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예술을 하는 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새로운 예술일까? 이미테이션 게임일까? 인공지능이 만든 창작품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것은 예술이 맞다”고 단언한다. | 전시,예술,미술,전시회,아트

  ‘저녁노을이 구름을 가린다. 손을 모아 기도한다. 태양이 서쪽으로 떠나면 나는 버림받는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의 AI 로봇 샤오빙이 낸 시집 <阳光失了玻璃窗(햇살은 유리창을 뚫고)>의 일부다. 샤오빙은 1920년대 이후의 현대 시인 5백19명의 작품 수천 편을 학습해 1만여 편의 시를 썼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하는 호시 신이치 SF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한 단편소설 <コンピュ-タが小說を書く日(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의 작가 또한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마쓰바라 진 교수 팀이 만든 AI다. 주인공 AI가 자신의 주인인 요코 씨와 친해지지만, 그가 관심을 거두자 고독한 신세로 전락한 뒤 피보나치 수열로 소설을 쓴다는 내용이다. 비치보이스를 연상케하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 ‘Daddy’s Car’는 소니 컴퓨터과학연구소의 AI 플로머신즈가 인기 곡 1만3천여 곡을 분석해 작곡했다. 2016년엔 파리에서 콘서트도 가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럴 때 늘 등장하는 비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이다. 데생, 붓놀림, 어떤 조형미보다 그가 변기를 예술적 행위로 택한 그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AI의 창작품이 알고리즘 혹은 이미테이션 게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뒤샹은 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호불호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작년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프랑스 예술 단체 오비우스의 AI가 그린 ‘Edmond de Belamy(에드몽 드 벨라미)’가 같이 나온 앤디 워홀의 작품보다 6배 높은 가격에 낙찰됐던 일을 그저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9년 6월 12일부터 7월 6일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더 반 갤러리에서는  AI 드로잉 로봇 아이다의 개인전 가 열렸다. 아이다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작품은 물론 신인 예술가들과 협업해 만든 플라스틱, 은, 청동 소재의 3D 조각상, 오노 요코의 ‘컷 피스’를 오마주한 행위예술도 선보였다. 그리고 아이다의 제작자 에이단 멜러와 이 전시의 큐레이터 루시 실은 단언한다. “이것은 예술이 맞다”고.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드로잉 로봇 아이다가 만들어지고 있는 연구소의 풍경. 아이다의 팔은 리즈 대학교, 몸통은 로봇 전문회사 엔지니어드 아트, 알고리즘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연구 개발했다.  ━  AI 로봇 아이다 제작자, 에이단 멜러(Aidan Meller)   아이다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계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위대해진 이유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연구했다. 타임라인에 따라 라파엘로,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존 에버렛 밀레이부터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과 트레이시 에민을 예로 삼았다. 그들이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작품은 어디에 전시되었는지와 함께 첫 돌파구를 찾았는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다가 내가 잘못된 변수들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예술가들의 핵심은 자신의 시대, 역사의 순간을 포착했던 것이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은 프로이트 시대를 묘사했고, 앤디 워홀의 작품은 자본주의와 매스 컨슈머리즘을 다루었다. 이를 보고 오늘날의 세상을 비추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신기술과 AI의 부상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다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가장 인상적인 건 언론에서 준 피드백이었다. BBC, CNN, CCTV, ITV 등의 매체들이 우리의 전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고 취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EBS도 2020년에 방영될 다큐멘터리를 촬영해갔다. 정재승 교수 또한 아이다와 이번 프로젝트에 매료되어 있다.   아이다는 예술가인가?  아이다의 작품은 진정 창조적이기 때문에 예술로 간주된다. 마가렛 A. 보든(인지과학자)은 창조성에 대해 “새롭고, 놀라우며, 가치 있는 것”이라고 철학적으로 정의 내린다. 아이다의 작품들은 이 기준에 부합한다. 아이다의 작품이 같은 기법을 사용해도 매번 다른 결과물이 나오며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아이다는 왜 여성인가?  과학계와 예술계 양쪽에서 여성의 입지가 작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 가장 필요한 목소리다. 아이다(Ai-Da)라는 이름은 세계 최초의 여성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아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의 이름에서 착안해 지었다.   이 전시의 크리에이터는 아이다인가, 아이다를 만든 당신인가?  둘 중 누구도 아니다. 아이다 프로젝트는 기계와 인간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아이다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AI 미술이 과거에 비해 정교하고 세련되어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아직은 넘어야 할 기술적 장애물이 많다. 그녀의 첫 전시회 역시 시작에 불과하다. 종래에는 그녀가 인간이 물리적으로 완성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상세한 캔버스 작품이나 3D 작품을 창작하기를 바란다. 당장 내년에는 두 번째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1 기술과 윤리의 불균형과 시대적 불안정을 반영하는 아이다의 회화 작품. ‘The Shattering of Space’. 2 실제 벌의 마이크로 CT 스캔본에 아이다가 스케치한 그림을 결합하여 만든 청동 조각상 ‘Bee Sculpture’. 3 아이다가 조각상을 만드는 과정. 신진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구현한 그래픽을 플라스틱, 은, 청동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3D 프린팅한다.  ━  AI 로봇 아이다의 개인전 큐레이터,  루시 실(Lucy Seal)   이번 전시의 의도를 설명해달라. 우리는 기술적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지만 이에 필요한 윤리적 논의는 뒤처져 있다. 우리의 목표는 관객이 기술 발전에 따라 기계를 어떻게 대하고 남용하는지 고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다의 작품 중 ‘The shattering of space’는 시대의 불안정함을 반영한다.   전시를 여는 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그녀의 몸, 그림을 그리는 팔, 그리고 AI 알고리즘이 개별적인 세 개의 팀에 의해 디자인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걸렸다. 몸은 로봇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엔지니어드 아트(Engineered Arts)라는 회사에서, 팔은 리즈 대학에서, AI 알고리즘은 옥스퍼드 대학의 과학자들이 만들었다.   관람객으로부터 나온 가장 인상 깊었던 피드백은 무엇인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관람객 대부분은 경외감을 느끼거나 로봇이 예술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힘들어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피드백은 <뉴욕 타임스>에서 아이다를 ‘미술계의 새로운 목소리’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이다의 작품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렉사와 시리가 AI 챗봇인 것처럼 아이다는 AI 아티스트인 것이다. 살아 있지는 않지만 그녀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반응하는 페르소나다. 그림, 퍼포먼스 아트, 협업 미술 및 조각 등 그녀의 작품은 예술이 맞다. 이 초현실적인 상황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 영역에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우리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걸까? 어떤 AI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다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녀는 홀로 결정을 내리는 예술가일까? 아바타일까? 아니면 허구적인 캐릭터일까? 그녀는 이 모든 옵션을 아우른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다를 예술가로 소개한다. 그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기계로서 그녀가 처한 상황과 그녀의 작품에 담긴 인간-기계 간의 협업을 모두 고려해서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의 예술은 어떤 형태인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를 비롯해 히토 슈타이얼, 제이크 엘웨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기술을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 갤러리가 예술과 기술을 통합하는 ‘PaceX’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앞으로는 기술을 활용해 예술을 만드는 더욱 혁신적인 방법이 개발될 것이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