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 비컨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 이우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패션 브랜드 코스(Cos)와 디아 비컨 미술관의 창의적인 파트너십이 이룬 이우환 작가의 특별한 전시회에 다녀왔다. 한 마디 한 마디 청년의 기운이 느껴지던 그와 함께 나눈 인터뷰. | 전시,전시회,이우환,미술,예술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 강변을 따라 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목가적인 풍경의 비컨(Beacon) 시에 도착한다. 1백년은 족히 되었을 미국식 목조주택과 푸르름이 일렁이는 숲, 사람들의 느릿한 움직임마저 맨해튼과는 동떨어진 시공간이 펼쳐진다. 이런 곳에서 현대미술의 성지를 만난다는 건 생경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2003년 5월 오픈한 디아 비컨(DIA:Beacon) 미술관은 1920년대 제과회사의 박스를 만들던 공장을 개조해 세워졌다. 무엇보다 디아 비컨 미술관의 비범함은 그들의 놀라운 컬렉션,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과 규모에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 특히 미니멀리즘과 대지미술처럼 작품을 몸으로 직접 경험해야 하는 시간적이며 장소 특정적인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월터 드 마리아, 마이클 하이저, 도널드 저드, 리처드 세라, 댄 플래빈, 칼 안드레의 작업들처럼 관객이 작품을 경험적 차원으로 몰입하게 되는 컬렉션이 넓은 갤러리를 압도하며 전시되어 있다. 프랑수아 모렐레의 푸른 네온 작업 ‘No End Neon’이 지하층 전체에 고요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가 하면,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강철 커브들이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묵직하게 세워져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크고 작은 조각들로 가득한 2층 전시장 끝에는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는 그녀의 조각 ‘거미’가 마치 육중한 벽돌을 뚫고 나올 기세다. 각각의 공간에 독립적으로 놓인 작품의 물성은 작가와 관객의 경험에 몰입감과 다이내믹을 선사한다. 디아 비컨 미술관이 규모의 문제와 규범을 벗어난 진정하고 자유로운 현대미술의 성치처럼 느껴지는 이유다.디아 비컨의 봄은 매년 스프링 베네피트(Spring Benefit)라는 아름다운 갈라와 함께 시작된다. 디아를 아끼는 미술 애호가들로부터의 기금 모금 행사이자, 그 해의 가장 큰 프로젝트를 알리고 축하하는 자리로 지난 5월 4일에 있었던 2019년 갈라에는 아티스트 도로시아 록번, 호르헤 파르도, 샘 모이어 등과 휘트니 미술관 디렉터 아담 와인버그, 모마 디렉터 글린 로우리, 갤러리스트 엠마누엘 페로탱, 배우 글렌 클로즈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등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날의 찬란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우환 작가였다. 최근 디아에서 이우환 작가의 초기작 ‘관계항’(각각 1969년, 1971년, 1974년 작) 세 점을 소장하며 사물과 관객, 공간과의 조우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의 빛나는 예술세계를 축하하는 날이었기 때문. 디아 비컨의 디렉터 제시카 모건은 “이우환 작가는 일본 모노하 운동의 선구자로, 구상주의적인 아트 메이킹을 거부하고 사물, 재료와 그들의 주변 환경 간의 관계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우환의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디아는 예술사에서 보다 확장된 이야기를 전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축배를 들었다.무엇보다 이 놀라운 전시를 가능하게 했던 숨은 조력자가 있었으니 바로 패션 브랜드 코스(Cos)였다. 론칭 이래 지속적으로 아트와 디자인의 세계를 탐구하며 컬렉션의 영감을 얻고, 이에 대한 보답과 경의를 꾸준히 실천해온 코스는 디아 미술관이 이우환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후원을 진행했다. 