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서의 아찔한 자신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몸은 거짓말하지 않잖아요”. 최희서는 영화 <아워 바디>를 위해 흡사 운동선수만큼의 관리로 자신을 몰아붙였다. 몸만큼 정직한 건 그녀가 지금껏 달려온 연기 궤적일 거다. 꾸준히 그러나 악착같이. 그사이 자연스레 몸에 붙은 경험 근육은 이제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 최희서,박열,아워바디,영화,운동

&nbsp;━&nbsp; HER BODY KNOWS &nbsp; &nbsp; 슬리브리스 톱, 팬츠, 재킷은 모두 Moon Choi.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lt;아워 바디&gt;를 첫 번째 원 톱 주연 영화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nbsp; 오랜 무명 시절 뒤에 &lt;박열&gt;로 주목받았잖아요. 차기작은 블록버스터 장르일 줄 알았어요. &lt;박열&gt;이 개봉하고 한 달쯤 지났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여기저기서 오퍼를 받으면서 얼떨떨한 시기였죠. 그런데 저는 사실 독립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서 로망이 있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이제훈 씨의 &lt;파수꾼&gt;이나 이정현 선배님이 연기하신 &lt;성실한 나라의 앨리스&gt;도 독립영화였는데 참 좋죠. 큰 사건사고 없이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고, 어차피 이런 이야기는 상업영화에서 연기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 당시까진 동시대 평범한 여성을 연기한 적이 없기도 했고요. &lt;박열&gt;도 시대극이었고, &lt;오늘만 같아라&gt;에선 필리핀 여성으로 나왔죠. 제 나이 또래 한국 여성을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영화 속 자영은 달리기를 통해서 인생이 변하는 인물이에요.&nbsp;운동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표정이 밝아지고 자세가 곧아지더라고요. 드라마틱한 변신이 아니고 미세한 변화라서 표현하기 더 까다로웠을 것 같아요.&nbsp; 정말 어려웠어요. 후줄근하게 다니던 옆집 여자를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쳤는데 기운 자체가 밝아져 있는 느낌 정도인 거죠. 그래서 초반 설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자영은 고시 공부하는 8년 동안 동창회도 안 나갔을 거예요. 명절엔 친척들도 피했겠죠. 그런 설정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nbsp; 연기 때문에 시작하긴 했지만 확실히 달리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몸도 변화하는 게 느껴지던가요?&nbsp; 모델 한혜진 씨도 그런 얘기를 했다던데, 정말 사람의 몸만큼 잘 변하고 정직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작품에 들어가기 한 달 반 전부터 하루에 세 시간씩 운동했거든요. 원래도 운동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집중한 건 처음이었죠. 30분 뛴 것과 45분 뛴 게 다르더라고요. 고구마를 50g 먹었을 때랑 100g 먹었을 때가 다르고요. 사실 식단이 힘들었어요. 복근이 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탄수화물을 다 끊고 물을 5리터씩 마셨어요. 수분을 배출해야 가죽이 바짝 마르거든요. 딱 한 신 아니었나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요?&nbsp; 사실 저도 그게 궁금해요.(웃음) 그런데 만약에 원하는 만큼 그 장면이 안 나왔다면 조명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사실 제 탓을 할 거거든요. 조금 덜 먹을걸, 조금 더 운동할걸. 그러느니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만들어놓는 게 나아요. 그럼 못 나와도 후회는 없잖아요. 트레이너한테도 우리 영화는 CG 할 돈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했죠. 완벽주의자인가요?&nbsp; 조금요. 엄마가 그래요.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웃음)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면 중도 포기가 안 되거든요. &nbsp; 터틀넥은 Recto. 베스트는 Leuni. 반지는 Marsbom. 초반엔 자영에게 공감했는데, 뒤로 갈수록 굉장히 기이한 인물이라고 느꼈어요.&nbsp; 무언가를 그만두는 것도 용기잖아요. 8년 동안 못 놓고 있던 고시 공부를 그만두고 시험도 보러 안 간다는 게, 우연히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시작한 달리기에 빠져서 그걸 계속 해나간다는 게 자영이가 가진 평범함 속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삶의 기로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할까요? 