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다시 또 한 번, 2024 F/W 컬렉션에서 보여준 구찌의 저력

사바토 데 사르노가 이야기하는 익숙하고도 생경한 2024 F/W 구찌 컬렉션의 미학

프로필 by 김미강 2024.02.26
사진/ GUCCI 사진/ GUCCI
지난해 5월부터 하우스에 합류해 구찌의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 호화로우면서도 극도로 장식적인 스토리로 두 눈을 현혹했던 전임자의 ‘패션 판타지’를 대범하게 지워낸 그의 새로운 구찌 컬렉션은 미니멀리즘과 실용주의가 회귀한 요즘 트렌드에 성공적으로 탑승하며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2월 23일 밤, 사바토 데 사르노의 저력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던 구찌의 2024 F/W 컬렉션이 공개됐다. 매 시즌 컬렉션에 특정 테마를 붙이지 않기로 선언한 디자이너의 바람대로 이번 가을/겨울 컬렉션 역시 뚜렷한 테마를 생략한 채 오롯이 ‘패션’에 집중한 모습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문방구에서 특별 주문 제작한 노트북 모양의 인비테이션에 쓰인 ‘Follow Your Heart’라는 문구에서 현란한 테마와 수식 없이도 룩 그 자체를 즐기길 바라는 디렉터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저의 이상은 제 패션과 마찬가지로 항상 현실과의 소통을 통합니다. 그 이유는 어떠한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규칙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생각을 시도해 보라고 전하는, 지독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부드럽게 충돌해 빚어낸 구찌의 새 시즌 컬렉션은 하우스의 아카이브에 집중하며 구찌의 근간인 관능미와 80~90년대의 미니멀한 클래식 무드가 뚜렷한 존재감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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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적인 요소를 덜어낸 채 오직 견고한 실루엣, 블랙을 포함한 우아한 컬러감으로 승부수를 던진 다양한 길이의 코트, 은은한 관능미를 더한 레이스 소재의 란제리 슬립 드레스, 섬세한 스팽글 장식을 덧댄 코트는 ‘그때 그 시절’ 톰 포드의 구찌 쇼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했고, 팬츠 리스 트렌드를 반영한 로고 장식 마이크로 쇼츠와 셔츠, 컬러풀한 플랫폼 홀스빗 슈즈의 신선한 조합은 젠 Z 들의 취향도 제대로 저격하며 쇼에 균형 잡힌 리듬감을 더했다. 이처럼 하우스의 클래식 코드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동시에 지루하지 않도록 곳곳에 영민한 관전 포인트를 더한 사바토 데 사르노는 이번 시즌에도 한 단계 발전해 나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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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구찌를 상징하는 승마 코드를 반영한 라이딩 부츠 및 오버 더 니(Over the Knee) 부츠는 홀스빗 메탈 장식이 더해진 클래식한 실루엣이 특징이며, 승마 코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프 문 형태의 백과 뱀부 핸들을 계승한 백도 새롭게 선보였다. 이뿐 아니라 기존에 선보이던 백들에 크게 기교를 부리지 않고, 친숙한 디테일로 변화를 줘 기존 구찌 팬들도 거부감 없이 구매할 수 있는 클래식한 백(비비드 컬러를 입힌 재키 백)을 대거 선보였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집을 완성하듯,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다양한 영감을 꿈꾸고 실현합니다” 허황된 테마는 과감히 생략한 채 일상과 현실을 품고 한 걸음 내딛는 사바토 데 사르노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구찌의 아카이브를 견고하게 확장해 나갈지, 그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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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