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펜디 하우스를 이끄는 새로운 삼각구도.

삼각형은 완벽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는 도형이다. 세 개의 점들은 서로를 밀어내지도, 혹은 개인이 독점하려고도 하지 않는 탄력 있는 관계 속에서 안정적인 구도를 이룬다. 킴 존스 합류 후 총 세 시즌의 컬렉션을 선보인 펜디를 보면 이 삼각형 구도가 떠오른다.

BYBAZAAR2021.09.10

 Starting Point,  Silvia Venturini Fendi

1925년 에도아르도 펜디와 그의 부인 아델 카사그란데는 펜디라는 브랜드를 만든다. 강인한 엄마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델 카사그란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파올라, 안나, 프랑카, 칼라, 알다 다섯 명의 딸과 함께 가족 경영으로 펜디를 이끌어간다. 일하는 여성의 입지가 매우 좁았던 당시에, 무려 다섯 딸 모두를 경영에 참여시킨 건 매우 진보적인 선택이었다. 아주 높고도 견고한 유리 천장을 뚫으며 커리어 우먼으로서 패션을 다룬 다섯 자매는 패션계에서 펜디만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그것은 브랜드의 정신이자 캐릭터였다.
 
1965년, 그녀들은 회사의 혁신을 위해 전도유망한 디자이너 칼 라커펠트를 영입했다. 이어 1994년 펜디가의 3대, 안나의 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가죽 제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다. 90년대 여성의 입지는 분명 그녀의 엄마 안나와 네 명의 이모가 살던 시대와는 달랐다. 실비아 벤투리니가 만들어낸 가장 ‘현대적인’ 펜디의 변화는 여성의 가방을 변화시킨 일이다. ‘최소한의 부피, 최소한의 무게’를 위해 탄생한 바게트 백은 펜디와 여성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마치 바게트 빵처럼 옆구리에 작고 가벼운 가방을 끼고 자유롭게 일터를 활보하게 된 여성들. 단언컨대 이건 여성 패션사의 특이점 중 하나다. 이후 칼 라거펠트와 함께 펜디에 가장 단호하고 섬세한 여성적 시각을 부여해온, 펜디의 뮤즈이자 펜디 그 자체였던 실비아 벤투리니는 2019년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새로운 파트너를 받아들인다. 여성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바라보며 자신과 함께 균형을 이룰 새로운 꼭짓점, 킴 존스다.
 
저는 항상 우리 가족 안에서 반항적이었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다’라는 가훈만은 저와 정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믿는다면, 확신을 갖고 끝까지 싸운다면 아마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한 마리의 사자처럼 변하죠. -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Fendi’s point of view,  Kim Jones

2021 F/W Collection

2021 F/W Collection

 
저는 소속되는 하우스마다 각기 다른 코드와 DNA를 부여하며 여러 아티스트와 손을 잡죠. 이거야말로 현 시대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 킴 존스 
 
킴 존스를 패션 디자이너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제껏 보여준 행보를 볼 때 그는 패션계 전체의 방향키를 바꿔놓을 만큼 새로운 시선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그건 마치 그리스 시대의 철학가처럼 계도적이다. 예컨대 멀버리, 엄브로, 휴고 보스, 던힐을 거쳐 루이 비통이라는 거대 패션 하우스의 남성복 수장이 되었을 때 그는 파격적으로 스트리트 브랜드인 수프림과 협업을 시도했다. 이전의 패션 공식으로서는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이 둘의 조합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전도시켰다. 럭셔리 패션이 길거리의 패션과 함께한다는 건, 또 다른 방식의 패션 해방이었다. 2018년 디올의 남성복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그는 럭셔리 하우스의 굳건한 빗장을 풀고 온전히 다른 문화들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패션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의 평등화와 다양성을 발견하게 됐고, 그것은 미래 패션에 대한 하나의 힌트가 되었다.
 
다양한 패션 하우스를 거치며 킴 존스가 보여준 최고의 장점은 대중문화와 언제나 관계를 맺고 있고, 이는 그의 놀라운 비전, 정교한 솜씨와 결합하여 놀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런 능력의 원천으로 종종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꼽는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수문지질학자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에콰도르로 이주했다. 그 후 보츠와나,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케냐, 카리브해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런 경험은 그의 사고방식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다. 킴 존스는 여전히 패션의 영감을 세상의 곳곳에서 찾는다. 그는 칼 라거펠트만큼이나 책 모으는 것을 좋아하고, 미술작품과 빈티지 패션 수집광이다. 그가 첫 펜디 여성복 디렉터를 맡으며 5백여 점의 빈티지 여성복 컬렉션을 모은 것 역시 그의 디자인의 뿌리가 ‘수집’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킴 존스의 주변에는 케이트 모스를 비롯해 나오미 캠벨, 빅토리아 베컴, 카니예 웨스트, 데미 무어, 에디 레드메인,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킴 패밀리로 불리는 아티스틱한 친구들이 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에 열려 있고, 어떤 것도 제약 없이 믹스할 줄 안다. 최근 패션의 에너지는 브랜드 간의 낙차로부터 발생한다.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이 뒤섞이면서 발생시키는 큰 에너지, 지금 시대에 이보다 더 중요한 패션의 동력은 없다. 그걸 발견해낸 사람 중 하나로 킴 존스를 꼽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2021 S/S Haute Couture2021 S/S Haute Couture2021 S/S Haute Couture
 
킴 존스가 루이 비통의 마지막 쇼(물론 남성복 컬렉션이다!)에 나오미 캠벨과 케이트 모스를 세운 것부터 시작해, 벨라 하디드와 빅토리아 베컴이 디올 옴므를 즐겨 입을 때부터 우리는 이 남자가 만드는 여성복에 대해 호기심을 키워갔다. 그가 칼 라거펠트의 뒤를 이어 펜디 여성복의 수장이 되었을 때(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활동도 이어간다) 이 상상이 현실이 될 거란 묘한 흥분이 패션계에 감돌았다. 그리고 그의 흥미로운 첫 펜디 여성 쿠튀르 컬렉션이지만 1월 무대에 올랐다.
 
