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아내로부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소설가의 아내로부터

소설은 가끔 이렇게 만들어진다.

BAZAAR BY BAZAAR 2019.12.14
남편이 처음 완성한 장편소설 <모나코>로 ‘2014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자 주변에서는 ‘소설가의 아내’가 되었다며 농담 섞인 축하 인사를 건넸다. 소설가의 아내가 하는 일은 여러 버전의 습작을 읽으며 의견을 내는 것부터 커버 디자인을 고르는 것까지 다양하지만 핵심은 남편이 지어 올린 픽션의 세계를 위해 머릿속 한 구석을 비워두는 것이다. (남편 역시 작성 중인 내 기사를 읽으며 어떻게 하면 더 전달력이 높아질지, 깊이를 더할지 고민한다. 활자노동자 커플로서 서로의 장르를 오가며 뇌의 다른 부위를 쓴달까.) 남편과 나의 상상으로 연결된 환상계에선 (현실계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약점과 동시에 연민이 일게 하는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느 노인의 생애 마지막 겨울을 배경으로 기묘한 삼각관계와 죽음에 대한 소묘를 그린 전작 <모나코>에서는 ‘노인’과 가사도우미 ‘덕’, 미혼모 ‘진’이 그랬다. 이후 5년 만에 발간한 공간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인 <방콕>에서는 한국에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 ‘훙’과 피아니스트 ‘정인’, 태국 여자 ‘와이’와 미국 남자 ‘벤‘ 등이 비극의 연쇄로 쫓고 쫓긴다. 소설 창작의 비하인드 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도 소설가의 아내가 경험하는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인물들이 사는 세상은 작가가 경험한 것들이 투영되어 있다. 남편의 고향인 경남 마산은 ‘정인’이 살아가는 쇠락한 항구 도시의 모델이고 10년 전 우리의 신혼여행지였던 방콕은 ‘존엄’의 문제들이 들끓는 ‘멜팅 팟’으로 그려지며 소설의 주제 의식은 독학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윤리의 안테나’를 세워 말과 행동을 절제하려는 작가의 삶의 화두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탄생시킨 인물들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진짜로 생명력을 쟁취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소설이 마력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 자신조차도 그 순간이 언제부터였는지 다 알 수 없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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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
    사진/ 민음사 제공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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