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킴의 시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림킴이 혼자서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어떤 타협도 할 필요 없는 홀가분한 어깨에는 가벼운 재킷 하나만이 걸쳐 있었다. | 림킴,김예림,가수,SAL-KI,제너레아시안

수트는 s/e/o,톱은 본인 소장품,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림킴으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반응이 주를 이뤘어요. 김예림과 림킴을 분리할 수 있을까요?  싱글 를 냈을 때 사람들이 김예림과 림킴을 다르게 인지하는 게 신기했어요. 림킴(Lim Kim)은오래전부터 쓰던 제 영문 이름이고, 음악 장르가 바뀌었을 뿐인데. 스스로 음악을 만드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변화였어요. 가수를 시작했을 때 고등학생이었고, 음악을 해야겠는데 갈피는 못 잡았던 거죠. 취향이나 영향받은 것들은 그때도 지금도 똑같아요. 그동안 정립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뿐이에요. TV와 멀어진 시간이 휴식이나 은둔은 아니었을 거예요.  이전에 활동할 때도 평범하게 일상을 살았어요.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잘 돌아다니냐고 할 정도로요.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안도 똑같았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작업만 했네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걸 못하는 성격이라. 하고 싶은 걸 실물로 만드는 작업을 처음 해봐서 오래 걸렸어요. 저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웃음) 작품을 낼 결심을 할 때는 보통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인 것 같아요.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여자 친구들이 많이 생겼죠?  거의 3년 동안 작업만 하다 보니 올해 초에 번아웃이 왔어요. 작업도 마침 끝났는데, 작업을 완성했다는 생각보다 그냥 다 끝난 느낌이 들었어요. 살면서 이렇게 무기력하고 힘든 건 처음이었어요. 그러던 중에 인스타그램에서 눈여겨보던 또래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었어요. 열정이 커다란 친구들 사이에 있으니 힘이 솟더라고요. ‘크루’라는 말도 이제는 낡아졌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경우가 힙합 신을 제외하면 여성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드물어요. 얼마 전부터 여성 DJ들이 흐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요.  음악을 하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왜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을까, 라는 거였어요. 위계질서와 규칙이 강한 사회구조 아래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음악은 보통 자기 표현을 하려는 직업이잖아요. 처음 가수를 시작했을 때 여성으로서 특별히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어린 여성 가수’라는 틀에 가둬지는 느낌을 직접 겪으니까 오히려 얘기하고 표현해야 할 것들이 생겼어요. 여성, 동양인, 카테고리가 점점 넓어져도 항상 부조리함이 따라와요. 직업군은 달라도 대화를 나누다 같은 마음인 걸 확인하게 될 때가 있어요. 그렇게 만나서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같이 하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걸 실감해요. 그런 흐름이 텀블벅을 통한 음반 제작으로 나타난 것 같아요.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얻은 것이 있다면?  텀블벅을 통해 모은 수익으로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앨범도 냈어요. 그 사실 자체가 값진 결과예요. 혼자 음반을 준비하면서 이런 음악은 안 팔릴 거라는 얘기를 제일 많이 들었거든요. 그게 틀에 박힌 생각임에도 증거로 제시할 게 없어서 답답함을 느꼈고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결국 성공했고, 누구나 언제든 볼 수 있는 텀블벅 페이지에 기록을 남긴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드레스는 Le Vermillon. <제너레아시안(Generasian)>이라는 앨범 제목과 타이틀곡 ‘Yellow’에서 음반의 주제를 명확하게 읽을 수 있어요. 다른 노래 제목 역시 ‘민족요’ ‘요술’ ‘칸’ 등 우리나라의 고전에서 동양 설화, 전 아시아로 확장된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고요.  ‘동양인 여자’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에서 출발해 모르는 부분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나다운 게 뭘까 하는 본질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서 나를 정의하는 동양인, 혹은 여성을 내 나름의 방식대로 파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마녀는 여전히 악을 상징하지만 알고 보면 재산 몰수를 위해 희생된 여성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런 것처럼 애초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동양인’, ‘여성’의 존재를 탐구하고 다시 쓰는 작업이었어요. 또 다른 노래 제목인 ‘스케반’은 여자 깡패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마저도 대상화된 채 여성 캐릭터의 하나로 소비되고 있어요.  ‘스케반’은 센 존재인데 만화에서 마냥 귀여운 여학생으로 다루고, 서양인들 역시 귀여운 동양 소녀라고 생각하죠. ‘스케반’이라는 곡은 그들이 예상하는 이미지를 가져온 다음 “너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야”라고 공격해요. 여자 가수의 외모만 보고 성격과 음악성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노래로 독설을 뱉는 거예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예쁜 소녀가 공격적인 노래를 하는 일과 닮아 있네요. 공격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개인 SNS에 조금이라도 비주류적인 발언을 하고 의견을 얹으면 구설수에 오르고 비판을 받잖아요. 그런데 내 모습과 나의 모든 활동이 발언을 하는 사람이 되면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오히려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말고 지나쳐 가버리거든요. 서구의 시선에서 탈피한 동양 여성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 또한 갇히는 일일 수도 있어요. 전 세계 여성과 손잡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을 거예요.  음반을 내기 전에 꼭 동양 여성이어야만 하는지, 그 밖에는? 이라는 고민을 하고 결론을 내렸어요. 세계적으로 앞장서 나와 얘기하는 여성을 보면 대부분 서양인이에요. 그들이 더 잘나고 유식해서가 아니라 발언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서양 여성을 비롯해 흑인 여성, 동양 여성이 느끼는 바는 다른 점이 있어요.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골고루 비춰지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음악 신에서도 이런 음악도 있고 저런 음악도 있어야 하듯, 내 얘기를 꺼내는 걸 시작으로 비슷한 이들을 대변하고 비춰지지 않았던 부분에 존재감이 생기길 바랐어요. 타인의 시선을 떨쳐놓고 본 림킴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사람요. 어떤 분류 안에 집어넣지 않아도 다른 존재감을 보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지향하는 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