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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불꽃 같은 걸작이다. 격렬하게 불타는 대신 천천히 타오르는 (시아마는 최근 인터뷰에서 불어에 영어의 slow burn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영화여서 발동이 느리게 걸리긴 하는데 그게 과연 단점일까? 모든 훌륭한 연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과정이고 우린 그 디테일을 느긋하게 음미하고 싶지 않던가? 최근에 이처럼 밀도가 높은 로맨스 영화가 몇 편이나 나왔던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압축된 대작이다. 작은 섬을 거의 떠나지 않고 중요한 캐릭터는 겨우 네 명에 불과하지만 정작 이 소박한 재료로 만들어진 세계는 광대하다. 시각 매체의 남성시선, 예술가와 모델의 관계와 같이 문명의 시작과 함께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들이 18세기와 21세기의 관점을 오가며 교정된다. 모든 장면이 혁명을 외치고 있는데 그게 로맨스를 망치는 대신 오히려 살리고 있다. -듀나(영화평론가)
사마에게



〈사마에게〉는 와이드스크린 전쟁 대작이다. 시리아 내전 때문에 알레포에 고립된 저널리스트와 의사 커플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치료하고 이 모든 사실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실화이다.
여기까지는 다들 익숙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관객들이 스크린을 통해 보는 모든 것들이 감독이자 주인공인 와드 알카팁이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찍은 진짜라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참상의 기록으로 머무는 대신 주인공이 딸 사마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태를 갖추면서 훨씬 개인적인 회고록으로 전환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해졌던 둔중하고 값비싼 매체가 점점 모두가 쓸 수 있는 볼펜과 노트의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사마에게〉는 그 진화의 과정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듀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