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조스팽이 빚어낸 종이 산책로

메종 루이나(Ruinart)와의 협업으로 <프롬나드(Promenade(s))> 프로젝트를 만들기까지의 여정.

by BAZAAR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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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Fôrets for the Carte Blanche PROMENADE(S) by Eva Jospin>(each), 2022. Photo: Benoit Fougeirol

작품의 주소재로 카드보드(판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진학 전 건축학교를 다니며 비교적 저렴한 재료인 판지를 사용하는 데 익숙했다. 조각 작업을 하면서 판지를 완성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순환의 개념에 매료되었다. 판지라는 소재는 숲에서 시작해 결국 숲으로 돌아가는 소재이지 않나. 또 작업의 층위를 보여주기에 판지는 최적의 소재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가치 있는 작품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에 주목했다.

<프롬나드>는 올해 3월 파리에서 첫선을 보인 뒤 프리즈 서울에서 공개했다. 설치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살면서 어떤 한 가지에만 중점을 두진 않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TOP 5’ 같은 걸 뽑는 일이다. 세상은 다층면으로 이뤄져 있고, 그렇기에 통로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작품 <프롬나드>도 공간을 통해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메종 루이나와의 협업 과정에서 작품을 만들 때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나?

장소, 시간, 인간의 행위들이 쌓인 지역에서 크게 영감받았다. 수확의 단계, 포도의 변화, 샴페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믿음을 가진 인간의 행위가 축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지엔인 내게 도시의 삶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반면 그곳은 그와 상반된 느낌이었다. 하나의 제품이 있고 거기에서 파생한 경제가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그 지역의 역사와 경험이 쌓여왔다는 걸 깨달았다. 도시와 다른 멘털리티가 작동하는 것을 작품 안에 녹여 넣고 싶었다.

<프롬나드> 전시를 보면 인공적인 조형물이지만 디테일에서 생생함이 느껴진다.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경험 같달까.

내가 특히 영감을 받는 것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바로크식 정원을 좋아하는데, 가짜 동굴(grotto)에 매력을 느낀다. 아무런 기능성이 없는 건축물이 오로지 시각적인 미학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에 이끌린다. <프롬나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그런 것들이다. 관람객이 마치 관광을 온 것처럼 전시장에 들어가지만 그 안에 기능성이 없는 형태들을 마주하게 된다. 같은 의미에서 무대디자인도 좋아하는 분야다.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가상세계를 극적으로 활용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모방을 통한 재현(미메시스)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모방은 현실, 가상세계와 강력한 관계를 맺는다.

판지를 활용한 수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나?

프롬나드에서 선보인 <숲(forêt)> 작업의 경우, 판지를 절단하면서 형태를 잡는 것이 드로잉과 거의 동일했다.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 전면부까지 계속 층위를 더해간다. 크기와 형태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수평으로 뻗어 나아가며, 표면을 매만지고 절단하고, 장식을 더하며 디테일을 조정한다.

앞으로 당신의 작품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필립 로스의 소설을 극화한 연극을 통해 무대디자인에 도전할 예정이다. 또, 파리에서 새롭게 개통하는 메트로 역이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역사에 작품이 설치된다. 가슴에 품고 있는 드림 프로젝트를 살짝 귀띔하자면 나만의 정원을 만들려고 한다. 내 조각들과 자연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물론 메종 루이나와의 협업도 계속된다. 메종 루이나의 전시 공간 안에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내 작품을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협업의 기억을 실체로 남기는 작업이다.

전종혁은 늘상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를 원한다. 그들로부터 삶의 열정과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