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운
<키스가 죄> <소공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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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서 캐리어를 끌고 친구 집을 떠도는 미소(이솜)는 고귀한 캐릭터잖아요. 돈만 없다 뿐이지 취향도 있고 가치관도 확실하죠.
미소는 저의 로망이고 이상향이에요.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인간을 보고 싶어서 만들어낸 캐릭터죠.
대신 미소가 만나는 친구들의 유형을 보면서 저 중에 나는 어떤 유형인지 찾게 되더라고요.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그중에 뭘 선택해서 사느냐의 문제겠죠. 제 안에도 미소 같은 면이 있지만 미소에게 염치없다고 말하는 경미(김재화)도 있고 밖에선 멀쩡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면이 확실한 대용(이성욱)이도 있어요.
위스키와 담배라는 게 말 그대로 ‘기호식품’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하지만 미소에겐 집보다 위스키와 담배가 우선순위죠. 감독님의 ‘위스키와 담배’는 무엇인가요?
미소는 우선순위를 둘 수 없는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위스키와 담배는 우선순위나 취향이라기보다 미소에겐 없으면 안 되는, 중독 같은 거죠. 유일한 삶의 낙이고요. 저도 위스키를 좋아해요. 제 경우엔 위스키와 영화겠네요.
이 모든 일이 담뱃값 인상으로부터 시작되잖아요. 2015년 담뱃값 인상을 두고 ‘우회 증세다’ ‘최악의 정책이다’ 비판이 많았습니다만 결국엔 시행되었고 가장 피해를 본 건 미소 같은 서민들이죠. 이러한 비판 의식이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비판 의식이 있었지만 너무 정치적이면 촌스러울 거라 생각해서 영화가, 어떻게 돌려까야 좋을까 열심히 고민하다가 방법을 찾은 게 <소공녀>였어요. 서울의 집값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고요. 평생 일해도 보통의 사람들은 아파트 하나 가질 수 없는 사회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분노가 있었던 차에 때마침 담뱃값 인상이 있었죠. 저는 국민들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는 이유를 전혀 믿을 수 없거든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차를 없애야 하나요? 결국엔 금연 정책도 장사가 되니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식적이죠.
<소공녀> 후반부에 한솔(안재홍)이 한국을 떠나는데요. 자이언티의 뮤직비디오 <눈>에 안재홍 씨가 나오는데 꼭 한솔이 다시 돌아온 듯한 뉘앙스더라고요.
제 남편이 찍은 뮤직비디오인데 저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요. 남편이 한솔이 돌아와서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나중에 뮤직비디오를 보니까 미소가 죽었다는 뉘앙스인 거예요. 너무 화가 났지만(웃음) 2차 창작이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했죠, 뭐. 어찌 됐든 제 의도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전 영원히 미소가 어디에선가 살아 있길 바라요.
감독님이 <소공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뭔가요?
어떻게 자기 영화를 보면서 ‘와, 좋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어요? 부끄러운 점밖에 안 보여요.
다음 작품도 저예산의 독립영화일까요?
독립영화를 하고 싶진 않죠. 인건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생각보다 너무 크거든요. 그 후에 영화로 어떤 좋은 일이 생겨도 오롯이 기쁠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남의 시간과 노력을 빚내서 가진 성과라는 생각 때문에요.
지금껏 변하지 않고 유지해온 영화적 취향은 무엇인가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캐릭터라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제 마음을 흔드는 인물이 나오면 무조건 좋아요. 내 이야기는 모두 캐릭터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음 작품도 페미니즘 영화겠죠?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죠. 제가 여성으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관심이 가는 캐릭터도 여성이고, 다른 사람보다 표현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드는 것도 여성 캐릭터니까요.
영화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전혀요. 영화 말고는 제가 사회에서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기가 힘들 것 같아요. 항상 스트레스 받을 거고.
감독님도 사회에서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아니요, 그보단 제가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보통이나 표준 밖에 있는 사람들은 늘 외롭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바닥이 저한텐 제일 편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