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LGBTQ+ 아티스트- ⑤ 시벨 카발리 바스토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9년은 전 세계 LGBTQ+ 커뮤니티에게 특별한 해다. 1919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상담 및 연구에 크게 이바지했던 독일 출신 의사이자 성과학자 마그누스 히르시펠트(Magnus Hirschfeld)가 성과학협회(Institut für Sexualwissenschaft)를 베를린에 창설한 지 100주년, 1969년 LGBTQ+ 인권신장운동에 불을 지핀 뉴욕 스톤월(Stonewall) 혁명이 발발한 지 50주년을 맞았다. | 독일,퀴어,예술,LGBTQ+,동성

 ━  LGBTQ+ Artists in Berlin    시벨 카발리 바스토스, ‘Sonja Khalecallon in Las Venus Resort Palace Hotel’, 2010, 포스터, Photo by Socrates Mitsios, Courtesy of the artist.  LGBTQ+ 커뮤니티 안에서도 모종의 사회적 서열이 있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지난해 런던 퀴어 페스티벌에서 일부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트랜스액티비즘이 레즈비언을 지워버린다”는 충격적인 배너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베를린은 성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에게 양팔을 벌린다. 여러 예명으로 활동해왔지만 개중 ‘시벨(Cibelle)’라는 이름으로 이미 국제적 명성을 떨친 뮤지션 시벨 카발리 바스토스(Cibelle Cavalli Bastos, 1978년 브라질 상파울루 출생)는 현재 미술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를 남녀로 규정 짓지 않고 ‘그들(they/them)’로 지칭하는 시벨은 이분법적 성 구분을 격렬히 반대하는 ‘논-바이너리(non-binary)’다. “우주와 자연 그 어디를 둘러봐도, 자성에 관한 것이면 모를까 성, 주체에 대한 이분법적 양극성은 없다. 남녀라는 성 구분은 완전한 허구다. 무한한 주체로서 나라는 인간이 무엇이든 취할 수 있는 이 텅 빈 하드드라이브 같은 몸뚱이에 태어났는데, 이 몸뚱이가 사회에 진입하자마자 그 사회는 내게 여성 생식기가 달렸다는 이유로 그에 맞는 특정한 방식으로 이 몸뚱이를 바라보고 해석하더니, 이내 가족, 사회, 각종 규정이 내 생식기를 그 방식에 맞도록 코딩하기 시작한다. 어처구니없지 않나?” 시벨은 이미 21세에 벨기에 음반사 크램드 디스크(Crammed Discs)와 계약을 맺고 유럽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이 논-바이너리라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3년 논-바이너리로 성전환을 시작했다. ‘어떻게 논-바이너리로 성전환을 하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는데, 이 말인즉슨 사회로부터 ‘지정(assign)’받았기 때문에 극도로 불편한 현재의 젠더로부터 스스로를 탈(脫)세뇌(deprogram)시키는 과정이다. 내가 ‘트랜스’로 불려야 하는 이유는 신체에 대한 이 사회의 기만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 문제로 심란했던 당시 그리스 출신 큐레이터 마리나 포키디스(Marina Forkidis)가 그리스의 한 섬에서 마음을 정리해보라고 권유해줬다. 이 섬에 있는 동굴에서 3주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제모를 멈추는 것이었다. 우선 내가 시스젠더(cisgender) 여성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남자로 성전환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봤지만 그 몸뚱이에서도 편할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스스로를 어떤 다른 존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명히 깨달은 점은 남녀 구분은 딱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만 종사하는 체계라는 점이다. 지배의 체계, 가부장제 말이다.” 동굴 생활을 마치자마자 시벨은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진학했고, 상파울루의 갤러리와 일하기 시작하며 2015년 졸업 후 브라질로 돌아갔다. 상파울루에 되돌아온 그들은 변해가고 있었다. “한 파티에서 커밍아웃한 게이 친구를 만났다. 같이 취해 춤을 추면서 놀랍게도 서로 성욕이 불탔고, 내가 같이 집에 가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미안, 나 여자 안 좋아해’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곧장 입 밖으로 괴성을 내뱉었다. ‘나 여자 아니야!’ 그러다가 다른 파티에서 그 친구를 또 만났다. 그가 내게 다가왔다. ‘네 음악 진짜 좋아하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안 돼? 제대로 제모도 하고 TV 채널에 나왔던 그 옛날처럼 말이야.’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너 지금 정말 완전히 트랜스 혐오자야!’” 2016년 시벨은 리서치를 위해 베를린에 체류했다가 2018년 다시 상파울루로 귀국했다. 그들 눈앞에 펼쳐진 브라질은 다른 세상 같았다. “가족 구성원 중 여러 명이 그 머저리 같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를 대통령으로 선출해놓았다. 모든 게 캄캄하고 슬퍼 보이기만 했다. 나는 독재 정권 아래서 자랐다. 브라질 사람들 대부분은 비평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렵다. 브라질 문화, 교육 체계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거나 반대하면 곧바로 잘못된 태도로 치부된다. 스스로가 너무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에 나의 탈세뇌 과정에 대한 갖가지 생각을 쏟아내고 공유하는 영상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적 정치학(intra-politics)’과 ‘나노 정치학(nano-politics)’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러한 고민에 빠진 채 베를린에 되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시벨 카발리 바스토스, ‘The Artist’, 2014 온라인 버전 / 2016 프린트 버전, Courtesy of the artist. 