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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의 기억법

끈질기게 추적하되 분노는 삼키며 아름답게 되새기되 미화하지 않는다.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과거를 곱씹는 임흥순 감독이 신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로 돌아왔다.

BYBAZAAR2020.01.08
임흥순 감독은 불현듯 생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항상 과거를 좇는다. 그에게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안긴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은 ‘구로공단의 그 많던 여공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는 개인적 의문에서 싹튼 이야기다. 해결의 실마리를 쥔 시대의 증인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이르게 된 곳이 바로 1970년대 방직공장. 그곳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 속에서 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거시사를 위해 희생됐던 미시적 존재들의 몸부림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적인 인터뷰만으로는 그 위대한 투쟁의 역사를 온전하게 기록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미학적인 효과를 끌어들인다. 회화적이거나 추상적으로 표현된 재현 장면과 꽃나무, 돌, 바람 등의 자연 이미지가 극적으로 치닫는 인물과 관객의 감정을 무심하게 끊어내는 연출 기법은 그런 의도로 쓰인 것. 이는 평론가들이 그의 다큐멘터리 앞에 ‘아트’라는 수식어를 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신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임흥순식 화법의 반가운 답습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자연스레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도록 내버려둔 이전 작품과 달리 3인의 중심인물을 내세워 보다 적극적인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것은 분명 눈에 띈다. 영화 전면에 앞세워진 독립운동가 정정화, 빨치산 김동일, 투쟁가 고계연은 한국 근현대사에 시시때때로 닥친 분열의 조짐 속에서 모두 화해와 하나됨을 꿈꿨다. 그리고 임흥순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100분 동안 세 여성을 비추는 감독의 더없이 조심스럽고 따뜻한 시선은 말보다 진하며 그렇게 임흥순의 다큐멘터리는 지나간 존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헌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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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류가영
  • 사진/ 엣나인필름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