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깨우는 여자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영감을 깨우는 여자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동시대 여성들이 자신의 영웅이자 영감의 원천에 대해 말한다. 제인 오스틴, 패티 스미스, 수전 손택, 그리고 미셸 오바마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뜨겁고 강인한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BAZAAR BY BAZAAR 2019.07.27

*아솔루타(Prima-Ballerina Assoluta); 프리마 발레리나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무용수를 뜻하는 말.

마고 폰테인은 나의 영원한 ‘아솔루타’*다” - 로렌 커스버슨

 

제인 오스틴

“모든 페이지마다 전쟁과 질병을 이유로 교황과 왕이 다툼을 벌인다. 남자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그나마 여자들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다. 너무 지겹다.” 제인 오스틴의 첫 번째 소설(그러나 제일 나중에 출판된)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에서 캐서린 몰랜드가 한 말이다. 두 세기가 지났지만 어찌나 달라진 것이 없는지! 우리는 여전히 남자들의 삶과 업적을 배우기를 강요받는다.

제인 오스틴은 내 인생에 이상한 규칙성을 띠고 여러 번 나타났다. 처음 만난 건 열한 살 때였다. 학교 숙제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었다. 옥스퍼드에 다닐 땐 학문적으로 그녀를 연구했다. 그리고 2013년, 영국에선 역사적 인물 중 여성을 지폐에 포함시키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영국은행은 제인 오스틴을 채택했다.

기뻤다. 제인 오스틴이 여성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 대해 얼마나 목소리를 내었는지를 떠올리면 이보다 적절할 수 없는 선택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 <설득>에서 여주인공 앤은 하빌 선장과 함께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더 변덕스러운지를 놓고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내가 보면 말이야.” 하빌이 말한다. “역사는 당신에게 불리하거든. 세상의 모든 이야기, 산문, 시… 내 평생 책을 읽을 때마다 여성의 경솔함이 거기에 담겨 있었어. 노래와 속담, 모두 여자의 변덕을 얘기해. 하지만 아마도, 당신은 이 모든 것이 남자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지.” 그러면 앤은 “그렇다”고 답한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점을 누려왔다. 교육은 그들의 것이었고, 펜은 그들의 손에 있었다. 나는 책이 그들을 증명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국은행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결국 독서만 한 즐거움이 없다고 선언하노라!”라는 인용문을 선택한 것엔 반대한다. 이것이 나쁜 문장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문장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캐롤라인 빙리는 이 대사를 뱉고 얼마 안 가서 책을 내려놓는다. 다아시가 읽던 책이 너무 두꺼웠던 탓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녀는 다아시를 짝사랑한다. 여러모로 역설이 뚝뚝 떨어지는 문장이다. 내가 이 인용문을 문제 삼은 이유는 그것이 제인 오스틴의 신랄한 재치를 해치기 때문이다. 영국은행은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제인 오스틴을 과소평가했다. 영국은행이 제인 오스틴을 화폐 인물로 채택한 것은 안전하고 보수적인 선택이다. 그들은 제인 오스틴을 상냥하고 얄팍한 아가씨에 대해 쓰는 상냥하고 가벼운 아가씨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일 것이다. ‘여성들이 글을 쓰지 않는다면, 분명히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통용되던 시기에 제인 오스틴은 글을 쓰고 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가볍고 희극적인 표면 밑에 신랄한 비평을 교묘히 감출 줄 아는 작가였다. 2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대단한 솜씨다. - 캐롤라인 크리아도 페레즈(페미니스트 운동가)

 

제인 오스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8세기 여권신장론자 메리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지 1백 년이 지난 뒤에야 그녀의 주장이 세상에 받아들여졌다. 오늘날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논쟁도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여성이 남성을 지배할 권리를 바라는 게 아니다. 여성이 자신을 지배할 권력을 갖기를 희망한다”는 그녀의 말은 여전히 나를 흥분시킨다. - 매기 햄블링(영국의 화가, 조각가)

 

마고 폰테인

여덟 살 때 영국 토키의 한 앤티크 시장에서 그녀의 전기를 발견했다. 그녀의 사진 몇 장이 내 인생에 배달되고 난 뒤부터, 마고는 내가 되고 싶고 꿈꾸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발레의 마법을 알고 있다. - 로렌 커스버슨(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

 

패티 스미스

나는 패티 스미스의 열정적인 행보를 존경한다. 그녀의 커리어는 음악과 모성, 정치와 시, 평전과 시각예술을 넘나들며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녀는 72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 영향력을 가졌다. 블랙 진에 화이트 셔츠를 무심하게 매치한 그녀의 마른 몸은 또 얼마나 멋진가. 이보다 강력한 롤모델이 있을까?  - 조 굿바이(<하퍼스 바자> 영국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메리 올리버.

