각에 잠긴 채 등장했다. 켄들 제너가 2014년 가을 시즌 제이콥스의 런웨이에서 데뷔하며 엄청난 화제를 몰았고, 2016년 레이디 가가 또한 그의 캣워크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런웨이 밖에서는? 제이콥스는 2007년 <하퍼스 바자>, 칼 라거펠트,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함께 심슨 가족 캐릭터로 만들어질 만큼 대중문화에 상징적으로 뿌리내리게 됐다.(이 캐릭터는 현재 제이콥스의 왼쪽 팔에 타투로 새겨져 있다.) 영화제작자 로익 프리정은 같은 해 다큐멘터리 <마크 제이콥스 & 루이 비통>을 제작하기 위해 몇 달 동안 그를 따라다녔으며, 제이콥스의 사생활은 페이지 식스(page six, 신문에서 유명인의 사생활을 다루는 연예계 페이지)에서 2010년까지 연대기순으로 기록됐다. 그가 휴가를 떠날 때면 자신의 옷을 입은 셀러브리티들과 마찬가지로 파파라치의 포착 대상이 된 건 물론이었다. “매우 우울하고 좋지 않은 상태였을 때, 제게 상처를 준 몇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제이콥스는 약물·알코올 중독이었던 과거와 재활원에서 겪은 어려움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수이는 “끔찍한 시간이었죠. 우리 모두가 걱정할 때가 있었지만, 결코 그가 돌아오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왜일까? “패션은 그가 정말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답했다. “패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도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요.”


(왼쪽부터) 스탐이 착용한 2006 F/W, 아브디가 착용한 2013 S/S, 웩이 착용한 2002 F/W, 셰르징거가 착용한 2024 S/S 컬렉션은 모두 Marc Jacobs.

(왼쪽부터) 스탐이 착용한 2006 F/W, 아브디가 착용한 2013 S/S, 웩이 착용한 2002 F/W, 셰르징거가 착용한 2024 S/S 컬렉션은 모두 Marc Jacobs.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단어를 배우면 그 단어만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한다고 말해요. 경험이나 패션도 마찬가지죠.

제이콥스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기분이 좋아요. 저는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요. 모든 것이 대단하다고 느끼죠. 지난 4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이켜보면 정말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과거 성과만 인상적인 게 아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다. 최근 2024년 봄 시즌은 자신의 다양한 디자인 시그너처를 변형·확장해 응용하기도 했다. 단순한 재탕이 아니다. 2015년 사파리 재킷은 볼륨이 더해진 형태로, 2017년 트랙수트는 아주 길거나 짧게 변주했다. 아이코닉 백 ‘베네치아’의 XXL 버전도 만나볼 수 있었고, 2006년 프롬 드레스와 2008년 초현실적 란제리 룩은 완전히 뒤바뀐 비율로 돌아온 모습이다. 새로운 벨트가 달린 보드 쇼츠, 앞쪽으로 잡아당겨진 어깨가 있는 롤넥 스웨터, 미국 가수 다이애나 로스와 장난감 ‘폴리 포켓’ 그 중간쯤에 자리한 취향의 드레스도 있다. 수이는 “마크 제이콥스는 전설”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마크 제이콥스의 DNA인 셈이에요. 저는 그가 영원히 지속할 자신의 브랜드 아이콘을 잘 확립했다고 생각하죠.”
특히 그는 2016년부터 인스타그램 게시물 거의 모두에 해시태그 ‘#gratefulnothateful
(감사하고 비난하지 않는다)’을 남겼다. 이토록 그가 중요시하는 해시태그는 긍정적 태도를 포용해야 한다는 점을 상키시킨다. 그는 결코 좌절하거나 화를 내며 수건을 던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 그런 감정이 솟구치기도 해요.” 제이콥스가 웃으며 말한다. “이 일을 하는 데 약간의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니까요.” 그는 2008년 봄 시즌, 쇼가 유난히 늦게 시작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던 당시 기분을 회상하며 말했다. “6개월 동안 준비한 7분짜리 쇼가 45분이나 늦어졌어요.”(실제로는 2시간이나 늦게 시작한 이 시즌 이후 제이콥스의 쇼는 정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제이콥스는 불평 대신 좋은 일에 집중하고 싶어한다.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감사해야지’라고 다짐해요. 좋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죠. 잘 먹고,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고, 이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도요.” ‘이게 바로 그 해시태그의 기원’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제 담당 정신과 상담사가 생각해낸 멋진 태도가 있어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일이 잘못돼 우울하다’ 등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글쎄, 당신은 그 초월적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이를 들은 이후 우리(자신과 동료들)는 사무실에서 자주 이런 태도를 취해요.” 제이콥스는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이들 중 다수는 수십 년 동안 그와 함께 일해왔다. “이것이 바로 그 ‘초월적 기쁨’의 순간이에요. 모든 고통과 괴로움, 혼란,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이게 바로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라는 확신이 남는 순간. 정말 멋지죠.”
그가 확신했다. “이 일을 하게 된 건 정말 행운입니다. 앞서 말한 초월적 기쁨의 순간이 자주 찾아오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도래한다는 것, 참 운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아무리 불평하고 신음하고 포기하고 싶더라도, 어쨌든 무언가가 계속 이뤄지고 있어요.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그가 눈길을 돌려 발렌시아가 실버 발레 플랫이 들어 있는 버킨 백을 쳐다본다. 인터뷰 이후 그는 안나 수이, 예술가 제니 홀저와 함께 저녁 식사 약속이 있다. 아마도 그는 주름 하나 없는 생 로랑 스모킹 재킷을 차에 둔 채 내릴 거고, 식사 후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책을 읽을 예정이다.

Credit

  • 글/ Steff Yotka
  • 번역/ 채원식
  • 스타일리스트/ Clare Byrne
  • 사진/ Grace Ahlbom
  • 헤어/ Dylan Chavles(Oribe)
  • 메이크업/ Jen Myles
  • 네일/ Natalie Pavloski(Chanel)
  • 캐스팅/ Anita Bitton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