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카린 구스타프슨은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서 자연적인 것과 구조적인 면이 만나는 지점 그 두 가지가 어우러지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매우 파워풀한 경험도 하게 한다.”라고 전했다. 아트야말로 모든 흐름의 시작이라는 구스타프슨의 확고한 태도처럼 이우환의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그리고 관계적인 작품들이 아티스틱한 영감이 되어 코스의 모던하고 촉감적인, 타임리스한 디자인에 반영된 듯하다.조금은 상기된 표정의 이우환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 사이를 서성이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노작가가 지난 50여 년 동안 자신이 일군 예술적 세계를 다시금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흔들리기를 바라고 있다. 자연에서 빌려온 돌을 약간 인간 쪽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철판을 약간 자연 쪽으로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나를 흔들어본다. 그리하면 나와 돌과 철판의 어울림은 각각의 부풀어짐과 어긋남을 일으켜 거기에 뭐라 이를 수 없는 공진의 세계가 열린다. 나는 가늠하기 어려운 이 떨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커다란 공간을 보게 된다.”이우환 작가가 쓴 옛 글을 읽는다. 놀라운 건 오늘 인터뷰에서 그가 한 이야기와 그의 초월적인 작품 ‘관계항’들이 던지던 묘한 뉘앙스가 수십 년 전 작가가 쓴 글과 영속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거였다. 언젠가 ‘옆구리에 돌을 찬 사나이’라고 지어준 별명을 썩 마음에 들어했던 노장의 예술가는 오늘도 ‘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이번에 디아 비컨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반 선생님께서 모노하에 한창 몰두했던 시기의 조각들로 어느 공간에 어떻게 놓이는가의 맥락이 중요한 작업입니다. 디아 비컨의 공간과 작품들의 관계가 어떤 울림을 이룬다고 보시는지요?작품이 놓일 공간이 주어진 것은 벌써 일 년 전부터예요. 내 작업은 공간이라는 요소와 불가분의 관계라 장소가 아주 중요해요. 앞에 보이는 저 작품은 원래 외부의 언덕에 많은 철사를 꽂아서 바람에 흔들리게 하는 데서 출발한 건데 이후에 대부분 실내 전시장에 진열을 하게 되었죠. 한번은 베니스의 정원에 놓인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장소에 따라서 완전히 느낌이 달라지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디아의 이 공간은 완전히 밀폐된 공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오픈된 공간도 아닌 어중간한 공간이거든요. 어중간한 공간에 알맞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꽤 신경을 썼는데 사막의 이미지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닥에 모래를 깔았어요. 마치 모래 위에 철사가 가득 솟아난 것처럼. 이 미술관이 원래 공장으로 쓰던 걸 개조한 곳이라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대단히 공간의 성격이 달라요. 아주 자유로운 면이 있는가 하면 그렇기 때문에 공간과 대응이 잘 되어야 하는 부분에 있어 신경을 많이 썼어요.그렇다면 공간의 성격에 따라 작품의 맥락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는 말씀인데, 선생님도 그런 부분을 유연하게 열어놓으시나 봐요.방석 위에 돌을 얹어 놓은 저 작품은 원래 컴컴한 방에 놓여 작은 빛으로 돌의 그림자가 떨어지게 하는 작품인데, 지금 이 공간은 창 밖에서도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형상과 그림자가 겹쳐져요. 그래서 그림자만 보이게 되는 콘셉트는 여기 안 맞아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벽면에 불이 비치고 그 앞에 침묵하는 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원래의 의도가 있기 때문에 디아의 공간과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처음 콘셉트대로 너무 끼워 맞추기보다는 관객들이 이 공간을 걸어가면서 방석 위에 놓인 돌이 마치 대화를 한다거나, 그 돌이 사람처럼 보인다거나 하는 무언가 미스터리한 느낌만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의 오리진한 디스플레이와는 조금 매치가 달라졌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도 여기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한 셈이지요.