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계획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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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계획

봉준호라는 장르를 파헤칠 중요한 단서, <기생충>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북이 세상에 나왔다.

BAZAAR BY BAZAAR 2019.10.02
 
떠들썩했다. 한국 영화사 100년 만에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나왔으므로. 관객 수는 천만을 넘겼고, 최우식과 박소담은 충무로의 블루칩임을 뚜렷하게 증명했다. 이정은과 장혜진이라는 빛나는 중견 배우를 발굴하고 조여정의 재발견을 알렸다. 포스터의 대표 문구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와 검은 띠로 눈을 가린 사진은 앱 효과처럼 퍼져 많은 패러디를 양산했고,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같은 유행어를 낳았다. 영화 속 가장 긴장을 조성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한우짜파구리는 대중적인 레시피가 되었다.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간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블로그와 유튜브에서는 영화에 숨겨진 의미를 찾은 게시물이 속속 올라온다. 신드롬은 두 권의 책으로 이어진다.
 
‘봉스트모더니즘(봉준호+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봉준호 영화의 감상법은 대략 이러하다. 하찮음과 중대함이 뒤섞여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동안 시청자는 중첩의 틈새에 슬며시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의 치밀한 계획을 탐정처럼 유추한다. 무직의 가난한 식구들이 발포주를 마시다 하나 둘 취업을 하게 되고 어느새 술상에는 수입 맥주가 올라간다. 혼자 취업을 못한 엄마는 여전히 발포주를 마신다. 짧게 지나가지만 그 장면을 보고 생각을 떠올려본다. ‘엄마는 아직 제대로 된 밥값을 못한다는 걸까?’ 이렇게 장면 하나 하나를 곱씹다 보면 영화는 어느새 엔딩에 닿아 있다.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북에는 시각과 청각으로 좇는 매 순간이 잘게 저며져 있다. 각본은 신 번호와 장소, 시간의 표기 아래 배경 설명,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읽고 있으면 영화의 장면과 오차 없이 맞아떨어진다. ‐핸드폰 높게 들며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는 기우. 좁고 긴 화장실 끝에 계단식 제단(?)이 있고 그 위에 변기가 올라가 있다. 정화조와의 압력관계 때문에 일부 반지하 주택에서는 불가피한 변기 위치. 시각적으로는 좀 황당하다. 제단 위 변기에 올라간 기우, 끈질기게 신호를 찾다가,‐ 가난한 집 안 구석구석을 연기처럼 훑고 지나가다 황망함에 빠트리는 시멘트와 타일로 쌓은 화장실 구조물을 그는 ‘제단(?)’이라고 표현한다. 남의 집 와이파이를 공짜로 얻기 위해 천장과 제단 사이에 껴 기묘하고 우스운 몸짓을 보이는 남매들. 쎄하고 웃기고 불편함을 발산하는 장면이 한자 한자 적혀 있다.
 
전작 <마더>의 ‘혜자 엄마 마을’ 지도, <옥자>의 메르헨적인 드로잉으로 봉준호의 그림 실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생충>의 그것은 마치 웹툰 같다. 코믹이었다 에로였다 호러도 된다. 각본집과 스토리보드가 재미있는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 개인의 기록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했기에, 시나리오의 오탈자들과 스토리보드의 지렁이 같은 손씨들까지, 그냥 그대로 인쇄하였다.” 이 출판물은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과 다름없다. 활자와 이미지가 어떻게 장면이 되었는지 또 어떤 장면이 사라졌는지 비교해보는 일도 남았다.  
책의 서두에 실린 봉준호의 고백을 옮겨본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촬영을 하고, 편집과 녹음을 한다.이 단계들을 꾸준히 일곱 번 반복한 것이 지난 20년간 나의 삶의 전부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위의 과정들을 반복할 수만 있다면, 삶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처럼 반복되는 나의 삶의 주기 중에서 두 개의 순간, 즉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의 시간들을 칼로 자르듯 베어낸 단면이 바로 이 책이다. 어찌 보면 내가 가장 외롭고 고독할 때의 기록이자, 촬영장의 즐거운 대혼란을 관통하기 이전의, 고요하고 개인적인 순간들이다.
 
※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초판 한정 박스 세트는 9월 26일 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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