“어떤 옷을 입든 간에 길거리로 나가는 순간 그 옷은 ‘스트리트 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쿠튀르 드레스도 마찬가지죠.” 2021년 봄, 첫 펜디 컬렉션에 스며들고 있는 킴 존스의 DNA 역시 매우 현실적인,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우 ‘길거리’와 가까운 패션이다. 1965년 펜디를 맡은 칼 라거펠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매일 입을 수 있는 가벼운 모피코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칼은 퍼를 자르고, 벗기고, 염색하고 또 주름을 잡아 완전히 새로운 펜디표 모피코트를 창조했다. 2020년 겨울, 펜디의 다음 세대 남자로 지명된 킴 존스 역시, “펜디의 아카이브를 살펴본 후 지금 제가 하고 싶은 것은 펜디를 정말 가볍게 만드는 것이에요.”라며 패션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튤과 오간자의 레이어링, 케이프와 코트에 흩뿌려진 깃털처럼 가벼운 퍼 장미 장식이 그 예다. “저는 소재를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서 요즘 우리 삶에 부합하지만 여전히 완전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었으면 해요.” 킴 존스와 칼 라거펠트가 말하는 무게가 비단 옷의 질량만은 아님은 모두가 알 것이다.
 
곧 100주년을 앞둔 펜디에서 그가 처음 보여준 쿠튀르 컬렉션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 패션에 대한 겸손함, 펜디가에 대한 사명을 담았다. “펜디 가문의 여성들은 지성을 갖춘 커리어 우먼이에요. 저는 바로 이러한 점을 기념하고자 했어요.” 연이어 선보인 2021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도 그는 세련되면서도 클래식한 방식으로 탐구한 실용성의 미학에 집중했다. 그건 전혀 예스럽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미래적이지도 않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펜디 기성복은 ‘우리 시대’의 것입니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성과 패션의 관계에서 킴 존스가 내린 정의다.
 

Evolution of Fendi DNA, Delfina Delettrez

 
저는 여성 중심의 가정에서 자라왔어요. 펜디 가문은 개성 강한 여성들의 집단이죠. 모두가 각각의 특징과 재능,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굉장한 능력을 갖춘 멋진 여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건 환상적인 경험이었죠. -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
 
킴 존스가 펜디를 맡으며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실비아의 딸인 델피나 델레트레즈에게 합류를 요청한 것이다. “정말 잘한 일이죠. 그것은 사랑의 표시였고, 그가 펜디를 이해하고 있으며 펜디의 역사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였기 때문입니다.” 실비아를 이어 4대의 펜디를 보여줄 여인, 델피나 델레트레즈는 자신의 이름을 건 주얼리 브랜드를 1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다. 그녀만의 현실 감각은 펜디가 향해 가야 할 펜디 DNA의 진화이자 여성의 진화를 보여준다. “제가 가장 먼저 원한 것은 델피나를 확실하게 합류시키는 것이었죠. 그녀가 이 가문의 다음 세대였으니까요. 저는 실비아를 존경하고, 그 브랜드 하우스의 유산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요. 펜디는 그 여성들과 관련된 브랜드죠. 자신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 알고 있는 강하고 지적인 여성들의 브랜드입니다.” 킴 존스는 1965년 칼 라거펠트가 그러했듯, 펜디가 단순히 패션 브랜드를 뛰어넘어 여성의 유전자로 이뤄진 여성의 브랜드란 사실을 존중했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은 세공 장인들이 펜디 ‘핸드 앤 핸드’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시킨 바게트 백.

이탈리아 제노바의 은 세공 장인들이 펜디 ‘핸드 앤 핸드’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시킨 바게트 백.

 
주얼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델피나는 2007년 19살의 나이로 자신만의 주얼리 브랜드 ‘델피나 델레트레즈’를 론칭했다. 그녀가 자신의 브랜드를 내며 제일 먼저 한 일은 펜디의 이름을 지우고 온전히 자신만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었다. 그 해 그녀는 딸 엠마를 혼자서 출산했고, 지금도 싱글맘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다. 수십 년 전 델피나의 할머니 세대가 싸웠던 세상의 편견과는 또 다른 편견에 맞서며 누구나 삶의 형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가장 진보적인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독립적인 그녀의 삶 자체로도 새로운 펜디가 향해야 할 바가 뭔지 알 수 있다.
 
이번 2021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해 델피나가 선보인 ‘펜디 오락(Fendi O’lock)’ 컬렉션은 또 다른 뉘앙스로 여성의 패션, 펜디의 스타일을 바꿔놨다. 칼 라거펠트의 유산 중 하나인 ‘FF(FUN FUR)’ 로고를 이용한 개성 있는 주얼리들은 독창적이면서도 매력적이며, 또 단호하다. 그건 펜디가의 여성이 새롭게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고편과도 같았다. 킴 존스가 이끄는 펜디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펜디가 여성의 DNA, 그 역할을 담당한 델피나는 킴 존스만큼이나 펜디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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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민정
  • 사진/ Brett Lloyd(Portrait)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