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힐링하는 색다른 방법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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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힐링하는 색다른 방법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면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음식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한다고 한다.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닐까? 괜한 식재료 낭비는 아닐까? 여러 의구심을 품고 푸드 아트 테라피를 체험했다.

BAZAAR BY BAZAAR 2019.12.07
 
푸드 아트 테라피를 받아봤습니다 
계약 만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 선배에게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전했다. 최근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인생이 언제 마음대로 흘러간 적 있었겠냐마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대학을 갓 입학한 후 상상하던 스물여섯 살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원하던 직장에 소신 있게 지원하며 제출한 자기소개서는 보기 좋게 탈락 낙인이 찍혀 돌아왔고, 적은 소득에 비해 과했던 소비 탓에 통장의 잔고는 0에 수렴해갔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내가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리 없었다. 20대 중반에 다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건가. 방황의 일주일을 보내다가, 의욕 없이 기획회의를 들어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선배가 제안한 ‘푸드 아트 테라피’였다. 음식 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모두 드러난다고 한다. 과연 진짜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내 상태도 누군가 알아줄까. 평소 음식이라고는 술과 안주밖에 모르던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던 내가 푸드 아트 테라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찾은 푸드 아트 테라피 기관. “불을 사용하지 않는 요리에 심리요법을 접목한 거예요. 불을 안 쓰니 위험하지도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백항선 세계아동요리협회장의 설명이다. “몸만 치유되는 것은 진정한 치유가 아니에요. 마음까지 치유가 되어야 진정한 회복을 할 수 있어요.”라며 푸드 아트 테라피를 통해 위로를 받고 우울감과 고독감 또한 달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음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면 무의식 중에 본인의 심리 상태 및 사회적 관계가 드러난다고 한다. 사용하는 재료와 색, 그 양과 표현하는 사물의 크기가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치료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실제로 클래스를 진행해보았다. 음식 재료로 내 얼굴을 묘사하는 수업이었다. 20분이 지난 후 얼굴을 완성하자 이에 따른 분석이 뒤따랐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많네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타입이고, 털털해 보이지만 여성스러운 면도 갖추고 있어요. 미래지향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입을 크게 만드는데, 지금은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입 크기를 봐서는 외향적인 성향도 갖고 있네요. 진짜 내향적이면 이런 취재도 못하러 와요.” 식재료로 간단하게 얼굴만 만들었을 뿐인데 나를 꿰뚫어본 듯한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최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보다도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휴식이 필요해 보여요, 보통 사람들은 입술을 빨간색으로 묘사하는데 특이하게 초록색으로 묘사하셨네요.” 맞는 말이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부터 졸업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고 지금도 취업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드러났을 뿐. 대화는 자연스레 나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고 이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마치 심리 상담을 받는 것 같았다. 정신과에서 하는 심리 상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식을 만지며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경계가 풀어지고 친밀감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평소에 말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인 내게 먼저 말을 꺼내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니 든든한 위로까지 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에 대한 분석을 들은 후 수업에 사용했던 음식 재료들을 돌돌 말아 입에 넣으며 수업은 끝이 났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들어올 때와 달리 홀가분했다. 어지럽던 머릿속도 정돈되는 듯했다.
푸드 아트 테라피를 받았다 해서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든지 하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통장 잔고 또한 그대로인 나는 여전히 비정규직 스물여섯 살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푸드 아트 테라피를 받던 당시의 내겐 생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신선한 식재료를 손으로 만지며 느낀 촉감 때문일 수도, 음식 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준 상담사 덕분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가 됐건 푸드 아트 테라피를 통해 공감과 치유의 과정이 일어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현재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고도 뜻밖의 방법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치유가 필요한 순간이 올 때 다시 이곳의 문을 두드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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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문혜준
    사진/ Getty Images
    도움/ 백항선(세계아동요리협회장)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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