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혜선, 그녀의 성장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지난 시간은 배우 신혜선의 묵직한 재산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묵묵히 있을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밝게 빛나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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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백〉이 곧 개봉해요. 촬영을 마치고 1년 만에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을 마쳤고, 또 다른 영화 〈컬렉터〉도 찍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두 달째 백수로 살았어요.(웃음) 쉴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서 쉬는 편인데, 활동을 안 하면 오히려 잔병 치레만 해서 오래 쉬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쉬는 것도 지루해질 즈음 이제 막 〈결백〉을 위한 홍보 활동에 들어갔어요.
첫 주연 영화네요.
지금까지 영화보다 드라마에 더 매력적인 역할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선택해왔던 것 같아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들떴어요. 책임감을 갖고 잘해봐야지 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앞으로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얼마만큼 더 노력을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영화를 끌고나가는 존재감이 무엇인지, 많은 선후배와 동료들이 집중도 높은 작업에 어떻게 임하는지 알아가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첫 영화를 선택하기에 많은 생각을 떠올렸을 거예요. 어떤 점에 이끌렸나요?
제 견해가 넓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모녀 이야기는 예를 들어 엄마가 아파서 딸이 간호를 하고, 현실적이거나 일상적인 데서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결백〉은 엄마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면서 무죄를 주장하려는 딸의 모습을 보여줘요. 연을 끊었던 모녀가 다시 만나는 지점도 신선하다고 느꼈고. 재미있는 건 대본을 받았을 때 드라마 촬영 중이라 바빠서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거든요. 대본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간 사이에 아빠가 읽어보시고는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래?” 하면서 더 관심 있게 봤어요. 타인의 추천을 반영해 고른 첫 작품이에요.(웃음)


백리스 니트는 Tod’s. 슬랙스는 Boss. 진주 목걸이는 Ellepeut. 뮬은 Bottega Veneta.

백리스 니트는 Tod’s. 슬랙스는 Boss. 진주 목걸이는 Ellepeut. 뮬은 Bottega Veneta.

엄마와 딸의 이야기라 선택하는 데 어머니에게 영향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어요.(웃음)
엄마는 안 봐주셨어요. 그냥 평범해요. 엄마는 저 챙겨주고 저는 철없는 막내딸이죠. 엄마한테 징징거리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엄마는 그런 저를 나무라기도 하지만 제가 없을 때 방을 치워주시기도 해요. 촬영할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몸이 딸리는 직업이라 그런지 안타까워하면서 어리광을 받아주시는 거죠. 〈결백〉을 촬영하는 동안은 엄마 생각이 나서 “아 엄마한테 잘해야겠다.” 그러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똑같아지더라고요.
처음부터 범인이 존재하는 추적극이라는 구조가 연기에 임하는 배우에게도 또다른 긴장감을 주었나요?
엄마가 막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연을 끊고 살았던 로펌 변호사 딸이 무죄를 입증해나간다는 게 큰 줄기이고, 딸은 엄마가 누명을 썼다를 전제로 이 사건을 대면해요.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그렇게 시원시원하게만 나아가진 않잖아요. 어디로 뻗어나갈지 저조차도 안개가 낀 것처럼 안 보일 때가 있었어요. 확신이 없을 때는 감독님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근차근 끝까지 마쳤던 것 같아요.
정인이란 인물에게서 묻어나오는 혼란스러움, 그 지점을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일 수 있겠어요.
정인이가 엄마의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묘하고 이상하고 수상한 점들이 드러나요. 어떤 작품을 연기한다는 건 머릿속에 길을 내는 일이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내놓은 길을 따라가는 작업인데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아마 관객도 비슷한 감정을 가질 것 같아요. 어떻게 다가갈지 그건 저도 정말 궁금해요.
“나를 불타오르게 하는 역할을 선택한다.”고 했어요. 정인은 그런 역할이었나요?
정인이는 시골마을에서 공부에만 매달린 애예요. 언젠가 여기를 뜰 거라면서 이를 악물고 살다가 아빠한테 폭력을 당해서 도망치고 결국 원하는 대로 성공하죠. 엘리트스럽지만 정통 엘리트는 아닌, 혼자서 독학해서 성공한 느낌이 좋았어요.(웃음)


트위드 재킷은 Your Name Here.

트위드 재킷은 Your Name Here.

