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ZAAR ART’S PICK: NEW MUSEUMS

잭슨홍, ‘빈칸’, 2019. 사진/ 장현주, 민주인권기념관 제공
1970~80년대 대표적인 고문 시설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2022년 정식 개관을 앞두고 일곱 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첫 기획 전시 <잠금해제(Unlock)>가 9월 29일까지 열린다. 이곳에서 사망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6월 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서 보았던 육중하고 시커먼 출입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잭슨홍의 옥외 간판 구조물이 확인가능한 정보를 알린다. ‘김수근’과 ‘철근콘크리트 흑벽돌, 1976’ 사이에 놓인 당혹스러운 빈칸. 김수근의 이력에서도 슬며시 삭제된 작업, ‘해양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독재정권의 비밀 전위대로서 기능한 이곳의 정체를 빈칸이 고발하는 듯하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어온 이들은 1층에서 5층 취조실까지 눈이 가려진 채 비좁은 원형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쿵쾅거리며 정신없이 올라온 이들은 철제 벽체에 가로막혀 세상에 신음도 비명도 전하지 못했다.

홍진훤x일상의 실천, ‘빨갱이’, 2019.

하늘길에 자리한 권석만의 ‘발아’, 2013. 사진/ 신채영
충정로역과 시청역 사이, 빌딩숲 한가운데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경의 중앙선 철로로 둘러싸인 그린 스페이스의 지상부는 시민에게 열린 공원시설, 지하로는 땅 아래 새겨 넣듯 깊숙이 설계된 전시시설과 종교시설이 자리한다. ‘서소문 밖 네거리’로 불리던 이 지역에는 일찍이 큰 시장이 형성돼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으며 죄인을 처형하는 행형장이 있기도 했다. 개혁사상가를 비롯해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종교적인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새하얀 아치와 십자가형 기둥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상설전시실에서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한양의 풍속에 대해 정리한 <경도잡지> 등을 통해 서소문 밖 네거리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소개한다. 익숙한 현대미술 공간의 특성을 보여주는 곳은 적벽돌로 쌓은 측벽과 철제 벽이 좌우로 대비되는 회랑식 기획전시실. 개관전으로 선보인 <한국 근현대조각 100주년> 이후 조각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거대하고 육중한 4면의 철제 벽이 땅에서 2미터가량 떠 있는 형태의 콘솔레이션 홀은 미디어 아트 작품에 둘러싸여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네 면의 멀티 프로젝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스테인드글라스 영상 등은 공간의 목적에 맞게 숭고미 속 위안을 선사한다. 콘솔레이션 홀의 컴컴한 바닥, 작은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을 표현한 설치물은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까지 뚫려 있는 하늘광장으로 이어진다. 낡은 철도 침목을 거칠게 잘라 만든 인간 형상들은 조각가 정현의 ‘서 있는 사람들’로 순교 성인 44인을 상징하며 맞은편에는 25년간 한국에서 노숙인과 청소년을 위해 봉사해온 한 이탈리아인 신부를 모델로 한 이환권의 신체조각 ‘영웅’이 자리한다.

배지민 개인전 . 사진/ 신채영
을지로의 금속가공 공장들 사이로 난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총 가로 6m, 세로 5m가 넘는 붉은 삼면화가 벽면을 채우고 있고 서늘한 허밍과 전자음이 결합된 음악이 눈앞의 세계를 증폭시킨다. 전시장 중앙의 베드에는 감각에 몸을 내맡긴 관람객이 일광욕하듯 누워 있다. 지난해 화재 사고로 시력을 잃을 뻔한 배지민 작가가 회복하자마자 홀린 듯 그린 신작을 선보인 개인전은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지난여름 가장 인상적인 전시 중 하나였을 것이다. n/a(nslasha)는 아티스트 오진혁, 박진우가 지난해 말 오픈한 갤러리‐카페‐출판사다. 두 대표는 홈 파티를 즐기며 여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또 구입하는 문화를 영위해보고자 이곳을 만들었다. 커피와 차는 물론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며 작품을 볼 수 있고 n/a에서 출판한 첫 에디션의 사진집과 아트 북을 만날 수 있다. 사진작가 나인수의 개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