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의 함정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모두가 지속가능한 패션, 지속가능한 디자인, 지속가능한 음식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그게 뭔가? 이건 우리 세대의 그럴듯한 마케팅 용어 혹은 힙스터들의 새로운 수식어일지도 모른다. | 지속가능성,함정,지속가능성 제품,지속가능성 상품,소비

  상황이 이러니 <가디언>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요즘의 키워드로 꼽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기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분명 지속가능성은 우리 세대의 큰 화두다. 하지만 동시에 잘 ‘팔리는’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실제 국립 이탈리아 패션 회의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5개국 80여 개의 백화점 바이어들이 입점 브랜드를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고려사항으로 지속가능성을 꼽았다. 향후 5년간 지속가능성 제품에 대한 총지출이 23%에서 40%로 증가할 것이라 예상했고, 소비자의 70% 역시 지속가능성 제품에 더한 값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 답했다.   때문에 세상엔 분야를 막론하고 지속가능성 상품이 넘쳐난다. 지속가능한 수영복, 지속가능한 해산물 혹은 레스토랑, 지속가능한 앱, 지속가능한 집…. 개중엔 광고의 수단처럼 여겨지는 것들도 있다. 가장 아이러니한 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앞에 지속가능하다는 말을 붙일 때다. 태생적으로 패스트패션은 지속가능성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 아니었나? 애초에 한철 입고 버리게 제작된 제품이라 낭비를 조장하고, 주재료인 폴리에스테르는 제조 과정에서부터 면섬유의 3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하며, 저렴한 가격을 맞추기 위한 노동 착취로도 악명이 높으니 말이다. 그런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혹은 식물을 이용한 신소재 의류 몇 벌로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 데 앞장선다?   얼마 전 BBC에서는 초저가로 유명한 영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부후(Boohoo)가 론칭한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의 옷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취재했다. 리포터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싸늘했다.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옷을 사길 바란다면 이런 건 사지 않을 거예요.” “결국은 마케팅 아닌가요? 이건 소비를 부추기는 또 다른 방법처럼 느껴져요. 진정한 환경적 선택은 덜 사는 거예요.” BBC는 기존 제품에 비해 덜 해로운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해롭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재활용 소재의 옷이 패스트패션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상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열광해 마지않는,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의 상징이 돼버린 에코백과 텀블러에도 주의해야만 하는 맹점이 있다. 최근 미국과 영국, 덴마크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면 소재의 에코백은 131회, 텀블러는 재질에 따라 최소 15회에서 39회 이상 재사용해야만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방치해둔 텀블러와 에코백은 오히려 비닐봉지보다 더 해롭고, 어쩌면 비닐봉지를 할 수 있는 한 재사용하는 것이 이로울 수 있다는 거였다. 나만 해도 열 개는 족히 넘는 에코백과 텀블러를 가지고 있고 그중 정말 사용하는 건 두세 개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리사이클 소재의 티셔츠를 구매하고 내심 뿌듯했던 적도 있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맨날 쓸데없이 똑같은 옷을 자꾸 사는” 나로서는 새 옷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좀 민망했다. 생물학자 엘리자베스 R 데섬버는 저서 <어째서 좋은 사람들이 환경에 나쁜 짓을 하는가(Why Good People Do Bad Environmental Things)>에서 환경에 관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할 만큼 했다’는 만족감에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딱 내 꼴이었다. 어쩌면 나는 진짜 환경을 생각한다기보단 트렌드에 휩쓸리는 그렇고 그런 힙스터였던 건 아닐까? 지속가능성은 우리 세대의 새로운 마케팅 혹은 ‘힙’을 대체할 트렌디한 형용사인가? 아니, 이미 다섯 개 행성만큼의 자원을 소비했을 정도로 소비가 곧 삶의 방식인 이 시대에 정말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긴 할까?   “우린 이미 망했어.” 내 걱정에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환경 감수성을 자랑하는 히피M이 시니컬하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이것저것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어. 대단한 것도 아니야. 더 정확히 알고 관심을 갖고 좀 덜 사는 거. 그러니까 좀 원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만 사라고!” 얼마 전 영국 북부로 여행을 다녀온 또 다른 친구 L은 런던 밖의 도시는 여전히 환경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둔감하다면서 “지속가능한 삶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일회용품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그건 일회용품이 아니게 되는 거잖아.” 라는 의견을 들려주었다.     요는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는 별거 아니라는 거다. 수많은 매체에서 추천하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종합해보면 더 잘 먹고(로컬 푸드를 선호하는 것), 덜 사거나 잘 사고(윤리적인 브랜드의 제품을 사는 것), 더 잘 버리고(재활용하거나 필요 없는 건 기부하는 것), 더 아끼는(물 사용량을 줄이고 전기를 잘 끄는 것), 그저 조금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종류의 일상이다. 이건 결국 ‘지속가능한’이 광고의 수식어나 페이스북 타임라인의 뉴스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당신 옆의 누군가도 어느새 이 커피가 공정무역 제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있을지 모른다. 죄책감 없이 일회용품을 휙휙 쓰고 버리던 내가 이젠 마켓에 갈 때마다 쪼글쪼글한 비닐봉지를 챙겨 가게 된 것처럼. 그 이유가 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건 힙스터의 허세건 자기만족이건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