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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DREAM, BIGGER DRESSES
2020 S/S 시즌 헬퍼와 함께 쇼 퍼포먼스 중인 모델 아리엘 니콜슨.
패션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일본인 디자이너 토모 고이즈미. 〈러브〉 매거진 편집장이자 저명한 스타일리스트 케이티 그랜드가 디자이너 자일스 디컨의 인스타그램에서 코이즈미의 구름 같은 무지갯빛 드레스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는 이 드레스를 뉴욕 패션위크에 소개하고자 코이즈미에게 DM을 보냈고, 그는 바로 응답했다. 그로부터 3주 뒤 마크 제이콥스, 캐스팅 디렉터 아니타 비튼, 헤어 스타일리스트 귀도 팔라우,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 네일 아트스트 진순, 벨라 하디드를 비롯한 A급 패션 모델들이 그의 조력자로 나섰다. 쇼장은 매디슨가에 자리한 마크 제이콥스 스토어. 수백 미터의 폴리에스테르 오간자 소재를 겹겹이 쌓아 올린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드레스들이 계단을 내려오자 보는 이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쇼 직후, 인스타그램에 도배된 그의 드레스 군단은 성공적인 쇼를 치러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난 9월, 그의 주름 장식 작품에 현혹된 패션계의 내로라 하는 베테랑들이 그의 두 번째 쇼를 위해 또 한번 뭉쳤다.
당신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인스타그램 팔로 숫자만 보아도 당신의 추종자들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옷을 좋아한다고 DM을 보낸다. 그중 드래그퀸 김치가 “Your pieces are amazing.” 이란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린 뉴욕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그녀에게 빠졌다. 앞으로 그녀와 재미난 프로젝트를 할 계획이다.
지난해 2월 치러진 뉴욕 데뷔 쇼는 무명에 가까웠던 당신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상상보다 더 꿈같은 시간이었다. 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어벤저스 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였다. 장소부터 캐스팅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실 쇼가 끝나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관광할 시간이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단연코 아니었다. 많은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연락이 왔다. 옷 가격에 대해선 생각도 안 해봤는데 말이다.(웃음)
미술을 전공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미술가가 꿈이었나?
미술은 졸업 후 취업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14살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꿔왔다. 줄곧 남성 잡지만 보다 서점에서 처음으로 여성 잡지 〈소엔(Soen)〉을 보게 되었다. 거기서 존 갈리아노의 2003년 크리스찬 디올 쿠튀르 쇼를 접하게 되었다. 러플과 실크로 이루어진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운 실루엣, 이 사진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14살 때 빈티지를 커스터마이징한 드레스. 본격적으로 옷을 만든 건 대학 시절 주변 여자친구들의 ‘클럽’ 의상이었다. 우연히 이를 본 바이어가 연락을 해왔고, 또 다른 스타일리스트에게 날 소개시켜줬다. 자연스럽게 스물세 살에 코스튬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다. 레이디 가가를 비롯해 다양한 일본 아이돌의 공연과 광고 촬영을 위한 의상을 만들었다.
초기 디자인을 찾아보니 크롭트 톱이나 미니 드레스 등 몸의 실루엣을 강조한 옷이다. 지금의 동화 같은 볼륨 실루엣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거대하고 아름다운 드레스는 내가 늘 동경하던 디자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디자인 초창기에는 지금의 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전혀 없었다. 점차 노하우가 쌓이고 재단 기술이 향상되다 보니 이미지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여성스럽지만 특별한’ 컬렉션을 건설하는 것이다.
일본 문화에서 주로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전통적인 가부키 연극과 히나마쓰리 인형, 로봇, 세일러문(데뷔 컬렉션에도 영감을 준) 같은 만화 시리즈, 장례에 관련된 일을 하는 어머니가 인공꽃으로 만든 장례식 배너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언급한 점이 무척 독특하면서도 귀엽다.
세일러문처럼 만화 속 미소녀 전사들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캐릭터들 각자가 가진 시그니처 컬러를 통해 차별화된 파워를 지닌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2020 S/S 컬렉션에 관해 주목할 만한 특징 몇 가지를 짚어달라.
지난 시즌보다 더 거대한 볼륨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뉴욕 첫 쇼 때는 28개의 룩을 선보였지만 이번엔 단 7개의 룩으로 컬렉션을 축소했다. 이는 내가 판매가 아닌 창작에 몰두하는 아트 DNA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구매하거나 입을 수 없는 아주 거대한 드레스와 점프수트를 만들었다. 늘 그래 왔듯 수백 미터의 일본산 폴리에스테르 오간자 소재로 만들었으며, 형형색색의 컬러로 조합했다. 여기에 마치 선물 포장을 한 듯 사랑스러운 리본 장식으로 마무리했다. 이것은 이번 컬렉션의 또 다른 테마 중 하나인 ‘세상에 대한 나의 선물’과도 이어진다. 지난 시즌 힘써준 사람들에게 즐거움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한 편의 연극 같았던 퍼포먼스도 눈길을 끈다.
무브먼트 디렉터 팻 보구슬로스키와 함께 고민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인형 옷 갈아입히기’와 개인적으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일본 왕실의 환복 의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트랜스젠더 모델인 아리엘 니콜슨은 드라마틱한 콘 모양 헤어를 한 채 일곱 벌의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소 괴상한 움직임과 함께 빙글빙글 돌았다. 이상해 보였지만, 패션과 퍼포먼스가 완전한 조화를 이룬 순간이랄까.
뉴욕 데뷔 쇼였던 2019 F/W 시즌. 아름다운 드레스 군단으로 완성한 환상적인 피넬레.
당신의 드레스는 하나의 쿠튀르 피스라 생각이 든다. 한 벌을 완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린다. 온갖 컬러풀한 폴리에스테르 오간자로 가득한 나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제작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선보인 〈CAMP: Note on Fashion〉에 전시되었다. 소감은?
메트 갈라를 위해 드레스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나의 큰 꿈 가운데 하나를 이뤘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옷을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가?
데뷔 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커머셜 피스나 스토어 오픈, 편집숍에서의 판매 관련 문의를 많이 했다. 사람들이 내 디자인을 ‘입을 수 있는 옷’이라 생각할지 몰랐다. 파티에 입고 가고 싶다니!(웃음) 판매는 이메일을 통해 주문하면 제작하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함께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연락에 무척 기뻤지만 동시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나는 상업적인 디자인을 잘 못한다. 때문에 투자를 받아 브랜드를 키우기보다는 다른 브랜드와 협업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얼마 전 레고의 ‘리퍼블릭 더 월드’ 캠페인을 함께했으며, 런던 레스토랑 비스트로테크(Bistrotheque)를 위해 러플 소재로 레인보 컬러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제작했다. 또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곧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커머셜 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 반은 패션 쪽에 있지만, 그 나머지는 엔터테인먼트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상업적으로 무언가를 팔아야겠지만 지금은 계속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글쎄. 우아하고 무엇보다 ‘아주 큰’ 유산을 지닌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이 아닐까?
디자이너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토모 고이즈미의 드레스를 선물해주고픈 여자는 누구인가?
가수 겸 영화배우인 비요크(Bjork). 나의 뮤즈이다.
‘지속가능 패션’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지속가능 패션에 대해 크게 생각하진 않지만, 중요하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다. 나는 주문받은 옷만 제작하기 때문에 과잉 재고를 만들지 않는다. 내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덧붙이자면 폴리에스테르 오간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세탁기로도 세탁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옷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