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LGBTQ+ 아티스트- ③ 지미 로버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베를린의 LGBTQ+ 아티스트- ③ 지미 로버트

2019년은 전 세계 LGBTQ+ 커뮤니티에게 특별한 해다. 1919년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상담 및 연구에 크게 이바지했던 독일 출신 의사이자 성과학자 마그누스 히르시펠트(Magnus Hirschfeld)가 성과학협회(Institut für Sexualwissenschaft)를 베를린에 창설한 지 100주년, 1969년 LGBTQ+ 인권신장운동에 불을 지핀 뉴욕 스톤월(Stonewall) 혁명이 발발한 지 50주년을 맞았다.

BAZAAR BY BAZAAR 2019.10.10

LGBTQ+ Artists in Berlin 

프랑스령 과들루프 출신 미술작가 지미 로버트는 베를린 소재의 탄야 레이턴 갤러리와 함께 작업한다.

프랑스령 과들루프 출신 미술작가 지미 로버트는 베를린 소재의 탄야 레이턴 갤러리와 함께 작업한다.

낮에는 베를린의 예술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퀴어 바, 클럽 문화를 만끽하며 이 도시에서 성장한 작가들도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두 작가 마르코 페초타(Marco Pezzotta, 1985년 세리아테 출생), 비앙카 베넨티 오리올(Bianca Benenti Oriol, 1987년 토리노 출생)은 2009년 베를린-바이슨지 미술학교(Kunsthochschule Berlin-Weißensee)에서 만나 2015년 듀오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이하 RM)를 결성했다. “재학 중이던 회화과에서 우리 둘 다 페인팅 작업을 하지 않아 서로 더 관심이 갔다. 따로 또 같이 퀴어 바, 클럽에서 만난 다양한 LGBTQ+ 커뮤니티 덕분에 이 도시를 더욱 좋아하게 됐다. 개인과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섹슈얼리티가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서로 공유하는 지점이 우리 협업의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팀의 이름을 고스란히 차용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이름 자체가 집단적 의사소통 오류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는데, 특히 어느 검색 엔진에서든 이 이름을 입력하면 이미지를 목록화하고 분배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또한 브랜딩을 통한 정체성 만들기와 남성성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단체정신이라는 상품을 우리 스스로 체화함으로써 스포츠 같은 미디어 쇼가 집단적 소속감과 영토 단위의 경쟁에 대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RM은 1899년부터 스위스 연방문화부가 주관하는 스위스 미술상(Swiss Art Awards)의 2018년 수상자다. 이들은 성호르몬, 성병, 성욕, 2차 성징 등과 같은 주제를 분석적이거나 도덕적인 태도로 접근하기보다 그 자체의 유기적 환경을 관찰하고, 그 환경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다분히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작업에 풀어나간다. “첫 전시에 사용했던 재료가 ‘안드로젤(AndroGel)’이라는 브랜드의 테스토스테론 젤이었다. 성호르몬을 신체에서 분리해서 젤 형태의 상품으로 만들어 필요에 따라 피부 여기저기에 바르면 된다는 게 흥미로웠다. 성전환자는 물론 자신의 남성성을 더욱 과시하고 싶은 남자들이 많이 애용하는 제품이다. 일 년치 용량을 구해 전시장 바닥에 전부 발랐다. 시간이 흐르자 젤이 마르면서 굳어졌다.”
RM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재료 중 하나는 유리다. “젤의 특성이 유리에서도 이어졌다. 액체 상태에서 고체 상태로 변하면서도 두 상태를 미묘히 함께 견지하는 유리의 성질이 생명체의 ‘발정(horniness)’과 같은 상태 변화를 보인다고 봤다. 유동적인 상태는 우리 작업에서 중요한 포인트다.” 유리 기술자와 협업해 입으로 불어 제작한 일련의 조각작품 ‘Some Days are Diamonds, Some Days are Stoned’(2018)는 기이한 캐릭터 형상을 하고 있다. “어렸을 적 스페인, 이탈리아 방송 채널에서 각종 애니메이션을 많이 방영했다. 그중 프랑스에서 제작한 (국내에서는 <신비한 인체탐험>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말 EBS에서 방영)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다. 신체의 각 내장 기관이나 적혈구, 백혈구, 산소, 이산화탄소, 바이러스 등을 각각 살아 있는 생명체로 묘사했는데, 가령 바이러스는 펑크족이나 강도나 마약중독자, 백혈구는 경찰이나 군인, 적혈구는 이곳저곳 떠돌며 모든 게 궁금한 어린이 등의 생김새를 부여해 현실 사회의 구조를 이러한 어린이 및 청소년 교육용 프로그램에 대입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적혈구 캐릭터들을 마약에 취해 몽롱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RM은 청소년기의 2차성징 과정 중 수면 아래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는 성의 양태를 매우 적극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두 개의 큼지막한 수련 잎 표면에 여러 개의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는 모습을 만든 알루미늄 조각작품 ‘Catching Flies Not Feelings’(2019)는 (2019)라는 전시에 선보였다. 이들은 작가노트에 꽃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렇게 하염없이 누군가가 와서 자기 자신을 ‘따버려(de-flower)’ 주기를 기다리는 이 지속적인 긴장감은 마치 청소년기의 성에 대한 내적 속삭임 같다. ‘다들 이미 한 번씩 뉘였는데, 왜 나는 아직도 못 했지?’” 이 듀오의 작품 속에서 꽃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성적 유혹을 일삼는 식물의 작은 살덩어리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꽃의 기다림은 늪의 생태계와도 연관된다. “늪은 그만의 기이한 생존 방식을 갖고 있는데, 특히 매우 무기력해 보이지만 연신 추파를 던지는 움직임이 섹슈얼리티의 특정한 면모를 논하기에 제격이다. 이 전시에 살고 있는 상상 속의 인물은 나르키소스다. 수면 위에 반사된 자기 자신을 만지려 안달이 난 상태, 영원한 젊음과 사춘기의 전형인 나르키소스는 성년기와 아동기로 양분된 극단의 중간에 머물며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되어가려 하는 상태로 살아간다.”
두 사람은 내년 2020년 7월까지 로마의 스위스 인스티튜트에서 약 일 년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힌트를 주자면 새 작품의 키워드는 큐피드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만나 성기를 맞대고 성생활을 하게 만드는 이 요망한 큐피드가 날개 달린 남자 아기나 소년으로 묘사되는 게 참 변태적이지 않나?”
 