메리 올리버

메리 올리버를 처음 읽던 날을 기억한다. 여름의 제주였다. 손끝 너머에서 푸른 바다가 몸을 뒤척이고 있었지만 나는 책 안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긴 달리기 후의 깊고 느린 숨처럼 천천히 읽어나가는 동안 심장이 자꾸 간질거렸다. 한 줄 한 줄이 다 애틋했다. 그녀의 산문에는 반복되는 일상의 힘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여행보다 끈질기고, 여행보다 성실하며, 여행보다 강한 일상의 힘. 매일 새벽 산책을 하고, 매일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매일 자연을 관찰하는 일상. 그 단단한 일상이 일구어낸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는 다정하기까지 했다. 지루하거나 무기력한 일상이 아니라 반짝이는 순간으로 가득한 날들을 살며 그녀는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발견해내고 있었다. 부들과 해초와 이끼와 고사리와 명아주. 혹은 개똥지빠귀와 흰뺨오리와 검은등갈매기와 거미와 생쥐에 이르기까지. 작은 마을의 생태계가 고요한 생명력으로 들끓는 것을 알아채고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산문과 시로 풀어냈던 그녀. 약하고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녀의 시선 속에서 무한한 우주로 되살아났다. “내 시들은 모두 야외에서, 들판, 해변, 하늘 아래서 쓰였다”는 그녀의 고백에 나는 밑줄을 그었다. 내가 쓰는 여행의 이야기도 조금은 닮아 있지 않을까. 나는 배낭을 메고 대문 밖으로 나가야 하고, 7월의 햇볕에 얼굴이 버찌처럼 익도록 걸어 다녀야 하고, 골목과 시장과 사원을 드나들며 그 도시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을 훔쳐야 하니까. 그래야만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으니까.

몸을 움직인 만큼만 쓸 수 있는 편협하고 완고한 세계에 내가 갇혀 있다면, 그녀는 집을 떠나지 않고도 나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한지를, 세상의 모든 생명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생활의 공간에서 놓치지 않고 찾아낸다. 오래 들여다보기, 그리고 소중하게 대하기. 그럼으로써만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임을 깨닫게 된다고 가르쳐 준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한 마을에 살면서 시를 써온 그녀와 어디에도 집을 짓지 않고 떠돌며 보내는 나 사이에도 맞닿는 지점이 있을까. 삶의 방식도, 살아가는 공간도 이토록 다른데 그 아득한 거리를 뛰어넘어 그녀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빛처럼 꽂힌다. 유튜브에서 그녀가 쓴 시를 그녀의 목소리로 듣는 밤이면 나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프로빈스타운에 가 닿는다. 그녀 덕분에 내 세계도 앉은 자리에서 조금은 넓어진다. 어느 해 봄, 그녀의 글을 혼자 읽기 아까웠던 나는 SNS로 번개를 쳤다. 함께 메리 올리버를 읽자고. 토요일 오후, 처음 만난 이들이 우리 집 서재에 마주 앉았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그녀의 시를 읽던 오후. 어둡고 쓸쓸하던 내 일상에 반짝, 작은 불빛이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언젠가 나도 강 너머 숲이 이어지는 작은 마을에 깃들어 매일 오가는 산책길에서 거대한 세계를 찾아낼 수 있을까. 바다를 가로질러 멀리 떠나가지 않고도 설렘을 간직하며 매 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일상의 경이로움에 몸을 떨 수 있을까. 장마철 빗소리 사이로 메리 올리버의 목소리가 번져간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 “명이 있는 것을 사랑하기 / 당신의 명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 알고 뼈에까지 / 그것을 붙들기 / 그리고, 보내줄 때가 오면, / 보내주기”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선 모든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무수히 많은 우주와 조우하게 될 것이라고 그녀는 내게 속삭이고 있다.  - 김남희(도보여행가, 작가)

 

페이스 링골드

미국 인권운동에 뿌리를 둔 그녀의 예술세계는 이제서야 세상에 인정받고 있다. 작품은 물론 그녀가지나온 인생 자체가 내게 영감이 된다. – 야나 필(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CEO) 번역/ 방수진

 

 

시몬 드 보부아르

‘백발의 신진 작가’로 유명한 영국의 화가 로즈 와일리는 그녀의 영웅 시몬 드 보부아르를 캔버스에 담아 존경을 표했다.

 

미셸 오바마

2016년, 미셸은 “그들이 아무리 저급하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를 지킵시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한마디다. 미셸은 여자, 엄마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 미란다 아몬드(미셸 오바마의 전 스타일리스트)

 

 

수전 손택.

