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코페르니 듀오의 기술 탐방기

스프레이 드레스, 로봇견, 입자가속기. 창의성과 착용감, 그리고 새로운 프랑스식 우아함을 찾기 위한 코페르니의 설립자 듀오, 메이에와 바이앙의 기술 탐방기.

프로필 by 윤혜영 2024.05.12
아르노 바이앙과 세바스티앙 메이에

아르노 바이앙과 세바스티앙 메이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코페르니는 지동설의 아버지인 폴란드 출신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헌정하는 브랜드이자 현재는 창조혁명의 상징이다. CEO인 아르노 바이앙(Arnaud Vaillant)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세바스티앙 메이에(Sebastien Meyer)는 더 이상 평범한 레퍼런스에서 영감받지 않는다.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아이템인 스와이프 백(Swipe Bag) 역시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아이폰의 스와이프 버튼에서 영감받아 탄생했다.
바이앙과 메이에는 2013년 코페르니 펨(Coperni Femme)을 설립했다. 그 다음 해에는 안담(ANDAM) 패션 어워즈에서 크리에이티브 레이블 상을 수상하고 2015년 쿠레주(Courrege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2017년엔 프랑스 테일러링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 혼합을 통해 코페르니를 재출시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기술은 독창성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의 생리학적 구조를 부정하지 않으며, 또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벨라 하디드의 몸에 뿌렸던 페브리칸(Fabrican) 스프레이 드레스(2023 S/S)부터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가 만든 산책 나온 로봇견(2023 F/W) 등 듀오에게 기술은 경험에 의한 현실을 명확하게 해주는 육감, 특히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2023 F/W 피날레 룩인 오버사이즈 재킷과 상호작용을 이룬 로봇견의 퍼포먼스는 안무가 에릭 크리스티슨(Eric Christison)이 맡았다. 기술적인 미래 비전을 위한 기술적인 요소들은 과거와의 소통을 닫아버린 듯 보인다. 하지만 5만 5천 년 전 지구에 떨어진 운석을 이용해 만든 ‘메테오라이트 백(Meteorite Bag)’과 장 드 라 퐁텐의 <늑대와 어린 양>, 샤를 페로의 <빨간 망토> 등 동화의 추억(이 동화들을 참고해 2023 S/S 패션쇼를 기획했다)을 통해 코페르니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새로운 역사에 한 획을 긋기 시작했다.

스위스 제네바 CERN 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배경으로 한 2024 프리폴 컬렉션은 연구원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위스 제네바 CERN 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배경으로 한 2024 프리폴 컬렉션은 연구원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하퍼스 바자 파리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어떤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아르노 바이앙 우린 코페르니를 테크노-시크(Techno-chic)라고 정의한다. 얼핏 들으면 대조법으로 보일 수 있다. 모순된 두 단어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프렌치로서의 근간과 클래식한 테일러링 위에 미래적인 테크놀로지를 감각적으로 더하곤 한다. 우리 스타일이 ‘프랑스식’인 이유는 우리의 주체가 되는 여성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녀는 진지하고 문화적 역량이 있지만 완전히 자유분방하고 거리낌이 없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동감한다. 프랑스 스타일은 우아하지만 스트리트 웨어나 스포츠웨어와는 거리가 멀다. 잘 챙겨 입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눈치 채지 않아야 한다. 마치 ‘꾸안꾸’랄까? 가짜 캐주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파티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오피스 룩 같은 것이다. 진지함과 가벼움을 잇는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퍼스 바자 전통적으로 아늑하고 모성적인 이탈리아 여성 이미지와 달리 프랑스 여성의 이미지는 다소 차갑다.
아르노 바이앙 그렇다. 프랑스 여성은 존중을 요구한다. 이탈리아의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우리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어울리지 않는 것에 연관 짓는 것을 좋아한다. 2024 프리풀 컬렉션의 영감을 준 실리콘밸리처럼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은 우리를 유니폼의 세계로 안내한다. 기술과 우아함이 결합된 옷장을 위한 프로젝트는 거기서 시작한다.

하퍼스 바자 메이드 인 프랑스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인가?
아르노 바이앙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발렌시아가, 생 로랑 등 프랑스의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헬무트 랭과 요지 야마모토의 작품에 매료됐지만 쿠레주에서의 경험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시대보다 너무 앞서간 브랜드였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우리의 비전은 아방가르드에 미니멀리즘이고 가까운 미래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작하고 싶다. 일상 속에서 보이기까지 20년을 기다리지 않도록 말이다.


스위스 제네바 CERN 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배경으로 한 2024 프리폴 컬렉션은 연구원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위스 제네바 CERN 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배경으로 한 2024 프리폴 컬렉션은 연구원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패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가까운 미래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입을 수 있는 옷을 제작하고 싶다. 패션이 일상 속에서 보이기까지 20년을 기다리지 않도록 말이다.

프랑스 음악/음향 연구소(IRCAM)에서 2024 S/S 컬랙션.

프랑스 음악/음향 연구소(IRCAM)에서 2024 S/S 컬랙션.

하퍼스 바자 때로는 심플한 디자인이 창의적인 부분에서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젊은 브랜드는 폭발적인 상상력과 새로움을 제안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변장이 아닌 입을 수 있는 옷을 원한다. 우리 일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창의성과 착용감 사이의 중간점을 찾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그 영향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비판이나 조언은 듣지 않는 편이다.

