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LGBTQ+ 아티스트- ④ 포포 판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2019년은 전 세계 LGBTQ+ 커뮤니티에게 특별한 해다. 1919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상담 및 연구에 크게 이바지했던 독일 출신 의사이자 성과학자 마그누스 히르시펠트(Magnus Hirschfeld)가 성과학협회(Institut für Sexualwissenschaft)를 베를린에 창설한 지 100주년, 1969년 LGBTQ+ 인권신장운동에 불을 지핀 뉴욕 스톤월(Stonewall) 혁명이 발발한 지 50주년을 맞았다. | 독일,퀴어,예술,LGBTQ+,동성

LGBTQ+ Artists in Berlin  중국 출신 영화감독 포포 판은 중국의 LGBTQ+ 일상을 같은 보폭으로 살피거나 정부의 부당한 차별을 직간접적으로 고발하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한국을 포함해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성소수자가 개인, 사회, 국가 단위의 억압을 받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베를린은 이들에게 마음 편히 숨 쉴 자리를 마련해준다. 영화감독 포포 판(Popo Fan, 1985년 중국 산둥 출생)은 2017년 상하이를 떠나 베를린에 왔다. “13년간 베이징에 살다가 상하이에 갔는데 2015년 그 사건이 터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위산과다 소화장애도 생겼는데, 어머니는 HIV 양성은 아니냐며 호들갑이셨다.(웃음) 영화 제작 중 리서치차 베를린에 왔다가 정착하게 됐다. 내가 거주할 도시를 선택하는 기준은 딱 세 가지다. 음식, 예술, 그리고 섹스. 베를린에서 음식은 형편없지만 나머지 둘은 좋아 남아 있기로 했다.” 여기서 ‘2015년 그 사건’이란 온라인에 공유된 그의 영화 (2012)가 중국 국가신문출판방송영화TV총국(SAPPRFT)에 의해 통보 없이 삭제되면서 이 정부 기관을 상대로 진행된 소송을 말한다. 판결은 다소 애매했지만 SAPPRFT 측에서 사전에 공식 문서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명료하게 짚고 넘어갔다는 점에서, 또 이러한 검열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판은 그의 승리로 본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어떻게 점차 자녀의 젠더를 포용하고 LGBTQ+ 인권운동에까지 가담하게 되는지 그 여정을 그린다. “2017년 중국 온라인 규율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다. 이전까지는 매우 추상적이었던 부분에 ‘동성애 및 성전환 관련 콘텐츠 금지’라는 항목을 추가해 타깃을 명료화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NGO가 자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중국 정부의 콘텐츠 장악력은 급속히 커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홍콩과 타이완 영화계가 독립적으로 충분히 번성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경제적으로 중국 대중문화계에 크게 의존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중국이 성소수자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관점으로 볼 때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 유명한 게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그라인더(Grindr)’는 물론 중국에서 가장 큰 ‘블루드(Blued)’ 모두 정부의 자금줄이 엮여 있는 것으로 안다. ‘핑크 달러’로 일단 돈이 되면 문제없는 것이다. 일상사회에서는 내 가족 구성원만 성소수자가 아니면 상관없다는 태도가 팽배하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 커밍아웃한다고 가정하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매우 폭력적인 대응책을 내놓는다. 유명한 여배우 뤼 리핑(Lu Liping) 같은 기독교인들은 미디어에서 노골적으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내뿜기도 한다. 지금 중국에는 미국에서 갈 길을 잃은 극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들어와 반동성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도 하다.”   포포 판, , 2012, 스틸컷, Courtesy of the artist. 이러한 현실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고자 판은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LGBTQ+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내가 영화를 공부했던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영화감독 추이 지엔(Cui Zi’en)이다.” 추이는 2001년 베이징 퀴어 영화제를 설립했다. “2007년부터 나도 가담해 이 영화제를 공동 기획하고 있다. 이밖에도 젊은 성소수자를 위한 영화 워크숍 ‘퀴어 유니버시티’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7월 이 워크숍차 베이징에 다녀왔다.” 이 인터뷰 직전까지 그는 콜롬비아의 보고타 퀴어 영화제와 마니살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며, 직후 9월에는 홍콩 퀴어 영화제 참석을 앞두고 있었다.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더욱 가까이서 살펴보고 싶다. 퀴어 커뮤니티가 이 시위에 어떻게 가담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판은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주관하는 국제 퀴어 영화상 ‘테디 상(Teddy Award)’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느끼는 베를린 영화계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베이징에서 영화 (2019), (2019) 등을 제작했을 때 예산이 적어 함께 일할 사람을 찾기가 역부족이었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는 내용만 좋으면 같이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 또한 중국에서는 자기검열이 비일비재하다. 반면 베를린에서는 오히려 주변 지인들이 내 시나리오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다며 더 밀고 나가도록 부추긴다. 돌아보니 그래서인지 베를린에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날것의 섹스와 연관되는 경향이 짙어서, 여기서 촬영한 작품에는 섹스가 덜 부각되고, 베이징에서는 난무하는 경우가 많더라.(웃음)” 포포 판, , 2016, 스틸컷, Courtesy of the artist. 아무리 베를린이 ‘퀴어의 천국’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 진보주의의 실체, 아시아인으로서의 인종 이슈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베를린은 ‘진보 거품’ 속에 갇힌 느낌도 든다. 정치적 올바름에 목을 매는 사람도 많고, 정작 세부사항은 잘 모르면서 굉장히 이상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이들도 많다. 또한 하드코어든지 소프트코어든지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여하간 이러한 각종 편견 유형들을 그러모아 영화 (2019)에 담아봤다. 물론 이점도 있다. 중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베를린에 살면서 한국인, 인도인, 베트남인 등 다양한 아시아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감이 증폭됐다.” 'Mama Rainbow'에 이은 'Papa Rainbow'(2016)와 같이 판이 다루는 LGBTQ+ 이슈는 그의 초창기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그는 최근 단편 피처 영화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 “허구적인 상황을 통해 더 많은 실험을 시도해보고 싶다. 두 개의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하나는 섹스, 마약, 철학에 골몰하는 아시아계 퀴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인종이 모두 함께 뒤엉킨 포르노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