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간된 〈디어 마더〉는 어머니와 함께 떠난 총 세 번의 순례 여정을 담은 포토에세이집이다. 2017년 작 〈무스탕 가는 길〉과 2020년 작 〈카일라스 가는 길〉이라는 다큐 영화를 책으로 펴내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카일라스 가는 길〉이 극장 개봉하고, 한솔수북 출판사에서 어머니의 일기를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간간이 기록해두었던 여행 일지와 어머니의 일기를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다. 어머니의 일기가 2백 페이지가 넘고, 내가 쓴 여행 일지는 80페이지 정도 되니까 어머니께서 밥상을 다 차린 셈이다.(웃음) 〈디어 마더, 소멸해가는 당신을 위하여〉에서 영화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 특히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 어머니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소개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아흔을 앞둔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신다고. 순례 여정 중 하루의 끝을 늘 일기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삶과 존재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그런 기록이다. 그리고 아들인 내가 어머니의 일기를 보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어머니’로 기억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사범대학을 나와 농촌교도소 공무원이었던 어머니의 젊었을 적 꿈은 농촌계몽 운동에 일생을 바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남은 두 자식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보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고 싶은’ 여든한 살의 어머니를 모시고 간 순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서른한 살에 얻은 첫아들을 생후 7개월 만에 잃고, 그 상처가 조금 아물어가던 서른일곱 살에 남편을 잃으셨다. 깊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어린 두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살다 보니 할머니가 돼버리셨다. 히말라야 순례는 그 슬픔을 씻어내는 치유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2017년에 떠난 카일라스 순례는 세상을 위한 기도의 여정이다.
순례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미디어는 노인들이 한글과 시를 배우거나 혹은 유튜버 활동을 하는 모습을 주로 담아왔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 히말라야와 파미르고원 같은 지구의 오지로 떠나는 노인은 없다. 여든네 살에 바이칼호수, 고비사막, 알타이산맥, 파미르고원, 티베트를 여행하셨는데, 3개월에 걸쳐 2만 킬로미터 가까이 이동했다. 두 개의 사막을 지났고 해발 4천, 5천 미터 고개를 여럿 넘어야만 했던 모험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노인이 아니라 특별한 인간이 되고자 염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다큐 영화로 만들어서 세상에 소개하고 싶었다.
“배낭 하나 메고 홀로 가는 여행과 노모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 무게가 참으로 다르구나”라고 하셨다. 산에서 쓰러진 나무를 끌고 와서 도끼질을 하셨을 만큼 아주 강한 체력을 소유한 어머님임에도 말이다.(웃음)
어머니에게 가이드인 동시에 의사와 요리사의 역할까지 다 해야 했다.(웃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장기간의 오지여행이 지닌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편하게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안락한 호텔에서 자고, 안전한 도시를 여행하는 것과 너무나도 다른 범주의 여정이다.
달을 향해 얼어붙은 바이칼호수 위를 걸어가는, 그리고 달을 향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경이롭다.
관광객이 없는 시즌이어서 광활한 바이칼호수에는 어머니와 나밖에 없었다. 4월 초에도 바이칼호수는 완전히 얼어 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밤바다 바이칼호수에 나가서 일출과 월출을 보시면서 기도를 하셨다. 그때가 마침 보름일 때여서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보기도 하였고.
알타이산맥의 타왕복드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지팡이에 의지해서 늘 힘차게 걸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런 일을 겪으니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더라. 그래서 다음 날 어머니께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잠시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노한 얼굴로 “지금 돌아가면 그동안 왔던 그 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카일라스 순례라는 그 의미와 무게가 가슴 깊이 느껴졌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길을 가시는지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독자는 자신의 여든의 어머니가 두 다리를 더 열심히 관리하기 시작하셨다고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라고 한다. 또 어떤 기사에는 ‘동적인 주체가 된 달라진 영화 속 여성 노인’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는지?
“우리는 누구나 올라야 할 산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산다.” 오랫동안 히말라야와 아프리카를 여행했던 여행작가이자 시인인 김인자 시인이 〈카일라스 가는 길〉을 보시고 쓴 영화평의 첫 문장이다. 나는 20대 시절부터 히말라야를 동경했고, 결국 마흔이 되어서야 그 꿈을 이루었다. 어머니는 여든한 살에 히말라야로 떠났고, 지금은 카일라스산을 가슴에 품고 하루를 보내신다.
감독님 말씀대로 어머니는 참 다양한 얼굴을 가지셨다. 설렘 가득한 소녀 같은 모습, 호기심 많은 탐험가, 빨강머리 앤, 열정적인 투사, 혹은 ‘세상에 밥을 굶는 사람들이 없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시는’ 산타할아버지. 감독님이 생각하기에 ‘이춘숙’이라는 사람이 가장 잘 드러난 사진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Muktinath 3800M’라고 적힌 털모자를 쓰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사진. 2014년 히말라야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 해 겨울에 찍었는데, 어머니에게 카그베니의 겨울 이야기를 들려드릴 때 어머니 표정이 참 예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찍었던 사진이다. “아들아, 우리 다음에는 오데 가노?” 어머니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넘쳐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알타이산맥에서 탈출하기 직전에 찍은 모험가 같은 모습의 사진.
“나는 지구의 이 아름다운 길을 어머니와 오래오래 걷고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 이것은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순례를 하면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그랬던 것 같다.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굴레에서, 나는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힘든 길을 가는 동지애 같은 것을 키워 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떠난 순례길은 나에게 ‘자유’와 ‘해방’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