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라떼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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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라떼다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었으니 이로써 우리의 ‘꼰대력’도 한 단계 더 상승할까? 어느덧 ‘라떼’가 된 80년대생과 ‘사회초년생’ 90년대생이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각자의 사정을 말한다.

손안나 BY 손안나 2019.12.27
 
90년대생의 응답
내가 태어나던 1994년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아빠는 엄마가 더위를 조금이라도 덜 느끼도록 매일 아파트 옥상에 가서 찬물을 뿌렸다고 한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계절 나는 태어났다. 대학 원서를 작성했던 때가 기억난다. 설렘과 불안을 한 데 안은 채 행정학 전공에 지원했던 7년 전. 행정학에 대해 심도 있는 탐구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무난하게’ 대학을 다니고 ‘무난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였을 뿐. 그래서 공무원이 되었냐고? 그랬다면 지금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공무원 시험 준비도 하지 않았다. 목표가 있어서 다른 길을 간 것은 아니다. 그저 길 수도 있는 수험 기간을 버틸 만큼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없었을 뿐. 〈90년생이 온다〉에서 설명하는 그들처럼 9급 공무원을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는 점에서 나 또한 90년대생들을 대표한다. 이 책은 그렇게 꿈이 없고, 줄임말을 밥 먹듯 쓰며, 삶의 유희를 추구하는 90년대생들에 대해 다룬다. 나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이 탐구할 거리라도 되는 양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킥킥거리며 읽을 때도, ‘혹시 내가 젊은 꼰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며 책장을 넘길 때도 있었다. 특히 90년대생들이 ‘병맛’이 가미된 ‘드립’을 좋아하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진지국’을 끓인다니. 물론 재미있는 ‘드립’이야 좋아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상황에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모 기업에서 채용 문자에 유행어를 썼던 것이 논란이 됐듯 말이다. 이는 몇 년 전까진 통하던 유머 코드였을 수 있으나 현 시대엔 단연코 통하지 않는 ‘드립’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은 그만큼 우리가 채 적응하기도 전에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 책이 발행된 지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 것처럼 말이다.
 
나와 가까운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그보다 훨씬 다채롭고 복잡한 한 세대를 특정 짓고 정의 내리기란 더 힘든 일이다. 옳고 그름 또한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그들의 모습을 애써 모방하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작가가 강조한 포용력과 열린 자세로 말이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80년대생의 질문
상사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정답은 ‘라떼’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 내 윗세대를 향하는 걸로 생각하고 낄낄대던 ‘라떼’가 사실은 내 얘기라는 걸, 사회초년생인 90년대생이 현업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며 일하는 상사가 80년대생이라는 걸, 우리 팀의 직속 후배가 나보다 8살 어린 90년대생이라는 걸 깨닫고 앞으로 ‘라떼’는 끊고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틴더가 꼽은 Z세대가 올해 가장 많이 쓴 신조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출생자를 통틀어 ‘밀레니얼 세대’라고 묶지만 80년대생이 사회에서 위치를 차지하면서부턴(꼰대화가 가동되면서부턴) 이는 점점 나이브한 분류가 되었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은 다르다. 80년대생인 우리는 우리를 ‘낀 세대’라고 자칭한다. 40대 기성세대의 구태에 분노하면서도 자유로운 20대에겐 박탈감을 느낀다. 80년대생은 조직에 충성하면서도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된 이들이랄까. 그런 80년대생에게도 아예 조직이 아닌 개인으로 존재하는 90년대생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를 어려운 존재다. 때문에 내겐 이 책에서 80년대생과 90년대생을 비교한 대목이 가장 흥미로웠다. 모바일 세대와 PC세대로의 구분이 가장 심플해 보인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기사를 썼다는 후배의 말에 기함을 한 적 있다. 아이폰 3gs는 내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나왔으니 말이다. 하긴, ‘라떼는 말이다’. IMF 때문에 수학여행이 취소됐고 엑스재팬 CD를 사는 건 불법이었다. 심지어 토요일에도 등교했다.
 
이 책의 주제문인 ‘그들은 왜 9급 공무원을 지향하는가’에 대해 말하자면 내 세대부터 이미 그런 전조는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었고 매년 올해 취업률이 역대 최악이라는 뉴스가 갱신됐다. 이게 내가 ‘라떼’가 아니라고 착각한 이유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은 윗세대에 대한 분노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음은 공유하고 있으니까. 사회에 나와보니 잔치는 이미 끝나 있었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IMF 이전 세대의 그릇을 설거지해야만 하는 운명임을 직감했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자주 “우린 아마 안 될 거야”라는 유행어를 쓰며 자조했을 뿐. 그리고 요즘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그들은 희망의 불씨가 남은 모호한 전망 대신 그저 이렇게 탄식한다. “망했다…!” 10년 전 이맘때 투애니원이 “넌 뒤를 따라오지만 난 앞만 보며 질주한다”며 “내가 제일 잘 나간다” 외쳤다면, 요즘 걸 그룹 있지는 “네 기준에 날 맞추려 하지 마 난 지금 내가 좋아 나는 나야 달라 달라”라고 말한다. 이들의 다름은 망해버린 시대를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을 둘러싼 세대 간의 온도 차이다. 다른 세대는 이 책을 흥미롭게 바라보지만 정작 90년대생은 거부감을 드러낸다. 불편함의 실체는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외계인처럼 인식하기 때문 아닐까. 어른들이 그들의 잣대로 90년대생을 재단할 때, 우리는 그것이 다수와 소수를 가르는 구별일 수도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어휴, 요즘 애들은 신인류야, 그러니까 아예 건들지를 마.”라는 호들갑이 과연 건강한 해결책일까? 그들은 정말 다르기만 한 존재일까? 조금 ‘덜’ 다른 80년대생은 알 것도 같다. 그들의 뇌구조가 다른 게 아니라 단지 사정이 다른 것뿐이라는 걸. 
에디터/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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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사진/ Getty Images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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