저는 자영이의 방식이 솔직했다고 봐요. 그야말로 욕망에 충실해지잖아요. 엊그제 친한 언니와 &lt;아워 바디&gt;를 다시 봤어요. 뒤늦게 치과의사가 된, 공부의 시간을 오래 버텨온 사람이에요. 옆에서 다른 친구가 “그래서 쟤가 부장이랑 왜 잔 건데?” 하니까 그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8년 동안 하고 싶지 않은 걸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잖아”. 물론 그 언니가 자영이 같은 행동을 하진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거죠. 오직 하고 싶은 연기를 위해서 쭉 달려온 본인과는 정반대 인물 아닌가요?&nbsp; 저는 하고 싶은 걸 일찍이 알고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로 해온 스타일이라 자영이와는 정반대의 20대를 보냈죠. 물론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항상 거절당하고 서른까지 인지도도 전혀 없었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비슷한 실패의 맛을 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성질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그 시기에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쨌든 난 이거 할 건데?’ 하는 욕심이었어요. 한가람 감독한테도 “내가 자영이랑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는데 오히려 감독님은 아니라고,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면이 닮았대요?&nbsp; 모르겠어요. 본질적으로 결국 하고 싶은 걸 찾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점 아닐까요. 운동을 통해서 건강한 삶을 찾은 여자의 얘기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꽤 당황했어요. 운동영화라면 건전해야 할 것 같은데 &lt;아워 바디&gt;는 그런 선입견을 보란 듯이 비껴가는 영화였고요.&nbsp;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영이가 러닝을 통해 현주를 만나고 긍정적으로 변하는 중반부까지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 거예요. 그런데 현주가 떠나고 그 충격을 받아들이는 이후의 행동들은 좀 일반적이지 않죠. 어떤 평론가는 호러영화 같다고도 하더라고요. &nbsp; 점프수트는 Jain Song. 귀고리는 Tatiana.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알프레드 히치콕의 &lt;현기증&gt;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고요. 원래 참고했던 영화도 &lt;퍼스널 쇼퍼&gt;였어요. 아시죠?&nbsp; 그 영화, 완전 호러잖아요. 차갑고, 어둡고. 그런데 주인공의 눈은 번뜩이고요. “&lt;아워 바디&gt;가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의 영화였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죠?&nbsp; 그러면 재미없잖아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보고 나서 궁금증이 남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거니까…. 그런 영화도 가치가 있잖아요. “여성영화로만 봐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발언에서 첨언하고 싶은 점이 있나요?&nbsp; 그건 제가 말을 더 잘했어야 했어요. 여성영화라는 게, 여성감독이 여성이 대다수인 스태프와 여성 주연과 함께 만든 영화라고 분류할 수 있잖아요. 저는 이게 혹시 여성주의 영화라고만 읽힐까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영화에 프레임이 씌워질까봐 두려웠어요. 여성주의 영화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지, 여성영화는 맞죠. 지난주에 셀프 웨딩을 치렀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nbsp; 솔직히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연애 기간이 너무 길어서 이미 가족 같았거든요. 프러포즈는 4년 전에 받았고.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 지금 일하고 싶은 거 알아. 지금 당장 결혼 안 해도 되고. 그냥 나는 너랑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해두는 거야.” 저도 “그래.” 했죠. 남편이 그 시간을 4년 동안 기다려줬어요. 올해 정도를 생각하긴 했는데 연말에 미국 영화를 찍게 되면서 좀 앞당겨졌죠. 지금은 남자주인공 캐스팅 때문에 기다리는 상황이고요. &lt;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gt;의 제작자가 만드는 영화라죠?&nbsp; 그런데 &lt;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gt;처럼 달달하고 로맨틱한 영화는 아니고 무겁고 현실적인데 약간 아린 연애 이야기예요. 