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도!’ 바야흐로 디토 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점심을 먹으며 모 배우의 유튜브를 보다 ‘여배우 크림’을 주문하고, 인스타그램에서 팔로하는 인플루언서가 착용한 목걸이가 마음에 들어 장바구니에 담는다. 7살 아들과 함께 갈 부산 여행도 ‘아이랑 부산’ 해시태그로 검색하며 계획한다. 사실 워킹맘인 에디터는 검색할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기 때문에 집약된 정보에 늘 목마르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며 산다는 의미의 ‘분초사회’가 2024년의 화두로 떠올랐다. 경제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경험으로 바뀌면서 시간이 가장 소중한 자원이 된 것. 시간 대비 성과 비율, 즉 시간의 가성비를 일컫는 ‘시성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셈. 시간을 중첩해서 쓰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시대! 상품과 정보, 유통 채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혼란 속에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지 앞에 놓인다. 한 가지를 구매하기 위해 다른 수많은 대안은 포기해야 한다.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소모적인 아이템은 불필요하니까. 심리학자 시너 세티와 마크 래퍼의 연구가 좋은 예가 된다. 시식 코너에 6종의 잼을 진열했을 때와 24종의 잼을 진열했을 때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살핀 실험이었다. 그 결과 6종의 잼을 진열했을 때 10배 많은 판매율이 나왔다고. 이는 필요 이상의 선택지는 효용을 감소시켜 소비자들이 되려 선택을 내리지 않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나의 가치관과 취향에 맞는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 추종하며 구매 의사 결정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나도!’라는 의미의 디토(Ditto)소비다. 디토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셀러브리티나 파워 인플루언서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또 브랜드보다 누가 사용하는 제품인가를 더 따진다. 영국의 중고거래 앱 디팝은 판매 기능에 셀러의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제공하는 소셜미디어 기능을 더했다. 특정 셀러가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맞으면 그의 컬렉션을 계속 구매한다는 것. 영국의 15~24세 중 30%가 이 앱을 설치했다고. 국내 중고거래 앱 트렌디도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편 최근 인기를 얻는 유튜브 채널은 브랜드 자체에서 운영하는 콘텐츠다. 러쉬 매장 직원들이 제품을 소개하는 러쉬코리아, 올리브영 MD가 등장하는 올영TV, CU 직원이 매주 신상을 소개하는 신상왔다씨유, 삼성물산 직원들의 OOTD를 보여주는 알꽁티비 등이다. 브랜드의 내부 직원들이 임플로이언서(emploee + influencer)가 되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지식과 친숙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음은 콘텐츠다. K팝과 K드라마의 전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서울은 지난해 트립닷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꼽혔다. <오징어 게임> 방영 후 항공권 비교 서비스 카약은 한국행 항공권을 검색한 영국인이 50%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을 ‘세트 제팅’이라고 한다. 여행 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세트 제팅 트렌드는 소비자가 콘텐츠 속 세계관에 몰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여행 고수들이 추천하는 상황별 여행지 필수 코스, 맛잘알들이 추천하는 맛집 지도에도 열광한다. 팀 버튼 감독의 첫 시리즈 드라마 <웬즈데이>의 주인공 제나 오르테가의 프레피 룩과 고스 룩은 젠지세대를 사로잡았고, HBO의 드라마 <유포리아>는 하나의 패션 장르를 탄생시키며 MZ세대의 소비를 부추겼다. 셀러브리티의 패션 스타일과 아이템만을 다루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디토소비의 전형적인 사례다. 블랙핑크 제니의 스타일을 포스팅하는 ‘jendeukiestyles’이나 레드벨벳 조이의 스타일링을 볼 수 있는 ‘joysstyle_’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버티컬 커머스다. 여러 분야의 상품들을 종합적으로 판매하기보다 패션, 식품, 인테리어 등 특정 카테고리 상품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형태다. 드넓은 소비의 바다에서 좋은 정보와 아이템을 큐레이션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것. 무신사, 마켓컬리, 오늘의집은 이미 헤비 유저들을 거느리고 있다. 아이투, 핏타민, 필리코치 등의 서비스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각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제안을 한다. 감각적인 공간을 큐레이션 해주는 데이트립,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콘텐츠를 제품화해 판매하는 프리즘, MZ세대 필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14F도 마찬가지.
이러한 디토소비의 폐해는 유통시장의 권력 이동과 비합리적인 소비 유발에서 나타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전통적 마케팅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온라인 세계에서 브랜드와 소비자는 수평적 관계로 거듭났으니 말이다. 진정성 있는 스토리와 차별화된 관점, 상품의 가치와 감성에 집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