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기록자, 근대5종 국가대표 정진화 이번 올림픽 4위로 골인했다. 최초로 동메달을 딴 전웅태 선수 다음이었는데, 함께 고생한 사이에서 메달의 유무가 갈리니 서운함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누구보다 아쉬운 사람이 나였고 욕심도 있었다. 10년 이상 같이 훈련한 동생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따야 한다면 운명이 웅태를 선택했나 보다, 웅태가 스타성도 있고 인기 얻는 걸 보면서 근대5종을 위해서라면 이게 맞는 결과인가 보다,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그런 마인드컨트롤을 해야 할 만큼 심적으로 힘들었다는 말로도 들린다.
초반엔 정말 힘들었다. 사람들이 영상도 보내고, 축하한다, 고생했다, 아쉽다, 문자들을 보내주는데 일주일은 내내 울었던 것 같다. 감정 컨트롤이 안 돼서. 부모님, 친한 친구들, 여자친구 외에는 답장도 안 하고, 아예 안 보려고 했다. 기쁘면서도 슬프고 ‘대체 이런 감정은 뭐지?’ 이렇게 복잡한 감정은 처음 느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컨트롤을 하고,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이 됐다. 이번이 세 번째 올림픽인데, 런던에 이어 리우, 그리고 도쿄까지 오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신체적으로 제가 피크라고 생각했던 때가 리우올림픽이었다. 사실 우승도 기대했었다. 근데 생각보다 결과가 잘 안 나와서 난 11~12등 정도밖에 안 되나 보다 좌절이 컸는데, 그 다음 해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을 했다. 그러면서 ‘나도 더 성장할 수 있구나’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훈련에 박차를 가하면서 세계 랭킹 1위도 찍고. 이번 도쿄는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임했었다.
새벽 5시 30분 기상, 6~8시까지 육상 훈련, 아침 먹고 10~12시까지 수영, 점심 먹고 2~4시까지 승마, 4~6시까지 펜싱, 저녁 먹고 7~9시까지 웨이트 운동. 그러고 들어와서 쉬다 잔다.
와, 정말이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하루다. 도대체 쉴 시간은 있는 건가?
운동 끝나고는 진짜 말 그대로 쉰다. 각 종목 끝날 때마다 땀을 엄청나게 흘리니까 하루에 4~5번 샤워를 한다. 체력 소모가 워낙 많으니까 중간 중간에 에너지 바나 초콜릿 같은 간식을 자주 먹고, 야식도 거의 필수로 먹는다. 9시쯤 들어와서 야식 먹고 후배들하고 수다 좀 떨다가 빨래하고 각자 방으로 가서 잠자리에 드는 일과다.
종목 특성상 누구를 무찌르는 게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 혼자만의 싸움이라 더 힘들 것 같다.
맞다. 나를 먼저 못 이기면 그 다음의 순위 싸움이 아예 안 되는 거니까. 대학교 2학년 때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실업팀 형들 다 이기고 몸 상태가 한창 올라올 때였는데 2년간 재활하면서 운동을 못했다. 그럴 때 다른 종목 선수들은 보통 슬럼프가 왔다고 할 텐데, 우리는 극복이 빨리 되는 게 한 종목이 슬럼프 오면 다른 종목이 또 잘될 때가 분명히 있거든. 이 종목이 좀 안 되면 ‘남은 네 종목이 있으니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커버할 수 있어야 금방 이겨내는 것 같다. 힘든 스케줄이 닥쳐도 일단 해보자는 성격이라 그런 부분이 혼자와의 싸움에서 많이 도움된다.
제 가슴을 울렸던 댓글이 있는데, 이게 비인기종목이잖나. 누군가 이번에 처음 저희 경기를 보고 감동받았다는 말, 코로나 시기로 힘든데 우리 경기 보고서 지쳐 있던 몸을 일으키고 힘을 냈다, 이런 댓글 봤을 때 감동을 많이 받았다.
제가 생각보다 ‘최초’ 타이틀이 많은 선수다. 앞으로 더 잘해서 한국 근대5종의 역사를 만들어간 선수로 기억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0 도쿄올림픽 근대5종 종합 4위를 기록했다. 사격, 펜싱, 수영, 승마, 육상까지 5가지 경기를 하루에 치르는 종목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지금까지 3회 연속 올림픽 진출. 최연소 국가대표, 세계선수권 최초 단체전 금메달, 최초 개인전 금메달, 파이널 최초 금메달. 최초 세계 랭킹 1위. 한국 근대5종에서 ‘최초'의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가진 선수.
양효진의 니트 카디건은 Blumarine. 부츠는 Fendi. 정지윤의 니트 드레스는 Calvin Klein. 부츠는 Fendi.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여자배구 국가대표 양효진 & 정지윤 이번 올림픽 최고의 드라마를 쓴 팀, 바로 여자배구가 아닐까. 주변 반응이 어마어마했다.
