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패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에스플란디 거리에 위치한 안디아타 매장엔 마리메코 스타일의 과감한 컬러와 패턴 대신 기본에 충실하면서 유연한 옷들로 채워져 있었다.
(오른쪽) 온화한 컬러 팔레트의 안디아타 의상.
안디아타는 재단과 디테일에 공을 들이는 브랜드다. 노르딕 미니멀리즘과 파리지엔의 여성스러움이 공존한다. 여성 중심의 회사로 여성들의 노동력에 기여하고 리더 직위에 있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것에도 힘쓰고 있다. 파워풀한 여성들에게서 영감을 받으며, 지속가능한 패션, 인생의 여러 단계에 있는 모든 나이 대의 여성들이 입을 수 있는 타임리스한 여성복을 만들려고 한다. 질은 양보다 항상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기도 하다.
안디아타는 피트가 좋기로 유명하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점이기도 하다. 페미닌한 원피스, 캐시미어 울 코트와 지속가능한 울로 만들어진 블레이저가 시그너처 아이템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은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다. 브래드의 철학과 진부함 사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있나?
잘 재단되어 만들어진 옷은 결코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다. 이는 어떤 시기를 막론하고 우리가 만드는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다. 물론 매 시즌 컬러와 패턴을 새롭게 덧입혀 변화무쌍한 트렌드에 뒤지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우리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는다.
패션 리테일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 가까운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현재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어떻게 하면 생산 과정을 더 환경친화적으로 만들고 지속가능하면서 혁신적인 직물을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고객들의 인식을 높여 그들이 구매하는 물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 중 하나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2/3는 에스토니아 본사에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다음 시즌엔 환경친화적인 이탈리아 울로 만든 지속가능한 울 수트를 소개할 예정이다.
핀란드와 일본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마리메코에서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은 마리타 후리나이넨은 베이식한 디자인에 과감한 컬러와 프린트를 활용한 시그너처 스타일로 핀란드 패션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른쪽) 아프리카 작은 마을의 여성 아티스트들의 손에서 완성된 프린트들.
매장을 채운 강렬한 프린트의 의상이 인상적이다.
휴가 때마다 아프리카에 가는데, 그곳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핸드 스컬프팅 기법을 활용해 우리만의 독특한 프린트를 창조하고 있다. 이 작업은 아프리카 작은 마을의 여성 장인들과 협업해 그곳 커뮤니티에 활기를 넣는 역할도 한다.
독특한 피스들이 눈에 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나?
자연이 디자인의 영감이 되고, 제품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컬렉션은 핀란드의 변화하는 계절 분위기를 담는데, 활기찬 여름과 지지 않는 해, 어두운 겨울밤의 평화로운 적막감이 그것이다. 옷에 사용되는 재료들은 대부분 자연 유래 성분으로 생산 과정 역시 친환경적인 부분을 신중하게 고려한다.
웨이브 슈즈라는 시그너처 슈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리타 후리나이넨의 상징적인 아이템이다. 이 신발의 아이디어는 원, 삼각형, 사각형 등 기본 도형의 탐구에서부터 출발했다. 최대한 적은 요소로 아름답고 기능적인 외관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 결과 가볍고 유연한 나무 신발이 완성되었다. 물론 이 독특한 형태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모두 ‘와일드 퍼’로 윤리적인 방식으로 얻은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동물의 개체수를 적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냥을 한다. 그런 동물들은 대부분 숲에 방치된 채로 남겨지게 된다. 우리는 사냥꾼들과 협업을 통해 버려진 동물들의 가죽을 모아 ‘와일드 핀란드 퍼’라는 상표를 표기해 제품으로 만든다. 패션을 목적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다.
2011년에 시작된 테르히 폴키는 핀란드의 프리미엄 슈즈 브랜드다. 베이식한 디자인에 독특한 패턴과 디테일, 그리고 편안한 착화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다.
(왼쪽) 베이식한 디자인에 소재와 패턴으로 변주를 주는 테르히 폴키 슈즈.
포루투갈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매 시즌 신발을 만든다. 타임리스한 디자인이지만 매 시즌 다른 감성을 입히려고 노력한다. 지속가능성, 환경친화적인 신발을 만드는 것 역시 우리의 특징이다.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왔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는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하다.
일에 관해서는 직관을 믿는 편이다. 섬유 디자이너 요하나 코올리션과 같이 협업해서 뉴욕 컬렉션에 선보인 적이 있는데, 길을 걷다가 문득 이 디자이너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물론 파트너가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 역시 고려하는 사항이다.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친화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것 말이다. 다음 컬렉션에는 다채로운 색상을 활용하는 아티스트와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밀라 플랫. 포인티드 토를 가진 레이스업 슈즈인데, 앞이 겹겹에 레이어로 감싸져 있는 반면 뒤는 군더더기 없이 디자인되어 있다. 가장 많이 팔렸고, 잘 알려진 디자인이다.
이번 시즌엔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감싼 ‘델레나 힐’을 추천한다. 착화감이 좋고 거북이 등으로 만든 굽이 주는 독특함을 경험할 수 있다.
헬싱키에서 브랜드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헬싱키는 작은 도시다. 패션의 중심 도시라 할 수 있는 파리, 밀라노와 떨어져 고립되어 있다. 하지만 나만의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류에 휩쓸리지 않고 내 특징을 살린 작업 말이다. 물론 이런 환경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다. 요즘은 SNS를 통해 많은 정보와 자료를 볼 수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비해 이곳은 조금 뒤처져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이 핀란드, 헬싱키 패션을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다.
라틴어로 ‘옷장’을 뜻하는 베스티아리움은 세 명의 여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다. ‘스피디한 여성을 위한 슬로 패션’을 바탕으로 커리어우먼을 위한 옷을 디자인한다. 모든 옷은 가족 단위로 운영되는 주변의 작은 작업실에서 만들어지고, 천연 섬유와 자연친화적 소재를 사용한다.
(왼쪽)‘마레’ 드레스가 놓인 베스티아리움의 아틀리에.
이것만은 옷장에 꼭 갖추라고 추천하고픈 아이템이 있다면?
슈퍼 울 섬유로 만들어진 제품들. 100% 울 소재로 입었을 때 매우 우아하지만 손질하기도 쉽다. 이 소재로 원피스, 팬츠, 스커트, 톱, 블레이저 등 거의 모든 아이템을 만든다. 이미 가지고 있는 다른 아이템과 믹스 매치하기도 쉽다.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마레’ 드레스를 꼽겠다. 수년 동안 생산해온 블랙 미니 드레스인데 절개선은 비대칭적이고, 그래픽적인 동시에 여성스럽다. 매우 실용적이면서 스타일링에 따라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여행가방에 넣었다 꺼내도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이 옷에 대한 고객들의 만족도는 200%다. 다른 색으로도 구입하길 원하는 고객들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발전하는 컬렉션을 의미한다. 우리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발맞춰 디자인한다. 매 시즌 디자인과 컬러, 패브릭을 개발하지만 우리 고유의 시그너처 스타일을 쉽게 버리지도 않는다.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지만 동시에 수년 동안 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미니멀한 동시에 화려하다. 디자이너들은 블랙, 화이트, 그레이 컬러를 자주 사용하지만 볼드한 프린트와 밝은 색상 또한 선호한다. 핀란드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자연스레 환경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패션을 추구하지만 신진 디자이너들은 보다 예술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