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브리엘라 허스트가 디자인한 드레스의 두 번째 버전. 취임식 날 입었던 드레스를 제작하며 남은 원단을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 최근 결혼한 총리 부인 캐리는 G7 정상회담에서 중저가 브랜드 ‘LK 베넷’의 레드 드레스를 입었다.
안그래도 어수선한 세상에 골치 아픈 이슈가 하나 더 보태졌다. 내년 초에 치러질 대선으로 이미 대한민국은 시끌벅적해지고 있다.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어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는 당분간 세간의 관심 아래 있을 것이다. 정치의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패션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크게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일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전반적인 이미지가 신뢰의 첫걸음이니까 말이다. 정치계에서 패션이 주는 의미와 메시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요즘. 지난 6월 열렸던 G7 세계정상회담에서의 미국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스타일이 여전히 회자되는 데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 그녀가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입은 네이비 컬러의 골드 버튼이 달린 해군 블레이저와 마이클 코어스의 화이트 드레스 차림. 그 중에서도 네이비 블레이저는 그 이전의 공식석상에서도 종종 등장했던 아이템이다. 그리고 다음 날, 바이든 여사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부부를 만나는 회담 자리에서 입은 블랙 재킷은 그야말로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17년 직접 구입한 쟈딕앤볼테르의 재킷을 입고 G7에서 전 세계를 향해 ‘LOVE’ 메시지를 보낸 질 바이든 영부인.
바로 등에 새겨진 ‘LOVE’라는 단어 때문. 그날 이어진 인터뷰에서 외신들이 의상의 의미에 대해 묻자 질 바이든 여사는 ‘단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미국이 각국에 사랑과 지지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이 세계적 회담에서도 단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이 단합하는 느낌과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시작하던 2년 전에도 같은 재킷을 입었다. 직접 구매해서 입은 2017년 쟈딕앤볼테르의 재킷이라고. 이는 국제 회담의 문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영부인의 적절한 패션 내조로 평가받았다. 뿐만 아니라 대선 승리 후 대국민연설 때 입었던 오스카 드 라렌타의 플라워 원피스를 G7 개막 리셉션에서도 입었다.(연설 후 몇 시간 내 전 제품이 팔려나가 완판을 기록한 아이템.) 이미 수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은 의상임에도 다시금 선택한 그녀의 용기와 관념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부인 패션의 재활용이다. 역사상 영부인 중에서 같은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고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질 바이든 여사가 패션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조 바이든의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도 ‘vote’라고 적혀 있는 재킷으로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곱창밴드로 머리를 질끈 묶고 마카롱 가게에서 쇼핑하는 모습의 사진 한 장으로 곱창밴드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 않았나. 때문에 ‘주저하는 패셔니스타’라 불리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얼떨결에 패션 아이콘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 참석했을 때 입은 네이비 드레스 역시 ‘재활용’한 것. 취임식 날 밤, 파티에서 입었던 꽃이 수놓인 크림 컬러 드레스와 많이 닮았다는 보도가 나오며 화제를 모았다. 그 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 드레스는 취임식 날 입었던 드레스의 남은 직물로 만들었다. 드레스에 수놓은 꽃은 미국의 모든 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합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새로운 것이 항상 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극적인 패션 리사이클링은 물론이고 비비드한 컬러와 과감한 플라워 프린트 등을 반복해서 즐기는 70대의 질 바이든 여사에게서 대담하고도 적극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질 바이든이 즐겨 입는 해군 블레이저. 주로 원피스와 매치해 여성스러우면서도 격식 있는 스타일링을 보여준다.

질 바이든이 즐겨 입는 해군 블레이저. 주로 원피스와 매치해 여성스러우면서도 격식 있는 스타일링을 보여준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와 벼락 결혼 후 이번 G7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33세의 총리 부인 캐리는 레드 컬러의 원피스와 스틸레토 힐을 착용했다. 이는 영국 왕세손빈 케이트 미들턴도 즐기는 영국 브랜드 ‘LK 베넷’의 50만원 상당의 드레스와 자라의 슈즈로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 회담 전 남편과 단둘이 해변을 산책할 때는 온라인 의류대여 플랫폼 ‘마이워드로브 HQ’에서 대여한 옐로 컬러의 드레스를 입었다. 1일 대여로는 8파운드라고. 기습적으로 치러진 결혼식에서도 같은 곳에서 빌린 웨딩 드레스를 선택했다. 맨발에 웨딩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역시 재활용 패션의 아이콘이었다. 남성 위주의 정치 세계에서 그녀만큼 넘치는 카리스마를 구현했던 인물은 없었다. 다양한 색감의 스커트수트와 보 블라우스, 핸들이 달린 스퀘어 백이 대표적 스타일. 특히 항상 소지하고 다녔던 라우너(Launer) 핸드백은 그야말로 정치적 무기였다.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에서 그녀가 테이블에 핸드백을 올려놓는 순간 장관들이 긴장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핸드 배깅(hand bagging), 즉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시킨다는 그녀의 정치 철학을 대변하는 말까지 유행시켰을 정도니까.
미셸 오바마가 자서전 〈비커밍〉에서 패션 외교의 효과를 언급한 바 있듯 정치계에서 패션은 결코 배제할 수 없는 필연적 요소다. 단, 중요한 것은 단순한 보여주기식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성과 메시지 그리고 뚜렷한 세계관이 담긴 스타일만이 살아남을 것이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