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한준희 감독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부산행> <극한직업> <사바하>까지.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영화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장르의 다양화다.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인 다섯 명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장르에 대해 말한다. | 영화,영화제,영화감독,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감독

한준희 연출…카체이싱 무비라고 알려졌지만 을 보고 다이내믹한 액션이 아닌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사고를 당하는 행인들의 묘사 같은 게 꽤 자세하게 나와 있더라고요.의 경우 다른 영화에서는 잠깐 지나가는 악당일 수 있는 사채업자 1,2,3이 메인이죠. 은 마약반이나 강력계 형사가 아니라 정보를 주기 위해 잠깐 등장하는 순경이 주인공이에요. 외국의 카체이싱 영화를 보면 소품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이 있잖아요. 장르영화에서의 주인공 말고 지나가는 행인이나 잠깐 등장하는 단역이 주인공인 영화를 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관객이 느끼기에 다른 장르영화보다 조금 더 어둡고 이상한 얘기일 순 있겠지만요.감독님 영화에는 여성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특히 돋보입니다. 노하우가 있나요?남자배우 여자배우 굳이 구분을 짓진 않고요. 역할과 닮아 있는 부분을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의 김혜수 선배 같은 경우 ‘엄마’와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혜수란 배우는 최고의 위치에서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사람이고, 그건 ‘엄마’란 인물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그녀를 알고요. 그런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독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악행을 저지른다는 점을 거세한다면 말이죠.여성 누아르 , 여성 경찰들이 주인공인 까지. 기존 장르영화에서의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를 미러링한 것이 감독님 영화의 특징이기도 해요. 의 은시현(공효진)은 원래 시나리오에선 남자였는데 수정한 걸로 알고 있고요.다음에 군대 이야기를 쓴다면 여자 캐릭터가 나올 수 있는 구석이 적어질 수도 있죠. 미스코리아 이야기를 한다면 남자 캐릭터가 없어질 수도 있고요. 어떤 이야기인가가 먼저예요. 은 ‘홀어머니와 이상한 가족’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어요. 왜 여자냐고 물으시면, 글쎄요. 그렇다고 의 민재(류준열)나 재철(조정석)이 왜 남자냐는 질문을 받진 않으니까요. 미러링을 의식하진 않지만 관객이 그렇게 느꼈다면, 제가 무의식적으로 남녀의 밸런스가 맞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걸 수도 있겠죠.에서 은시현이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라고 말하죠. 감독님 영화의 핵심을 설명하는 대사라 생각했습니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몸부림이랄까요.제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하는 선택들을 영화적 재미나 쾌감을 위해서만 그리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그런 영화도 많고 저도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만요. 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아이의 이야기였고, 은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묻는 이야기였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관념이잖아요. 하지만 이걸 익숙한 장르의 틀 안에 깔아둔다면 그래도 다들 이런 생각을 한번쯤 더 해보지 않을까 싶은 거죠.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고 믿어요.2013년 미쟝센 영화제 ‘사만 번의 구타’ 섹션에서 액션 단편 가 상영됐죠. 6년이 지난 지금, 후배 감독들의 단편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드세요?사실 단편영화든, 몇 십억짜리 장편영화든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후배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서 ‘과연 나는 지금 얼마나 뜨겁게 영화를 만들고 있나’ 돌아보게 되죠. 전 당시에 상은 못 받았거든요. 폐막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어떤 감독님이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앞으로 꾸준히 찍어나가면 된다.” 그때 당시엔 ‘아, 상도 안 줬으면서’ 그러면서 금방 집에 갔습니다.(웃음) 지금은 그 말씀에 동의해요. 영화제에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죠. 어떤 작품은 잘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요. 누가 뭐라고 하든 꾸준히 버티면서 찍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스스로 감독으로서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성실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뭔가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는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고, 그게 어떠한 결과를 낳든지 계속 할 일들을 해나가는 것.‘누가 뭐라고 하든 찍어나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네요?죽기 전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이, 꾸준히, 계속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