수전 손택

‘성’이라는 것을 비단 사람을 구분하는 데에 쓰이는 말이 아닌 사회와 운동으로, 문화와 역사로 의식하고 느끼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들은 너무 많지만, 특히나 여성으로서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힘을 주는 멋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나는 지성의 힘을 믿는 편이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세계를 면밀하게 해석하고, 고찰하고, 바로잡는 일은 사실상 ‘사서 고생’ 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삶의 지혜를 배우는 데 이만한 방법도 없는 것 같다. 이 피곤한 비판과 투쟁의 삶을 평생토록 헤집어온 여성이 수전 손택이다.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그녀를 ‘뉴욕 지성계의 왕’ ‘대중문화의 대통령’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해석에 반대한다>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은유로서의 질병> 등 많은 에세이와 평론서 중에서도 나는 <수전 손택의 말>이라는 인터뷰 집을 꼽아보고 싶다. 2015년 그녀의 사망 이후 발간됐다. 수전 손택이 마흔다섯이 되던 해인 1978년 <롤링스톤>과 가졌던 하나의 긴 인터뷰를 담아낸 책인데, 그의 저서를 모두 챙겨 읽지 못해도 일상적이고 다양한 주제들 안에서 서슴없이 풀어나가는 그녀의 가치관, 여과 없이 배어 나오는 지성미, 내면이 꾹꾹 차 있는 이의 말에서 향기가 느껴졌다. 손택을 보며 어떤 삶을 살아가든 그 안에 나의 향기가 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강인한 힘과 매서운 눈매로 오래된 흐름들을 조금씩 바꾸어나가고 싶다.  - 황소윤(뮤지션, 밴드 새소년 멤버)

 

질 크레멘츠

영감을 소분해서 팔 수 있다면 유통과정에 신경을 꽤 써야 할 것 같다. 냉장 혹은 냉동 식품군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모르고, 생산 후 네 시간쯤 지나면 바로 폐기하는 원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영감이야말로 신선도가 생명일 테니까. 내가 평생 지속되는 영감 같은 걸 믿지 않는 것도 이 신선도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영감이란 패스트패션처럼 빠르게 소비하는 쪽에 가깝다.

최근에 나를 매혹시켰던 사람은 <작가의 책상>의 저자이자 초상사진가 질 크레멘츠였다. 그녀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이 책 안에는 작가 56인의 작업실 초상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더러는 서서 글을 쓰거나, 침대와 부엌과 심지어 자동차 뒷좌석을 작업실로 선택한 작가도 있다. 동이 틀 무렵부터 글을 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해가 저물어야 쓰기 시작하는 작가도 있다. 특정 도구를 필요로 하는 작가가 있고 그런 조건은 핑계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작가의 책상으로 은유되는 시간을 엿보는 건 큰 위안과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책상 위를 의식하게 만들었다. 나는 오늘 질 크레멘츠가 준 영감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한 달 후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제 책상을 두 개의 앵글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은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  – 윤고은(소설가,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1인용 식탁> 저자)

 

쿠사마 야요이

정신질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표현한 그녀의 용기에 감탄한다. 그녀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무한’이다.  - 아가타 포스피에친스카(패션 사진가) 

 

나의 외할머니

1932년생인 나의 외할머니는 유치원을 오래 경영하셨고 편찮으시기 전까진 평생 일을 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일하는 여성에 대한 동경이 생겼던 것 같다. 어느 나이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고, 일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나한테 할머니는 완벽한 어른이었다. 빈틈이 없다는 느낌이 아니다. 할머니는 다정다감했지만 일할 때와 아닐 때의 공과 사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할머니는 그런 내게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 대신 하루에 한 가지만 네 것으로 만들어라. 일 년 365일이면 365개가 네 것이 되지 않겠니?”라고 이야기해주신 분이다.

옷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갖게 만든 분이기도 하다. 엄마도 옷에 관심이 많았지만 할머니는 특히 스타일링에 감각이 있었다. 할머니는 특별한 날에 엄마와 이모를 명동의 수입 양장점으로 데려가 최고로 꾸며줄 줄 아는 분이셨다. 그렇다고 사치스럽진 않았다. 값비싸고 화려한 신상 주얼리보단 샤넬과 에르메스의 클래식 가방을 오래 두고 매치하던 분. 그때의 할머니 물건들은 지금도 내가 소품으로 가지고 있을 정도다. 요즘도 가끔 그녀가 보고 싶다. 참 멋있는 어른, 나의 외할머니. - 한혜연(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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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손 안나,어시스턴트 에디터|문 혜준,사진|Getty Images& David Zwirner& Eyevine& Mirrorpix& Capital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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