양효진(이하 양): 지나가기만 해도 사인해달라는 분들이 많다. 집에 가면 남편이 볼을 이만큼 사가지고 들어와서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사인해보겠냐”고 하면서 계속 볼에 사인해달라고 하고.(웃음) 저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정지윤(이하 정): 알아보는 분이 많이 생긴 것도 그렇지만, 저랑 친한 분들도 태도가 달라졌다. ‘어? 왜 이러는 거지?’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웃음)
양효진 선수는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메달은 못 땄지만 여자배구가 정말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냈다.
양: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배구를 하면서 그때그때 목표를 잡고 계획을 세워 달성하려던 것들이 다 이뤄졌더라. 개인적으로 엄청 노력한 결과이지만, 아무리 힘들게 노력해도 성과가 따라오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나. 힘들고 지치더라도 내가 얻고 누린 것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게 되고, 그 경험 자체가 원동력이 되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연경이라는 선수를 주축으로 똘똘 뭉친 힘도 컸을 것 같다.
양: 정말 그렇다. 이번에는 정말 연경 언니한테 메달을 따주고 싶었다. 우리가 런던올림픽 때 4강을 한 번 가봤잖나? 그 기회가 다시 온 거니까. 거짓말 안 하고 브라질전 하기 전까지 잠을 못 잤다. 하늘이 기회를 준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데,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정말 별 생각을 다한 것 같다. 그래서 4강에서 떨어지고 아쉬움이 더 컸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 가버렸구나. 근데 한국 돌아와서 생각이 바뀐 게, 우리가 이렇게 해온 노력을 모두가 알아주시더라. 그게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이미 일본을 8강전에서 꺾으면서 기적이 시작된 거다. 우리나라 여자배구의 힘, 대체 뭘까?
양: 이번 대회 하면서 응집력이라는 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았다. 우리 전력도 원래 이 정도가 아니었고, 다른 팀들에게도 한국이 그렇게 견제되는 팀이 아니었다. 막상 경기 하면서는 어떻게든 예선 통과를 하려는 악착같음이 모두에게 있다 보니, 못 살릴 볼도 살리게 되고, 포인트가 안 날 볼인데 점수를 내고. 나중에는 우리가 정말 하나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묘한 자신감? 체험을 하면서도 너무 신기한 기분이었다. 여태껏 배구 하면서도 이 정도의 시너지를 느껴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국대 선후배, 또 구단 선후배로서 서로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
양: 배구에서 신체 조건이나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배구에 대한 열정, 마인드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신입 들어오면 그 마인드가 딱 보인다. ‘쟤는 지금 잘하는데 다른 데 정신이 팔릴 수도 있겠구나’ ‘더 늘지 않겠구나’ 같은 느낌. 지윤이는 그런 점에서 임하는 자세가 좋은 친구다. 자기 실력만 믿고 다른 사람들 조언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은데, 지윤이는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한테 맞는 걸 스스로 찾아간다. 정: 제가 신입 때부터 효진 언니는 이미 하이클래스 선수였다. 톱 위치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고 연구하고 매일 매일 꾸준히 노력하는 걸 보고 정말 많이 배웠다. 버스에서 언니가 배구 영상을 보고 있는 걸 봤는데 ‘역시 효진 언니구나, 나도 언니만큼 되려면 저만큼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더라. 저에게는 완벽한 선배다.
김연경 선수가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양효진 연봉퀸 내가 만들었다”는 얘기더라.
양: 제가 봐도 언니는 그걸 되게 뿌듯해하는 것 같다.(웃음) 전 언니랑 같은 방 쓰면서 대표팀 생활을 한 게 과장 아니고 이렇게 연봉을 받는 데 엄청난 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대표팀 갔다오면 항상 저런 마인드로 배구를 해야 되는구나, 배운 게 또 제 행동으로 발현이 되고, 후배들도 그걸 보고 배우고. 그게 연결고리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한국 여자배구의 다음 세대 바통을 이어받을 선수로서 한마디 해준다면?
정: 프로 데뷔 4년 차인데, 엄청나게 좋은 기회를 얻은 거라고 생각한다. 언니들이 일궈온 길이다. 배구 인지도를 높이고 실력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놓았으니까. 동기들끼리 만나면 하는 얘기가 우리가 이걸 망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새로운 사명감이 생긴 것 같다. 앞으로도 더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정지윤의 코트는 Ader Error. 양효진의 코트, 터틀넥은 Prada.
정지윤은 2017년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포지션은 레프트, 세터와 라이트 또한 능숙하게 소화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무시무시한 공격력, 리그 최상급의 파워를 자랑한다. 이번 코보컵 전 경기 교체 출전에도 불구, 득점 1위, 공격 1위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다.
양효진은 14년간 국가대표를 역임했다. 2007년 현대건설 입단 후 단 한 번의 이적 없이 같은 구단 소속, 11시즌 연속 블로킹 1위, 12시즌 연속 올스타, V리그 최고 스타 중 한 명. 미들 블로커로서 불가능에 가까운 한 경기 40득점 기록, 현재 국내 리그 연봉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