배종옥 배우와의 공연이 남긴 것이 있을 거예요.
노인 분장을 해야 해서 준비 시간이 몇 배나 걸리는데도 힘든 내색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한겨울에 촬영하면서 비 맞는 신이 있었거든요. 너무 추워서 저도 모르게 흐트러질 때도 배종옥 선배님은 얇은 옷 한 장만 입고 “한 번 더 해볼까?”라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열정적인 모습에 많이 배웠고 나에게도 저만큼의 열정이 있나 늘 반문하게 만드는 분이셨어요.
여성 서사 영화가 그 어느 때보다 환영받고 있어요. 〈결백〉도 두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이 돼요.
시골에서 살던 우리의 윗세대 여성과 지금 시대의 여성 두 명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어요. 도시 밖에 사는 여성들에게 강요됐던 개인적이지 못한 삶의 굴레에서 엄마는 벗어나지 못했고 딸은 도망쳤어요. 이런 삶의 대비를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시청자들은 말해요. 당신의 성장을 천천히 봐왔다고. 그만큼 오랫동안 차근차근 활동을 해왔어요. 배우 신혜선의 가장 큰 강점이지 않을까 해요.
배우의 시작점부터 모든 순간을 대중이 기억한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이지만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요. 가끔 신인 시절을 생각하면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전부 저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받아주고 “이랬던 애가 지금 주인공을 하고 있구나.” 대견하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고요. 아, 너무 오글거려요.
오글거리는 걸 못 참나봐요.(웃음)
저 진짜 싫어해요. 제가 이 직업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순간들이 많아요. 촬영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여러가지 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사진 찍을 일도 많고, 영상 찍을 일도 많고, 예를 들면 상큼한 모습, 귀여운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 순간요. 그리고 이렇게 내 얘기를 많이 해야 될 때도 있고. 원래 성격이랑 안 맞아요. 활동 초반에는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차라리 연기로 다른 사람이 되는 쪽이 편안한!
맞아요! 작품 속에서 대본을 기반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괜찮아요. 춤추라면 출 수 있고 노래하라면 할 수 있는데 신혜선으로 하는 건 힘들어요.


프릴 원피스, 베스트는 모두 Etro.

프릴 원피스, 베스트는 모두 Etro.

배우 신혜선을 수식하는 또 하나, 흥행보증수표라고들 하죠. 지금까지 성적이 다 좋았어요.
아니에요.(웃음) 어릴 때 잘되는 드라마에 조단역으로 출연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드라마 〈비밀의 숲〉 이후부터 〈단, 하나의 사랑〉까지 결과가 그렇게 좋았는데도요?
저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연이어 전혀 다른 역할을 맡았으니까요. ‘깨발랄한’ 애였다가 천생 여자였다가 어린애였다가 나이 많은 사람 됐다가, 또 어떤 때는 펑펑 울고. 그래도 자기 만족은 언제나 어려운 것 같아요. 기자님도 혹시 기사 쓰시고 “와, 기가 막혔다.” 이러세요?(웃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늘 어려워요.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없는 편인가요?
일반적으로 작품이 흥했다 망했다를 정하는 건 시청률이나 관객 수가 지표가 돼요. 하지만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 망했다고 판단할 작품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한 명한테만이라도 그 작품이 감동을 주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절대 망한 게 아니잖아요. 지표가 시청률에 따라 좌우되는 건 어쩔 수 없고 높게 나오는 게 싫지 않지만 숫자에만 매달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연기만을 꿈꾸고 공부도 쭉 연기 쪽만을 해온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 주변 친구들 모두가 배우를 꿈꿨어요. 다들 연기밖에 몰랐고 저 역시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과 학창시절에 배웠던 건 아예 달라요. 실전에서 하는 것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 같아요. 몸을 부딪히면서 배워야지만 습득이 되는 것 같고. 전 아직도 배우고 있어요.
오래도록 하고 싶은 걸 이룬 순간 느꼈던 기분을 여전히 기억하나요?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보통 사회생활을 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와 있을 때는 더욱 그렇고요. 그래도 저는 이 일이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 일만 꿈꿨기 때문에. 최근에 쉬는 동안 자기 전에 문득 너무 꿈만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줄곧 드라마를 찍다 영화나 MC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어요. 올해는 더 새로운 배우 신혜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편하면 완전 다 보여주고 불편하면 잘 보여주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익숙한 걸 좋아하고요. 변화를 크게 좋아하진 않아서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를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안 해본 전혀 다른 느낌의 역할을 만나보고 싶어요. 거친 양아치 같은?(웃음)

셔츠, 재킷 모두 Lemaire. 쇼츠, 벨트는 모두 Lanvin Collection.

셔츠, 재킷 모두 Lemaire. 쇼츠, 벨트는 모두 Lanvin Collection.


배우의 시작점부터 모든 순간을 대중이 기억한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이지만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요.

지난 시간은 배우 신혜선의 묵직한 재산이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묵묵히 있을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밝게 빛나는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