지미 로버트, ‘Descendances Du Nu’, 2016, 퍼포먼스 장면, 프랑스 델므 시너고그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Photo by O.H. Dancy,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nya Leighton, Berlin.지미 로버트, ‘Descendances Du Nu’, 2016, 퍼포먼스 장면, 프랑스 델므 시너고그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Photo by O.H. Dancy,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nya Leighton, Berlin.지미 로버트, ‘Descendances Du Nu’, 2016, 퍼포먼스 장면, 프랑스 델므 시너고그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Photo by O.H. Dancy,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nya Leighton, Berlin.지미 로버트, ‘Descendances Du Nu’, 2016, 퍼포먼스 장면, 프랑스 델므 시너고그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Photo by O.H. Dancy, Courtesy of the artist and Tanya Leighton, Berlin.
사랑을 좇아 베를린에 정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미 로버트(Jimmy Robert, 1975년 프랑스령 과들루프 출생)는 외교관인 파트너가 베를린에 발령되면서 이 도시에 새 거처를 마련했다. “많은 친구들이 이전부터 베를린으로 당장 이사하라고 했지만, 베를린에 가면 너무 모든 것이 과하진 않을지, 그 에너지에 휩쓸려 나도 중심을 잃어버리진 않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고 나니 결국 이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게 금방 느껴졌다. 런던에서의 10년, 브뤼셀에서의 7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낀다.”
베를린 동북부 바이슨지 지역에 있는 대형 건물 단지 안에 자리 잡은 로버트의 작은 스튜디오 한편에는 큰 요가 매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매트 위 이곳저곳에는 읽다 만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평소 하던 대로 매트 위에 누워 무릎을 접었다 펴며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콜라주,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를 다루는 그의 작업 전반은 종이, 조각, 건축 등 다른 매체와 신체가 접촉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런던 골드스미스 미술대학에 재학할 당시 시각예술을 참조하기보다는 프랑스 문학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에 관해서만 줄곧 연구하고 글을 썼다. 특히 극본, 영화 시나리오, 소설 등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저술 능력과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를 끝도 없이 써낼 수 있는 창작력에 깊이 매료됐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책, 책장 표면과 접촉하며 거의 에로틱한 감정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책장은 무언가를 투사할 수 있는 표면이자, 또 다른 피부이자, 그 자체로 오브제이자, 육체적으로 긴밀하게 연관 지을 수 있는 판타지가 됐다. 종이가 평평한 모니터 화면보다 훨씬 낫달까?”
그가 작품에 드러내는 신체는 대체로 분절적, 추상적, 기하학적으로 다뤄지지만, 퍼포먼스 중에는 클럽 음악 같은 분위기 속에서 움직임을 느슨하고 유기적으로 완화시키기도 한다. “내 미술 작업에 있어서, 또 흑인 게이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 매우 소수의 본보기가 있을 뿐이다. 샹탈 애커만(Chantal Akerman),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같은 아티스트의 작업을 유심히 살폈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다른 성소수자만을 주시하진 않는다. 브라질 출신의 극작가 및 연출가 아구스토 보알(Augusto Boal), 프랑스 출신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등과 같이 문학과 시각예술에서 그 어떤 형태로든 급진성을 내포하는 모델에 가능한 한 나의 모든 감성을 열고 다가간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서 운동성을 내포한 신체가 접촉하고자 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접촉’이나 ‘연결’이라는 단어보다 ‘번역’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어떻게 신체가 오브제가 되고, 텍스트가 퍼포먼스가 되고, 오브제가 이미지가 되는지에 관한 번역. 결국 이 모든 변형은 하나의 형태나 정의에 갇혀 있지 않고 유동적으로 흐르고자 하는 욕망에 관한 것이다. 모든 퍼포먼스는 어느 수준에서든 욕망을 얘기하고 있다. 나는 특히 친밀감에 더 집중한다. 페미니즘 미술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선언했듯이, 친밀감을 조명하는 것은 결국 공간을 재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버트는 제7회 광주 비엔날레(2008), <무빙/이미지>(아르코미술관, 2017) 등에 참여하며 이미 한국 미술계와도 연을 맺어왔다. “한국에서 머물며 본 러브 모텔들이 정말 좋았다. 수만 가지 판타지를 마음대로 상상해볼 수 있달까.” 그는 올해 하반기 시카고 건축 비엔날레, 내년 영국 노팅엄 컨템퍼러리(Nottingham Contemporary) 개인전 등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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