문득 카니발에서 두드러지는 브라질의 개방적 성문화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금과 같이 극우파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브라질에 이런 말이 있다. ‘브라질은 초보자를 위한 곳이 아니다.’ 브라질은 매우 자기 모순적 문화를 갖고 있다. 카니발은 육체의 축제이기 때문에 거리에서 여성이 웃옷을 벗고 다녀도 좋지만, 평소 해변에서는 금지된다. 근래 TV 방송에 많은 트랜스 뮤지션이나 드래그퀸이 등장하지만, 카메라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정말 섹시한 백인 이성애자 여성 혹은 남성같이 보여야 한다. 통제된 상황 안에서 남성적 시선을 위해 소비될 수 있으면 만사 괜찮은 것이다. 젠더 정체성 불문하고 이 자본주의 틀 안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시벨은 점차 더 언성을 높였다. “2007~08년 유럽이 경제위기로 몰락할 때 브라질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시선이 쏠렸고 외국에 살던 이들도 브라질로 돌아왔다. 하지만 잘 갖추어진 사전 교육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닌 이 번영은 사회 계층 체계와 소비주의에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존속하다가 결국 파국을 맞았다. 예전에는 백인을 보려면 TV 채널을, 검은 피부를 보려면 그 백인의 주방을, 아시아인을 보려면 식당을 찾으면 됐는데, 이제 이 백인 집 안에서 일하던 가정부의 자녀가 대학을 가고, 운전사가 해외여행을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보수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기성 남성성의 전형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결국 목청만 좋은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시벨은 이처럼 더 많은 생각을 나누기 위해 베를린에서도 인스타그램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초기에는 이를 ‘논-퍼포먼스(non-performance)’라고 불렀다. 아무 사전 시나리오나 구상 없이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공유한다. 내가 말하는 ‘내적 정치학’이란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살핌으로써 모든 편견으로부터 스스로를 탈세뇌시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며 팔로어만 5만 3천여 명에 달한다. “2017년 ‘아바타/퍼-폼(Aevtar/Per-form)’이라고 프로젝트 이름을 바꾸면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동일하게 개명했다. 증강현실 필터나 셀카 필터 같은 데이터도 공유하며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내 얼굴을 매번 바꾼다. 최근 이 프로젝트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첨단기술 회사들이 우리의 공감 능력을 도구화함으로써 조성해놓은 강요된 디지털 노동 환경이다. 예를 들어, 당신의 알고리즘상에 계속 등장하는 어떤 팔로어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당신이 실제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 팔로어의 콘텐츠를 수시로 체크하고 ‘좋아요’를 눌러야 하는 것이다. 이 무보수 노동을 지속하지 않으면 당신은 온라인상에서 사라진다. 심지어 직업도 잃고, 돈도 벌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에 포로가 돼 있다. 과잉 노출에 내몰린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가담하고 있다고 핀잔을 줄 수 있지만 나는 풀뿌리(grassroots) 개혁을 위한 트로이 목마일 뿐이다.”   브라질 출신 뮤지션, 미술작가 시벨 카발리 바스토스는 21세에 벨기에 음반사와 계약하며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에서 뮤지션으로 활동했다. 이후 미술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벨은 이처럼 젠더뿐만 아니라 사회계층, 자본주의, 소비주의 등 이 사회를 틀 지우는 각종 체계를 철저히 부순다. 그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천, 라텍스, 비닐 같이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겉껍질이나 피부 같은 성격의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대상의 표면을 바라보는 시선만으로 각종 편견을 생산해내는 우리 사회를 비판하기 위함이다. “나는 ‘형태 파괴자(form fucker)’다. 계급주의를 산산조각 내는 데서도 희열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오브제처럼 다뤄지는 게 너무나도 싫다. 우리는 그 어느 영역에도 포함될 수 있는 열린 존재다.” 명언 같은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던 시벨은 이날 저녁 다른 퀴어 뮤지션이자 친구인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의 콘서트를 향해 바삐 자리를 떴다. 작가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내 동성 파트너와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받는다. 주중 어느 때든 마음에 내키면 친구들과 이런저런 게이 바를 한밤에 두세 군데씩 옮겨가며 수다를 떤다. 날이 좋으면 근처의 드넓은 공원에 가서 다른 게이들과 나체로 드러누운 채 온몸에 따스한 햇볕을 쬔다. 이성애자 남자 연인을 찾기 어렵다는 이성애자 여자친구의 농담 섞인 불평을 들으며 게이 클럽에서 같이 춤을 춘다. 베를린에서 내가 성소수자로서 누리는 자유는 50년, 100년이 넘는 투쟁의 역사가 만든 단단한 굳은살에 둘러싸여 그 파르르한 생명력을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베를린에서는 물론 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시름하는 수많은 성소수자에게도 언젠가 해방이 찾아오지 않을까? 시벨이 인터뷰 도중 목청껏 내질렀던 구호 같은 말로 이 글을 맺는다. “이 세상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L.G.B.T.Q.I.A 뒤에 덧붙여 우리는 계속해서 알파벳을 더해 나갈 것이다. P.E.O.P.L.E에 이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