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트팬츠는 망가짐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칼 라거펠트는 말년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장난스럽기도 하고, 도발적이고 또 단정적이기도 한, 전형적인 칼의 어록 중 하나이지만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견해이기도 하다. 짐(gym)과 소파에서만 보던 스웨트팬츠는 작년 초봄 팬데믹 초기부터 재택근무로 인해 수만 명의 사람들의 주요한 유니폼이 되었으니까.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허리 밴드를 시작으로 다양한 컬러, 타이다이 버전까지 품으며 관련 매출은 치솟았다. 또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으로 인해 계속해서 상단에 노출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일 년을 넘어 지속되면서 이러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스웨트팬츠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할 것인가?
2021년 봄을 앞두고 디자이너들은 옷을 차려입는 행위가 지닌, 기분을 북돋아주는 효과를 여전히 갈망한다. 그리하여 유연한 허리 밴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 뉴노멀 시대의 사람들에게 편안하되 보다 세련된 옷 입기를 제안하고 있다. “스웨트팬츠 대신에 실크 로브 드레스와 파자마 팬츠는 어떨까요?” 마이클 코어스는 벨트로 꽉 조여 맬 수 있고, 두 가지 프린트가 특징인 얇은 실크 라운지 웨어 룩을 제안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련되고 글래머러스하게 느껴지지만 편안한 감각을 주죠.
이 룩은 모다 오페란디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패션과 편안함은 서로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에요.” 패션과 바잉 디렉터를 맡고 있는 리사 아이켄(Lisa Aiken)은 화려함이 묻어나는 실용적인 의상의 수요가 늘어난 것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로브는 이번 시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발렌시아가는 페이크 시어링이 장식된 검은색과 빨간색의 배스 로브 코트를 선보였는가 하면, 로제타 게티는 진 할로(미국의 영화배우)가 입었을 법한 글래머러스한 화이트 실크 새틴 드레싱 가운을 제안했다. 심지어 우주적인 작은 쇠사슬 드레스로 유명한 파코 라반은 하우스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DNA를 타협하지 않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방법에 몰두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앙 도세나의 이번 시즌 가장 돋보이는 피스도 뷔스티에와 워싱 데님 위에 입은 발목 길이의 긴 레오퍼드 프린트 로브이니까.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또한 하우스의 주요 코드를 현재 상황에 맞게 적용시켰다. 입체적인 바 재킷의 기모노 버전을 보는 것 같은 피스는 크리스찬 디올이 1957년 일본 쇼를 위해 디자인한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클래식한 아워 글라스 실루엣 혹은 루스하게 입을 수 있도록 변형 가능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입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보디에 맞게 원하는 대로 형태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로우면서도 개인 맞춤형 디자인이 요구되는 요즘 시대에 부합하죠.
치우리의 말이다. “우리가 현재 맞닥뜨리는 불안하고 예민한 감정을 위해서도 완벽하게 잘 어울리도록 만들었습니다.” 디올의 이 재킷은 버지니아 울프와 수잔 손택같이 집에 대한 애착을 발판으로 작품을 쓴 20세기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손택은 의외로 이번 시즌의 뮤즈로 종종 등장한다. 일례로 1992년의 소설 〈화산의 연인(The Volcano Lover)〉은 에르뎀 모랄리오글루의 무드 보드에 등장하기도 했다. 로맨틱한 이브닝웨어로 유명한 이 패션 하우스의 디자이너는 이번 시즌 투알 드 주이 패턴(자연 풍경이나 소박한 전원풍의 중세기 전경을 담은 회화적인 날염 무늬) 룩에 오버사이즈 카디건을 묶어 연출했다.
비트족스러운 엉성한 니트와 18세기 모티프를 프린트한 데님의 대조는 모던하면서도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죠.
모랄리오글루가 말한다.
어쨌든 옷으로 단단히 감싼다는 건 안전함과 동시에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인지 디자이너들은 고급스러운 레이어(주섬주섬 블랭킷을 걸친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로 코쿠닝, 즉 누에고치처럼 돌돌 감는 듯한 느낌을 주는 룩을 제안하고 있다. 프라다에서 케이프는 보디 주변을 감싸 안고 있는 느낌이 들고, 가브리엘라 허스트 쇼에서 모델들은 핸드 니트 캐시미어 루아나(판초 같은 형태의 겉옷)를 입었다. 펜디는 또 어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자신만의 하우스 코트 버전을 선보였는데, 그것은 하우스의 장인들에 의해 완성된 정교한 깃털과 퍼로 장식된, 마치 폭신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만 같은 쿠틔르적인 옷이었다.
집에서의 편안함을 더해주기 위해서 자수 장식의 하우스 코트를 제작했어요.
라고 실비아는 말한다. “이탤리언 공예와 더불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하우스 코트는 그녀가 ‘모성애의 기념품’이라 부르는 것으로(마치 엄마에게서 딸로 전해지는 가보처럼) 록다운 기간 로마의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생각한 아이디어의 결과물이다.
패션은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한다. 컬렉션은 우리가 다음 시즌 입고 싶은 옷을 예상하기 위해 몇 달 전 미리 디자인되는 것들이고. 하지만 현재를 해석하고 여기에 아름다움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의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전히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혹은 허리 밑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차려입고 싶은 갈망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의 말처럼
이 시간은 성찰과 조용한 순간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래서 안락함이 필수적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