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캠목, 경험의 목소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영국 작가 Helen Cammock은 후발주자다. 10년을 사회복지사로 일했으며 서른다섯 살에 예술대학교에 입학했다. 삶의 여러 갈래를 우회하다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정치와 역사, 개인과 단체 속에서의 상실감, 비도(悲悼)의 감정 등 그간의 경험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낸다. | 헬렌,바로크시대 여성,영상 작업,터너상 전시,컬렉션

 ━  IN YOUR VOICE   작품의 일부로 오페라 성악을 부르는 퍼포먼스 중인 헬렌 캠목(왼쪽). 당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데 당신 삶의 행로를 빼놓을 수 없다. 미술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10대에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뒤늦게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기도 했다. 영상, 사진, 시작(詩作)과 작문, 말하기, 노래하기, 퍼포먼스, 프린팅과 설치미술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작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아티스트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여 작품을 만든다. 우리가 이를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더라도. 결국 경험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협상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별반 다를 것 없다. 나는 한정된 경험에 대해 다루는데, 이는 어떤 시각에서 보면 집단 경험의 한 부분이 된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관계적이기에 경험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정된 경험은 역사, 현대적 경험, 그리고 퓨처리즘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내겐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파동, 순환과 연속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0년 동안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억압된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스피커, 합창, 연설 비디오처럼 목소리를 내는 미디어에 천착한다.  내게 목소리와 몸은 육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분리될 수 없다. 목소리는 우리가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꼭 들려주기 위해서만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입을 통하지 않더라도 몸을 통해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가 할 수 있는 것과 목소리에 가해지는 행위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목소리들은 보통 소멸되고 지워져 들리지 않게 되거나, 혹은 확장되고 증폭된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와 권력과 목소리 간의 관계성에 대해 관심이 있다.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속삭이는 등의 목소리의 행위가 궁금하다. 특히 영화나 공연의 각본을 쓸 때 더 신경 쓰게 된다. 다양한 목소리들을 직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내 정체성에 따라, 내 목소리로 표출되는 단어들을 통해 말들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이를 ‘들리는 지문(손가락)’이라고 부르는데, 철학적인 글이 노래 가사를 통해 대화의 형식으로 풀어진다거나, 정치적인 글이 시의 형식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는 곧 나를 통한 목소리와 글로 귀결된다. 이 목소리들은 잘 직조되어 흥미로운 대화를 유도한다. 그래서 내겐 각각 다른 일을 하며 목소리를 내는 여러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다.   영국에서 흑인 여성으로서의 존재, 빈부 격차, 권력의 강자와 약자의 입장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품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인종차별과 여성에 관한 작업이 주를 이룬다.  내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국가적으로, 집단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다른 권력 시스템을 영속화하고 이에 역동성을 더하는 권력 및 위계 시스템에 관한 것들이다. 그중 일부는 내 경험과 투쟁,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보았던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권력 시스템이(특히 억압의 측면에서) 역사,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다른 이유에 대한 관심 또한 있다. 이는 집단 심리와 저항, 회복 및 피해를 개별적으로 입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나는 흑인 여성이기에 이 역할에 대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주제뿐만이 아니다. 내 일에 몰두하고 나서 다른 시대를 산, 다른 경험을 한 작가들의 글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작업을 한다.   지금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막스마라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MaxMara Art Prize for Women)’을 통해 이뤄졌다.  이 전시회는 막스마라 아트 프라이즈 포 우먼의 일부로서 내가 이탈리아에서 6개월 동안 거주했을 당시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그 기간 동안 6개의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여성을 만났다. 사회운동가, 학자, 예술가, 큐레이터, (은퇴한 현대무용가이기도 했던) 수녀, 자신의 지혜와 투쟁의 경험을 내게 공유했던 난민이자 이민자, 투쟁 시위를 했던 나이 든 여성 등 그들 모두는 각자 특별한 삶을 살았다. 세 개의 스크린 필름은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인터뷰, 시와 음악을 통해 역사적인 인물들과 엮어냈다. 내가 연구하고 만난 여성들의 얼굴보다는 그들의 삶이 여러 방법의 묘사 속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 산물이다.   영국 화이트채플 갤러리 <Che Si Può Fare> 전시 오프닝 공연 전경. 갤러리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의 순간은 어떠한가? 이 전시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  영상 내내 음악이 흐르는데 이 음악은 전시의 일부인 퍼포먼스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바로크시대 여성 작곡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영상 작업에서는 루크레치아 비차나(Lucrezia Vizzana)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직접 성악 레슨을 받은 것은 바바라 스트로치(Barbara Strozzi)가 작곡한 프리 오페라 성악이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그 안에서 재즈를 느꼈다. 관통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재즈 트럼펫과 듀엣을 한다고 상상하며 부르는 법을 배웠다. 그 후에 프란체스카 카치니의 샤콘을 듣고 이 두 곡을 조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통곡하는 재즈로,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해당 공연은 올해 10월 장소를 옮겨 전시된다)에 있는 여성들의 합창곡으로 말이다. 개막식 날 밤 공연에서는 사람들이 우리와 한마음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우 조용한 가운데 흐르는 음악, 한탄하는 목소리와 재즈 트럼펫, 그리고 공연 경험이 없는 평범한 한 무리의 여성들이 모여서 그들 자신의 한탄, 상실, 갈망, 회복력과 저항력을 몸을 사용하여 드러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1968년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열린 제1차 민권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인 ‘The Long Note’로 올해의 터너상을 수상했다. 권위 있는 현대미술상을 수상하는 일은 예술가로서 당신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의 작업과 작업을 위한 접근법과 관심사가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에서 주는 국가적인 상은 그리 많지 않다. 예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여겨지는 터너상의 후보가 된 것은 놀라운 동시에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예술에서의 ‘경쟁’이라는 구도에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내가 하려는 일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작업의 진일보 또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터너상 전시는 9월에 열릴 예정이고 가 10월에는 마라모티 컬렉션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11월에는 케임브리지셔에 있는 와이징 아트센터(Wysing Art Center)의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개인 전시회를 연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곳에 머무를 예정이다. 서펜타인 갤러리와는 ‘라디오 발라드’라는 프로젝트를 최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 도시인 바킹(Barking)과 대거넘(Dagenham) 등 서로 다른 지역의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작품을 노래, 구어, 소리, 음경, 구전을 통해 나타내는 작업이다. 또한 런던의 FVU(Film and Video Umbrella)와 계약을 마쳤다. 로치데일 그레이터 맨체스터(Rochdale Greater Manchester)에서 지역 환경과 건축물, 그리고 예술품들을 사용하여 평등과 대표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 예정이다. 내년은 바쁜 해가 될 것이다. 런던 왕립미술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제는 자신을 위한 연구 시간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너무 바빠서 내 안에 있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떤 분야의 연구를 더 할지 재고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