아르노 바이앙 우리 배경에는 쿠튀르가 존재한다. 때문에 미적 측면과 매출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복잡한 옷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욘세가 르네상스 투어 콘서트를 마무리할 때 입었던 금속 자수 망토가 있다. 또 비요크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 투어 콘서트에서 2024 S/S 시즌의 트럼펫 드레스를 착용했다. 이런 작업은 우리 팀원들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 하지만 결국 옷이란 실용성과 기능성에 중점을 둬야 하며 입는 사람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린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도 부담 없는 선으로 책정한다.

하퍼스 바자 요즘 패션은 점점 서사적 측면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아르노 바이앙 우린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페르니 론칭 당시 대표 아이템은 아름답고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그래야 마켓에서 잘 통하니깐. 화려함을 지양했다. 그러다 흥미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팬데믹 속에서 자동차 극장처럼 관람객들이 자동차 안에서 패션쇼를 즐기는 ‘드라이브 인’ 형식으로 극적인 쇼를 기획했다(2021 F/W). 그 다음 시즌에는 벨라의 스프레이 드레스(2023 S/S), 최근에는 UFO를 쇼장에 착륙시켰다.(2024 F/W)
세바스티앙 메이에 현재는 우리가 어디에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옷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최대한 오래 지속되고 시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스토리를 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컬렉션을 위한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진중한 디자인으로 밸런스를 맞춤으로써 관심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아르노 바이앙 때로는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좋다. 패션계에서 놀라움을 자아내는 것은 곧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이한 쇼에서 오직 의류에만 초점을 맞춘 이벤트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솔직하고 옷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프랑스 음악/음향 연구소(IRCAM)에서 2024 S/S 컬랙션.

프랑스 음악/음향 연구소(IRCAM)에서 2024 S/S 컬랙션.

하퍼스 바자 패션업계에 종사하면서 정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세바스티앙 메이에 우리는 팀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주변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만든다. 정직함도 이와 관련이 있다.
아르노 바이앙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CEO로서, 세바스티앙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따른다는 것이 우리의 비결이다. 오른팔의 도움 없이 브랜드를 경영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정신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듀오이고 그 덕분에 현생을 살고 논리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절대적인 착용감을 얻을 수 있는가?

아르노 바이앙 실루엣부터 시작해서 과장된 볼륨감보다는 디테일에 주목한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어깨선을 강조하되 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축성 있는 원단을 사용한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비율에 대한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 시각적 요소가 눈에 쉽게 들어오길 원한다. 또한 바람직한 여성상을 수렴한다. 옷을 만드는 사람들은 때때로 여성성에 대한 환상을 품지만, 실제 타깃인 여성들에게는 허황되어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여성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위) 낮의 캐주얼과 밤의 우아함을 합친 프리폴 2024 캠페인. 옷감은 CERN 연구소의 기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래) 프리폴 2024 컬렉션을 위한 니트 루렉스, 유광 일렉트릭 블루 자카드, 테크니컬 나일론 및 실리콘으로 덮인 레이스 원단.

(위) 낮의 캐주얼과 밤의 우아함을 합친 프리폴 2024 캠페인. 옷감은 CERN 연구소의 기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래) 프리폴 2024 컬렉션을 위한 니트 루렉스, 유광 일렉트릭 블루 자카드, 테크니컬 나일론 및 실리콘으로 덮인 레이스 원단.

우리는 옷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스토리를 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컬렉션을 지원하기 위한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무대 위에선 진중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위) 낮의 캐주얼과 밤의 우아함을 합친 프리폴 2024 캠페인. 옷감은 CERN 연구소의 기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래) 프리폴 2024 컬렉션을 위한 니트 루렉스, 유광 일렉트릭 블루 자카드, 테크니컬 나일론 및 실리콘으로 덮인 레이스 원단.

(위) 낮의 캐주얼과 밤의 우아함을 합친 프리폴 2024 캠페인. 옷감은 CERN 연구소의 기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래) 프리폴 2024 컬렉션을 위한 니트 루렉스, 유광 일렉트릭 블루 자카드, 테크니컬 나일론 및 실리콘으로 덮인 레이스 원단.

하퍼스 바자 레디투웨어와 쿠튀르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르노 바이앙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쿠튀르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전문 팀을 요구한다. 고객 한 명의 요구를 따르고, 많은 양의 천을 사용하고 수백 시간을 바느질에 쏟는다. 패션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코페르니와 함께 우리는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고급 테일러링을 실현시키고 있다. 우리 제품의 가격은 2백 유로에서 5천 유로까지 간다. 더 비싼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는데 보통 좀 더 복잡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쿠튀르에 관해선 얘기가 다르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를 과감하게 만든다. 유리 가방을 디자인할 때 실패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깨지기 쉽고 코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이걸로 대중의 본심을 파악했다. 평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소비자의 감정이나 감각들은 예상이 어렵다.
아르노 바이앙 하지만 우리의 베스트셀러는 레깅스와 청바지 사이의 하이브리드 바지이다. 그 다음으로는 벨트 스트랩이 달린 재킷, 저지 소재의 컷아웃 상의, 겨울엔 스퀘어 힐 부츠, 여름엔 웨지 슈즈이다. 모자에 두개의 작은 뿔이 달린 오버사이즈 후드도 인기 있었는데, 두아 리파와 블랙핑크가 착용한 후로 더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바스티앙 메이에 결국 성공의 비결은 매 시즌 같은 여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으로 우리의 뮤즈는 25세에서 45세 사이의 연령대다. 캐주얼할수도, 때로는 포멀할 수 있다. 계속 진화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옷을 입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어떤 신체 부위를 숨기거나 노출할 때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로 눈치 챌 것이다.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도 말이다.

Credit

  • 글/ Antonio Privitera
  • 번역/ 임동주
  • 사진/ © Corka Postigo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