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세권보다 해장국세권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자타공인 동네의 미친 술꾼이었지만, 해장국 앞에서만은 ‘쪼렙’이었다. 선지도 내장도 못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붙들려 억지로 끌려간 성산동 양평해장국집에서 신세계를 만났다. 콩나물과 우거지만 깨작대고 있다가 앞에 앉은 친구들이 하도 맛있게 먹길래 선지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어봤는데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게 너무 맛이 있는 거다!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장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고 국물은 맑고 칼칼한데 자극적이지 않았다. 나는 단번에 양평해장국의 열혈 추종자가 되었다. 이후 동네마다 유명하다는 양평해장국집에 가보고, 경기도 양평의 원조집에도 찾아가보았지만 맨 처음 나를 눈뜨게 해준, 지금은 망원동으로 이사한 양평해장국집만큼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곳이 없다. 전국에 양평해장국 가게는 6백 개가 넘고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르니 “이 집 해장국이 한국에서 최고!”라는 말은 못 한다. 그저 해장이 필요한 순간 내 입에 딱 맞는 집이 가까이 있어서 행복할 뿐이고 맘껏 자랑하고 싶을 뿐이다. “나 양평해장국세권에 산다!” 이 동네에 10년째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뿌리 내리고 살 거라는 다짐에는 여기가 ‘양평해장국세권’이라는 이유도 아주 조금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지분이다. 오늘도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는 전국 각지의 술꾼들께서도 부디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최애’ 해장국집 하나씩 찾으셔서 역세권보다 행복한 해장국세권을 누리시길 바라본다.
글/ 미깡(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작가)
Vlog: 숙취 메이크오버 루틴
이제 먹을 차례. 어느 소바집에라도 갈 수 있다면 좋다. 뿌연 면수를 차분하게 위장으로 내려보내고 툭툭 끊어지는 부드러운 메밀면을 부담 없이 씹고 나면 속이 따뜻해진다. 성북동에 살 때는 동네 사람들만 아는 ‘엄마손칼국수’의 바지락 칼국수를 꼭 해장으로 먹었다. 둥그런 대접에 잔 바지락이 30개쯤 투하된 그 칼국수 국물은 계곡물처럼 맑고 꽤 매콤해서 숟가락으로 떠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갱생이 절로 되는 느낌을 줬다. 마산에 살 때는 마산 어시장 앞에 쫙 깔린 복국집 중 아무 데나 들어가서 사투리로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깍둑썰기 된 무가 둥둥 떠 있는 국을 훌훌 마셨다. 을지로 ‘우래옥’의 김치말이밥, 서촌 ‘목포 세발낙지 산낙지전문’의 연포탕, 노량진 ‘바다애포차’의 조개탕도 좋아하는 해장 메뉴. 그리고 요즘엔 주로 라면을 먹는다. 지난 3년간 먹은 라면이 30년간 먹은 라면보다 많다. 내가 어찌하여 라면 애호가가 되었냐 하면 다 술 때문이다. 컵라면 ‘김치사발면’을 후후 불어가며 깨끗이 비우고 나면 마침내 안녕이 찾아온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 요리에는 반드시 차가운 음료수로 짝을 맞춘다. 지난밤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수와 얼음 컵 그리고 빨대가 이 순간을 위해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애용하는 제품은 ‘웰치스 포도 맛’, ‘따옴 천혜향 한라봉 청귤’(제주의 시트러스류 과일을 혼합한 이 제품은 어떤 이유에선지 쉽게 만날 수 없는데 발견했다면 꼭 맛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임 리얼’ 수박, ‘갈아 만든 배’ 등. 산성이 강한 시트러스류의 음료는 미각을 정화해주고, 평소에는 즐기지 않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식도에 짜릿한 타격감을 주는 데는 탄산음료가 최고다. 왓챠를 켜고 라면 국물 한 숟가락, 음료수 한 입을 번갈아 흡입하며 루틴을 실행하고 나면 새 술을 부을 준비는 끝난다.
글/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