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으로 탈바꿈하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이미 만들어진 옷을 가져와 디자인을 더해 새 옷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문장 하나의 길이는 짧지만, 실은 엄청난 양의 탄소발자국을 줄여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움직임을 뜻한다. 묵묵히, 그리고 꿋꿋이 이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이끌어 온 코오롱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레코드(Re;code)’ 박선주 팀장과의 일문일답.

2012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수년 째 레코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해서 반복적으로 열심히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회사답게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고, 저는 처음에 컬렉션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참여했어요. 레코드는 시작할 때부터 코오롱 외부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재고를 활용한 컬렉션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습니다. 업사이클링은 디자이너에 따라 상당히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는 영역이고 여러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것으로 그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레코드에게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또 신진 디자이너에게도 의미있는 콘셉트 아래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레코드 이름으로 매장이 처음 생긴 건 2014년이죠?
그렇습니다.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자를 만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입니다. 해외 트레이드 쇼에는 2013년부터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해외 편집숍 바이어에게 오더를 받았어요. 레코드의 브랜드 스토리만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유수의 바이어들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디자인이라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죠.
당시만 해도 친환경 패션, 지속가능성 패션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습니다.
‘대세’라는 인식이 강했었죠. 2016년도에는 ‘서스테이너블’만 메인 테마로 하는 해외 트레이드 쇼에도 나갔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업사이클링 브랜드 100여개 브랜드가 모여 있었어요. 그때의 붐을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레코드는 그 사이에서도 좀 독보적인 브랜드로 인정받았던 것 같아요.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드는 브랜드와 달리 우리는 재고 의류를 통해 독특하고 세련된 옷을 재창조하는 브랜드였고, 그 스토리에 다들 집중해준 것 같습니다.
요즘은 친환경 카테고리에 머물기보단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가요?
이제는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은 브랜드에서 굳이 이걸 내세워야 하나 할 정도로 기본적인 요소가 되었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국내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친환경적인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고요. 지구 환경을 위해 디자인한다는 개념이 이제는 훨씬 더 넓어졌어요. 그러니 바이어들도 “사실 멋있는 브랜드가 1순위, 그리고 친환경 스토리가 깔려 있으면 더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속가능성이 하나의 메리트가 된 것이지, 친환경만 찾아나가는 패션 브랜드는 아니니까요.

사실 대기업 산하 프로젝트가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게 지속가능성인가요? (웃음). 사실 사업성을 고려해서 내부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는 있지만 코오롱 안에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있고 그 브랜드로부터 받아서 쓸 수 있는 재고의 재료들이 있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이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게 재료를 찾아 나서요. 데님 편집샵의 재고를 쓸 수도 있고 니트 브랜드의 재고를 받을 수도 있고요. 또 원단 생산업체와 함께 일하기도 합니다. 옷을 대량으로 만들다 보면 발주 원단 자체가 남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폐기하기 전에 우리가 받아서 잘 활용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레코드가 코오롱의 사회적 활동(CSV)의 일환인가 생각했지만, 지금은 마케팅 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패션 브랜드라는 생각이 더 커졌습니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을 생산 인력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패션계의 숨은 장인들을 제대로 대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활동의 의미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 과정이 모두 자연스러웠습니다. 누구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업사이클링이라는 스토리를 구현해내는 과정 속에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죠. 기존에 만들어진 옷을 가져와 노들섬에 있는 레코드 아틀리에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옷을 해체하고 재봉하는 장인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작은 부자재를 뜯고 붙이는 일은 또 외부에 있는 약자 계층의 인력에게 부탁할 수 있게 됐고요.

노들섬에 자리 잡고 있는 레코드 아틀리에의 전경과 제작 과정

노들섬에 자리 잡고 있는 레코드 아틀리에의 전경과 제작 과정

한 번의 옷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기존 디자인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가요?
디자이너가 어떤 디자인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완성된 재고품을 먼저 골라야 해요. 실제 재료로서의 옷을 고르러 가야하니 때문에 물리적인 과정이 하나가 더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라면 기본적으로 재고를 대했을 때 이 옷을 영혼까지 살려낼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정말 옷이 별로라도 나는 살릴 수 있다”와 같은 정신. 모든 디자이너들이 정말로 그런 마인드로 옷을 대합니다.

레코드 2020 S/S 컬렉션

레코드 2020 S/S 컬렉션

레코드의 모든 옷은 재고에서부터 출발하나요?
섞여 있어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팔 부분은 재고가 된 셔츠에서 가져왔고, 검은색 보디 부분은 남는 원단을 가져와서 붙인 경우입니다.
아예 새로운 친환경 원단을 발주해서 하는 제작하는 경우도 있나요?
회사 내에 몇 개 브랜드가 모여 재생소재를 활용해보자고 취지로 진행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단독으로 재생소재를 사용해서 컬렉션을 만든 적은 없어요. 레코드는 워낙 만드는 옷의 수량이 적은데, 원단을 새로 발주하게 되면 그것 역시 또 재고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업사이클링으로 옷을 만들 때 기존 재고의 이미지를 아예 탈바꿈시키는 것이 목표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제가 실제로 디자인에 참여하는 디자이너였을 때 저의 기본적인 목표는 최대한 원래 재고가 가진 스타일의 장점을 살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좋은 디테일이 보이고 훌륭한 소재가 있는데 사이즈가 너무 작거나 너무 커서 안 팔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옷이 안 예뻐서 안 팔린다기보단, 이를 테면 소매가 너무 타이트하다는 작은 결함으로 안 팔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업사이클링을 통해 그 부분만 살짝 고쳐 옷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디자인을 하는 겁니다. 또 업사이클링의 방식을 기존과는 다르게 가져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브랜드가 양적으로 성장을 해야하는 시점이기 때문이에요. 기존 재고의 스타일을 버리고 기존 재고에서 작은 디테일들을 차용해 새 옷을 50~100장 정도 만드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업사이클링 컬렉션도 국제적인 유행을 고려하나요?
너무 ‘저세상 패션’으로 갈 수는 없고, 10년전과 똑 같은 옷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원하는 컬러나 소재를 최신 유행에 맞게 골라서 쓸 수는 없지만 최대한 뽑아내려고 해요. 재미있게도 3년 전의 재고에서도 지금 유행할만한 것을 골라내는 일이 가능합니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미래를 생각하며 옷을 디자인하니까, 조금 시즌이 지났더라도 지금의 유행에 맞는 부분이 꼭 있습니다. 그걸 디자이너들의 안목이 중요하죠. 또 최근엔 레트로가 유행이라서 업사이클링의 측면에서는 장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옷을 가져와 디자인을 더해 새 옷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문장 하나의 길이는 짧지만, 실은 엄청난 양의 탄소발자국을 줄여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움직임을 뜻한다. 묵묵히, 그리고 꿋꿋이 이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이끌어 온 코오롱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레코드(Re;code)’ 박선주 팀장과의 일문일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