오히려 &lt;러스트 앤 본&gt;과 비슷한 분위기랄까요?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디션 준비하면서도 인물에 애착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미국에서 다시 신인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길었던 무명 시절을 떠올리면 오디션이 지긋지긋하지 않아요?&nbsp; 일 년 반 전부터였나. 에이전트에서 오디션을 대여섯 개 소개해줬고 그중에서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골라서 오디션을 봤죠. 미국 진출을 계획해서라기보다 오디션 보는 걸 워낙 좋아해요. 스시 셰프 연기도 해봤고요. 레즈비언 스토리에서 사랑이 싹트는 신도 연기해봤어요. &lt;분노의 질주&gt; 오디션도 봤네요. 최종적으로 그 역할을 안 하게 될 수도 있지만 매력적인 역할을 연기해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많은 배우들이 작품마다 선택받는 입장에 처하는 현실을 힘들어하잖아요. 희서 씨는 그걸 즐기네요. 오디션의 기회 자체가 안 오는 건 괴로운 일이에요. 아예 그 풀 안에 제가 없다는 건 힘 빠지는 일이죠. 아까 오디션이 지겹지 않느냐고 물으셨는데, 지겨움을 느낄 만큼 많이 본 것 같진 않아요. 제가 큰 기획사의 연습생이나 연영과 출신이 아니니까 오디션을 볼 기회 자체가 적었어요. 오디션 한 번 보기 위해 프로필을 돌리고 다녀야 했던 케이스라서. 이제는 그럴 필요가 점점 적어지긴 했지만, 저는 앞으로도 오디션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온대요. 에이전트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너무 신이 나요. 좀 더 편하게 연기하는 길도 있을 텐데요.&nbsp; 흔히들 배우가 기다리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찾아가는 직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제가 프로필을 들고 영화아카데미를 찾아다녔기 때문에 &lt;아워 바디&gt;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가람 감독은 &lt;박열&gt;을 보고 저를 캐스팅한 게 아니래요. 제 프로필 사진을 보고 웃는 게 마음에 들었대요.(웃음) 사실 오디션 꼭 안 봐도 되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나 이거 해볼래, 재미있겠다’는 마음으로 찾아다녀야 하는 거죠. 솔직히 저는 편하게 연기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항상 도전의 연속이었다 보니까 편하게 연기한다는 감각 자체가 없어요. &nbsp; 터틀넥은 Recto. 팬츠는 Leuni. 레더 코트는 Low Classic. 반지는 Marsbom.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금은 황정민, 이정재 배우와 함께 &lt;다만 악에서 구하소서&gt;를 촬영 중이죠? 그 와중에 브런치를 통해 틈틈이 에세이도 올리고요.&nbsp; 결혼을 준비하면서 제가 느낀 의아한 지점들이 있거든요. 왜 사람들은 결혼을 이렇게 바라보지? 싶은 것들. 특히 여자 배우의 결혼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시선이 많고요. 그런 부분에 대한 나의 의문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일이 바빠서 요샌 열흘에 한 번 정도 써요. 아, 오늘도 한 편 써야 하는데….(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잘 쓴 글은 솔직한 글이라고 생각해요. 일기조차 100% 솔직해지기란 쉽지 않죠. 맞아요.&nbsp; 브런치를 쓰면서도 솔직하게 쓰기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뭔가를 포장하고 꾸미면 반드시 티가 나는 것 같아요. 많이 배우고 있어요. 출판 계획도 이미 끝났잖아요. 생각해놓은 책 제목이 있나요?&nbsp; 원래는 ‘희서의 서(書)’였거든요. 좀 모호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지금 쓰고 있는 첫 번째 원고의 소제목은 ‘꿈, 사람, 계절’이에요.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제가 계절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나무가 쓰러진 것에 대해 쓰고, 비가 오면 비가 온 것에 대해, 꽃이 피면 꽃 핀 것에 대해 쓰더라고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건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거겠죠?&nbsp; 일단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만 글이 써지던데요.(웃음) 이래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가 봐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해요?&nbsp; 가을요.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한 가을날에 노을 지 지는 순간요. 딱 이맘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