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엄마, 예술가, 나

대만의 포토그래퍼 애니 왕은 2001년, ‘My Belly, My Baby’라는 문구를 배에 휘갈기고 충동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해마다 한 장씩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며 그녀가 남긴 ‘엄마 예술가’로서의 기록들.

BYBAZAAR2020.01.25
 

MY BELLY, MY BABY

결혼 직후인 2000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공포와 스트레스로 가득 찬 자신만 있을 뿐, 내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어 보였다. 사회에서 아티스트로서의 역할은 그대로였지만, 가정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나 자신을 희생해야만 가능한 것 같았다.
나는 임신의 두려움에 대해 표현한 여성 아티스트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그 어떤 모델도 찾지 못했다. 문학작품에서 찾은 소수의 책들이 전부였을 뿐. 이것이 내가 처음에 ‘The Mother as A Creator’ 프로젝트를 계획한 이유다. 내 첫 번째 박사 학위 지도자는 보수적인 서양 세계와 고차원적인 예술을 이유로 들며 내 프로젝트에 반대했다. 그녀는 내게 “그런 작은 문제들은 연구할 가치가 없으며, 이 프로젝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한 동양인 엄마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나는 브라이튼대학으로 옮겼고, 새로운 박사 학위 지도자이자 나의 지지자인 크리스 뮬런을 만나서 비로소 모성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2003년

2002년/2003년

여러 가지 임신 증상을 겪으며, 내 몸은 새로운 생명을 기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소중하면서도 참 어려운 과정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예술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장기 프로젝트를 맡아봤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창조한다는 것은 예술작품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반드시 존중받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2001년의 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엄마의 희생이 강요됐고 임산부의 기본적인 권리는 무시당했다. 나 또한 종종 불쾌한 일을 겪었다. 예를 들어 대만의 가장 좋은 의료기관 중 한 곳에서 태아의 초음파 검사를 할 때 나는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보지 못했다. 화면이 보호자 등 다른 사람만 볼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피실험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가만히 누워 그들이 남편에게 설명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출산 예정일 하루 전, 화가 난 나는 배에 “My Belly, My Baby(나의 배, 나의 아기)”라고 적었다. 임산부로서의 자기 결정권을 선언하는 행위였다. 출산 뒤에 나는 그 사진을 크게 출력했다. 큰소리로 항의하고 싶었던 마음을 대변한 것이었다. 
저와 제 몸이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냈어요. 보이나요?
 
 

MOTHER AS A CREATOR 

2004년

2004년

프로젝트 초반엔 엄마로서 해야 하는 새로운 역할들이 예술가로서의 내 자아를 어떻게 위협하는지에 집중했다. 대만의 ‘엄마 예술가’들, 그리고 모성애에 관한 작품을 찾아봤을 땐 비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너무 적은 숫자의 엄마 예술가들만이 겨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모성애가 어떻게 여성 예술가들을 방해하는지, 어떻게 둘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깊어졌다. 그 답은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 가지 시각적 전략을 세웠다. 자기 표현, 가족 사진, 그리고 일련의 시간을 거칠 것.
 
2005년/2006년

2005년/2006년

이 프로젝트 전에도 나는 사진 작업을 통해 가부장적인 대만 사회와 거기 억압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전 작업들이 궁지에 내몰린 여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프로젝트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야기하는 나의 혼란을 그저 담담하게 묘사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하지 않은 세상의 많은 엄마들과 ‘올바른’ 엄마가 되길 강요받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예가 되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지금껏 내가 받았던 많은 피드백 중에서 인상 깊었던 한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대만의 한 젊은 디자이너로부터 받은 메시지다.
“대만 국적 여성으로서, 저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나는 우리 엄마 같은 삶을 살기는 싫어요. 전통적인 어머니 상의 덫에 걸리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욕구가 고개를 내밀어요. 오늘날, 당신이 증명하는 것처럼 저는 누군가의 엄마 또한 자신의 권리와 창조성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은 제가 새로운 미래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MY FAMILY

2010년/2011년

2010년/2011년

아들이 처음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표한 건 열네 살이 되던 해였다. “엄마, 사진을 찍는 과정은 힘들지만 이 사진이 전 세계에 전시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지금 아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사진 작업은 이제 우리 집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이건 우리 삶의 기록이에요. 우리가 더 많이 기록할수록 더 많은 사랑을 길러낼 수 있겠죠.”
 
2014년/2018년

2014년/2018년

아들의 말대로 프로젝트를 지속하면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 변화가 이어졌다. 우리 집안에서 엄마가 된다는 건 엄마 혼자 겪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모성애는 모두가 공유해야 할 중요한 경험이니까. 남편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날 그는 내게 여성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부럽다고 고백했다. 임신과 출산은 이 나라에서 평가절하되던 일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남편 또한 아버지로서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아들은 2020년에도 나와 한 장의 사진을 찍을 것이다. 올해가 지나면 아들은 성인이 된다. 그리고 아들이 앞으로도 나와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나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 계속, 계속 이어갈 것이다. 엄마로서, 예술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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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Annie Wang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