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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한준희 감독

<부산행> <극한직업> <사바하>까지. 지난 몇 년 사이 한국 영화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장르의 다양화다. 제18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인 다섯 명의 영화감독이 자신의 장르에 대해 말한다.

BYBAZAAR2019.06.27

가죽 재킷은 Songzio Homme, 셔츠는 Levi’s.

한준희

<뺑반> <차이나타운> 연출

카체이싱 무비라고 알려졌지만 <뺑반>을 보고 다이내믹한 액션이 아닌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사고를 당하는 행인들의 묘사 같은 게 꽤 자세하게 나와 있더라고요.

<차이나타운>의 경우 다른 영화에서는 잠깐 지나가는 악당일 수 있는 사채업자 1,2,3이 메인이죠. <뺑반>은 마약반이나 강력계 형사가 아니라 정보를 주기 위해 잠깐 등장하는 순경이 주인공이에요. 외국의 카체이싱 영화를 보면 소품처럼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이 있잖아요. 장르영화에서의 주인공 말고 지나가는 행인이나 잠깐 등장하는 단역이 주인공인 영화를 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관객이 느끼기에 다른 장르영화보다 조금 더 어둡고 이상한 얘기일 순 있겠지만요.

감독님 영화에는 여성 배우들의 연기와 그들 사이의 케미스트리가 특히 돋보입니다. 노하우가 있나요?

남자배우 여자배우 굳이 구분을 짓진 않고요. 역할과 닮아 있는 부분을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를테면 <차이나타운>의 김혜수 선배 같은 경우 ‘엄마’와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혜수란 배우는 최고의 위치에서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사람이고, 그건 ‘엄마’란 인물도 마찬가지죠. 모두가 그녀를 알고요. 그런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독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악행을 저지른다는 점을 거세한다면 말이죠.

여성 누아르 <차이나타운>, 여성 경찰들이 주인공인 <뺑반>까지. 기존 장르영화에서의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를 미러링한 것이 감독님 영화의 특징이기도 해요. <뺑반>의 은시현(공효진)은 원래 시나리오에선 남자였는데 수정한 걸로 알고 있고요.

다음에 군대 이야기를 쓴다면 여자 캐릭터가 나올 수 있는 구석이 적어질 수도 있죠. 미스코리아 이야기를 한다면 남자 캐릭터가 없어질 수도 있고요. 어떤 이야기인가가 먼저예요. <차이나타운>은 ‘홀어머니와 이상한 가족’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어요. 왜 여자냐고 물으시면, 글쎄요. 그렇다고 <뺑반>의 민재(류준열)나 재철(조정석)이 왜 남자냐는 질문을 받진 않으니까요. 미러링을 의식하진 않지만 관객이 그렇게 느꼈다면, 제가 무의식적으로 남녀의 밸런스가 맞는 이야기에 더 끌리는 걸 수도 있겠죠.

<뺑반>에서 은시현이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라고 말하죠. 감독님 영화의 핵심을 설명하는 대사라 생각했습니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는 인간들의 몸부림이랄까요.

제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하는 선택들을 영화적 재미나 쾌감을 위해서만 그리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그런 영화도 많고 저도 그런 영화를 좋아하지만요. <차이나타운>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아이의 이야기였고, <뺑반>은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묻는 이야기였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관념이잖아요. 하지만 이걸 익숙한 장르의 틀 안에 깔아둔다면 그래도 다들 이런 생각을 한번쯤 더 해보지 않을까 싶은 거죠.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고 믿어요.

2013년 미쟝센 영화제 ‘사만 번의 구타’ 섹션에서 액션 단편 <시나리오 가이드>가 상영됐죠. 6년이 지난 지금, 후배 감독들의 단편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드세요?

사실 단편영화든, 몇 십억짜리 장편영화든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똑같다고 생각해요. 후배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서 ‘과연 나는 지금 얼마나 뜨겁게 영화를 만들고 있나’ 돌아보게 되죠. 전 당시에 상은 못 받았거든요. 폐막식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어떤 감독님이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앞으로 꾸준히 찍어나가면 된다.” 그때 당시엔 ‘아, 상도 안 줬으면서’ 그러면서 금방 집에 갔습니다.(웃음) 지금은 그 말씀에 동의해요. 영화제에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죠. 어떤 작품은 잘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요. 누가 뭐라고 하든 꾸준히 버티면서 찍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감독으로서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실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뭔가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는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고, 그게 어떠한 결과를 낳든지 계속 할 일들을 해나가는 것.

‘누가 뭐라고 하든 찍어나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네요?

죽기 전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이, 꾸준히, 계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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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손 안나
  • 헤어|이 인선
  • 메이크업|이 인선
  • 사진|less& KT&G 상상마당& (주)쇼박스& CGV 아트하우스& NEW& 인디스토리
  • 스타일링|배 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