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로부터 한 달 후쯤 병원을 찾았다. 유방외과 전문의는 초음파 프로브를 가슴 위에 대고 천천히 이동하며 검사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미소를 짓지 않았다. 초음파 검사는 조직 검사로 이어졌고 유방 종양 절제술이 진행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담당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유감이에요, 린지. 조직 검사 결과 암이 발견되었어요.” 몇 차례의 방사능 치료를 거치면서 정상적인 삶을 중단한 힘든 싸움이 시작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번째 검사에서 암이 림프절까지 퍼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암은 계속 영역을 넓혀갔다.
미국 암 협회에 따르면 매년 침습성 유방암(염증이나 악성 종양이 번져 인접한 조직이나 세포에 침입하는 유방암)을 진단받는 여성 26만9천여 명 중, 40세 미만은 5%에 불과하다. 평균 연령은 62세. 즉, 서른여섯 살인 나는 특이한 경우였다. 방사선요법과 10년간의 내분비요법, 그리고 항암화학요법까지 치료 계획에 포함됐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빠진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항암화학요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발생 가능한 부작용, 잠재적인 육체적·정신적·성적 변화, 그리고 재발률 같은 정보의 포화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짙은 안개를 뚫고 떠올랐다.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암 치료를 잠시 늦추고 난자를 냉동시키면 생식력을 보존할 수 있을까? 2세를 원한다면 지금 난자를 냉동해야 하지 않을까? 항암 치료를 앞둔 상황에서 크리스와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정말 아이를 갖기 원하는지 상의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누구에게도 간단한 결정은 아니다. 우리는 아기와 다를 바 없는 세포를 거의 2년간 냉동 보관한다는 발상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크리스는 가톨릭 신자이다. 사람의 손으로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암 환자로서 치료 후 불임의 가능성이 현실로 닥친 상황이기에 선택권은 없었다. 체외수정이 신의 선물인지 아니면 신처럼 행동하는 비싼 방법인지 몇 개월을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체외수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화학요법을 4차례나 받았고 방사선 치료는 30회를 마쳤다. 최소 18개월은 지나야 임신이 가능한지 테스트해볼 수 있지만 체외수정한 배아 중 하나를 이식할지 아니면 때를 기다렸다가 자연 임신을 시도할 것인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7개의 냉동된 배아가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그들은 크리스와 나의 미래이자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견고해지리라는 희망의 증표다.
최근에 크리스에게 왜 체외수정에 동의했는지 물었다. 그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부정적 수용능력’ 즉,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애매모호함과 기꺼이 공존하려는 마음에 비유했다. 그렇다. 우리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따라서 선택은 하나다. 불확실한 상황을 수용하고 그 혼란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것, 그뿐이다.
냉동 난자 Q&A
난자를 냉동하는 경우는?
난자를 냉동하기에 좋은 나이 대는?
30대 초반 기대 임신율 : 10개 냉동 시 50~60%, 20개 냉동 시 80~90%
30대 후반 기대 임신율 : 10개 냉동 시 40~50%, 20개 냉동 시 70~80%
40대 초반 기대 임신율 : 10개 냉동 시 25~40%, 20개 냉동 시 50~70%
난자 냉동에 드는 비용은?
난자를 냉동하는 과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