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의 기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바로 지금 그 무엇보다 절실한 기술. | 해장,술,연말,숙취,음주

 ━  역세권보다 해장국세권   20년 음주 인생길을 다정하게 손 붙잡고 걸어온 수많은 해장 음식 중에서 딱 하나만 ‘최애’를 꼽으라면 뭘 꼽을지, 아무도 안 물어봤지만 나 혼자 골똘해봤다. 많이 먹은 걸로 치면 인스턴트 라면이 1등이지만 기름에 튀긴 면과 맵고 짠 국물이 내상 입은 위장에 좋을 리 없으니 마음 아프지만 아웃. 그렇다면 그릇째 손에 들고 심심한 국물을 죽 들이켜면 머리부터 배 속까지 맑아지는 평양냉면?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만 숙취에 몸부림치는 아침에 평냉집이 있는 시내까지 갈 수는 없으니… 접근성이 떨어져서 패스. 그렇다면 만들어 먹기도, 사 먹기도 편하고 숙취해소 효과도 검증된, 그런 이유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해장국’ 1위에 빛나는 콩나물해장국? 근데 왠지 좀 아쉽다. 너무 반듯한 모범생 같달까? 전날 많이 먹고 자면 아침에 더 배가 고픈 게 술꾼 세상의 기묘한 이치라, 식탐이란 놈은 숙취 상황에서도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꾸만 지분댄다. “어이, 늦게까지 술 먹느라 피곤하고 배도 고픈데 콩나물은 무슨 콩나물이야. 고기도 좀 씹히고 칼칼한 거 뭐 없어?” 이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식탐의 손을 들어주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양평해장국집으로 향한다. 그렇다. 나의 베스트 해장 음식은 양평해장국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나면 몸에 훈기가 돌고 기운이 난다. 맛있고 든든한 데다 콩나물과 선지가 숙취해소에도 도움을 주니, 몸의 요구와 입의 요구를 둘 다 충족시켜주는 완벽한 해장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자타공인 동네의 미친 술꾼이었지만, 해장국 앞에서만은 ‘쪼렙’이었다. 선지도 내장도 못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붙들려 억지로 끌려간 성산동 양평해장국집에서 신세계를 만났다. 콩나물과 우거지만 깨작대고 있다가 앞에 앉은 친구들이 하도 맛있게 먹길래 선지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어봤는데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게 너무 맛이 있는 거다!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고 국물은 맑고 칼칼한데 자극적이지 않았다. 나는 단번에 양평해장국의 열혈 추종자가 되었다. 이후 동네마다 유명하다는 양평해장국집에 가보고, 경기도 양평의 원조집에도 찾아가보았지만 맨 처음 나를 눈뜨게 해준, 지금은 망원동으로 이사한 양평해장국집만큼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곳이 없다. 전국에 양평해장국 가게는 6백 개가 넘고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르니 “이 집 해장국이 한국에서 최고!”라는 말은 못 한다. 그저 해장이 필요한 순간 내 입에 딱 맞는 집이 가까이 있어서 행복할 뿐이고 맘껏 자랑하고 싶을 뿐이다. “나 양평해장국세권에 산다!” 이 동네에 10년째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뿌리 내리고 살 거라는 다짐에는 여기가 ‘양평해장국세권’이라는 이유도 아주 조금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지분이다. 오늘도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는 전국 각지의 술꾼들께서도 부디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최애’ 해장국집 하나씩 찾으셔서 역세권보다 행복한 해장국세권을 누리시길 바라본다. 글/ 미깡(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작가)    ━  Vlog: 숙취 메이크오버 루틴   술을 잔뜩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취중에도 결연한 태도로 다년간의 경험으로 구축된 숙취 예방 루틴을 가동한다. 정성스레 샤워하고 안대를 한 후 두통약을 먹고 잠을 청한다. 자기 전 애드빌 한 알은 목록의 제한이 없는 쇼핑중독 친구의 조언인데 어설픈 숙취해소제보다 낫다. 지끈대는 두통만 제거해도 제법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다음 날은 눈뜨자마자 ‘바디 스캔’ 명상 동영상을 틀고(유튜브 검색창에 ‘바디 스캔’이라고 치면 다양한 동영상을 만날 수 있다) 천천히 잠을 깬다. 누워 있는 바닥을 느끼고, 바닥과 몸이 만나는 그사이에 의식을 두라며 시작되는 명상은 “엄지손가락 힘을 빼줍니다.” “오른 다리가 이완됩니다.” 하는 식으로 몸 부위 부위에 감각을 집중하게 한다. 의식으로 몸을 쓸어내리며 샴페인부터 진토닉까지 또다시 섞어버리고만 지난밤의 음주가 어떤 충격을 남겼는지 가늠해본다. 따뜻하게 데운 물을 마시면서 잘못 보낸 문자는 없는지 해괴한 사진을 찍지는 않았는지 점검한다. 한가롭게 털을 고르며 고양이들이 데워놓은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본격적으로 땀을 빼고 피가 돌게 한다. 빈야사 요가 동영상을 틀어놓고 몸을 써본다. 척추를 위로 휘었다 아래로 휘었다 하다 보면 갖가지 투명하고 맑은 액체 속에 담겨 퉁퉁 부은 것 같았던 몸속 장기들이 탈수되는 듯 개운해진다. 이제 먹을 차례. 어느 소바집에라도 갈 수 있다면 좋다. 뿌연 면수를 차분하게 위장으로 내려보내고 툭툭 끊어지는 부드러운 메밀면을 부담 없이 씹고 나면 속이 따뜻해진다. 성북동에 살 때는 동네 사람들만 아는 ‘엄마손칼국수’의 바지락 칼국수를 꼭 해장으로 먹었다. 둥그런 대접에 잔 바지락이 30개쯤 투하된 그 칼국수 국물은 계곡물처럼 맑고 꽤 매콤해서 숟가락으로 떠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갱생이 절로 되는 느낌을 줬다. 마산에 살 때는 마산 어시장 앞에 쫙 깔린 복국집 중 아무 데나 들어가서 사투리로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깍둑썰기 된 무가 둥둥 떠 있는 국을 훌훌 마셨다. 을지로 ‘우래옥’의 김치말이밥, 서촌 ‘목포 세발낙지 산낙지전문’의 연포탕, 노량진 ‘바다애포차’의 조개탕도 좋아하는 해장 메뉴. 그리고 요즘엔 주로 라면을 먹는다. 지난 3년간 먹은 라면이 30년간 먹은 라면보다 많다. 내가 어찌하여 라면 애호가가 되었냐 하면 다 술 때문이다. 컵라면 ‘김치사발면’을 후후 불어가며 깨끗이 비우고 나면 마침내 안녕이 찾아온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 요리에는 반드시 차가운 음료수로 짝을 맞춘다. 지난밤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수와 얼음 컵 그리고 빨대가 이 순간을 위해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애용하는 제품은 ‘웰치스 포도 맛’, ‘따옴 천혜향 한라봉 청귤’(제주의 시트러스류 과일을 혼합한 이 제품은 어떤 이유에선지 쉽게 만날 수 없는데 발견했다면 꼭 맛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임 리얼’ 수박, ‘갈아 만든 배’ 등. 산성이 강한 시트러스류의 음료는 미각을 정화해주고, 평소에는 즐기지 않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식도에 짜릿한 타격감을 주는 데는 탄산음료가 최고다. 왓챠를 켜고 라면 국물 한 숟가락, 음료수 한 입을 번갈아 흡입하며 루틴을 실행하고 나면 새 술을 부을 준비는 끝난다. 글/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   바로 지금 그 무엇보다 절실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