작품 ‘관계항’은 조용하지만 큰 울림을 줍니다. 제작할 때마다 현지의 가장 평범한 돌을 고르느라 애쓰셨다고 들었습니다.평범한 돌이라기보단 ‘돌같이 보이는 돌’이라는 말이 더 맞겠네요. 뉴트럴하고 두루뭉술하게 별 성격 없이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돌. 그건 평범하다는 것과는 의미가 좀 다른데 막상 그런 돌을 찾는다는 일이 참 어려워요. 누구의 얼굴처럼 보인다거나 어떤 구체적인 형상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돌을 찾다보니까 그게 의외로 어려워요. ‘이게 어디나 있을 수 있는 돌이구나’ 하는 돌을 찾아야 하는데 너무 특수성이 있으면 곤란하거든요. 전시를 할 때는 대개 그 지역의 가까운 곳에 있는 돌을 골라서 써요. 미국에서 전시를 할 때는 이 근처에 있는 돌을 골라서 작품을 만드는 식이죠.돌이 미술관에 들어오는 순간 그 존재감이 달라지는 걸 감지하시나요?달라져요. 내가 돌을 발견할 때는 그 돌이 원래 살고 있던 지역이나 장소가 있거든요. 다른 돌들과 풀 사이, 그 돌이 있던 현장에서 봤을 때 ‘아 이거 근사하다’ 싶어서 그걸 실어다가 미술관에 가져다 놓으면요, 자기가 살던 어떤 유기적인 가운데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껴서 처음에는 아무 말을 안 해요. 자기 위치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무리 큰 돌이라도 옮겨 놓으면 웅크리고 있는 듯 볼품이 없어요. 그때부터 그 돌을 얼러주면서 세워도 보았다가 눕혀 보았다가 하다 보면 돌이 점점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해요. 전시장에서는 그렇게 그 돌을 잘 살려내야 해요.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이죠. 돌과 철판은 결국 같은 물성을 지니되 하나는 가장 자연적이고 하나는 가장 인위적인 성격을 띱니다. 이 두 가지 재료를 통해서 ‘관계항’이라는 화두를 끌어내셨는데요. 돌이라는 메타포가 선생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내 작업에서 돌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 이상으로 중요해요. 돌은 모든 자연의 대표라고 봅니다. 원래 돌은 지구보다 더 오래된 돌들이 많거든요. 다른 별에서 뭔가 흩어진 것들이 모여서 지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구보다 더 오래된 시간의 덩어리가 돌이에요. 그 돌 하나를 분석하면 지금의 과학으로는 그 요소를 다 알 수 있어요. 알 수 있는데도 내 앞에 주먹만 한 돌을 가져다 놓으면, 사람은 그 돌의 불투명성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해요. 그 조그만 게 무언가 이상하게 보이고 신비스러워 보이고 인간의 의식으로는 파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돌에서 추출한 것이 결국 철판이 되죠. 난 철과 돌을 가지고 서로 대화를 시킨다거나 하는 일을 잘하는데 이건 산업사회와 자연과의 관계를 시도하는 것이기도 해요. 모든 인간과 문명 이전에 자연의 요소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을 써요. 돌 이상으로 중요한 소재는 나는 아직 몰라요.19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고 급진적인 예술운동이 벌어진 시기였고, 선생님께서는 그때 일본에서 모노하(物派)를 이끌었던 작가 중 한 분이셨어요.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예술운동으로서 모노하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모노하는 1968년 즈음 발생한 예술운동으로 1970년대 중반까지 도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어요. 그 무렵에 프랑스에서는 5월혁명, 미국에서는 히피운동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무너져가는 모더니즘과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가운데 예술의 표현에 있어 모노하가 탄생한 거죠. 노부오 세키네는 땅에 구멍을 파서 파낸 흙을 동일한 크기의 원통에 압축하는 작업을 했고, 가즈히코 나리타는 갤러리에 반쯤 탄 석탄 기둥을 줄 세워 놨어요. 나는 커다란 자연석을 유리판 위에 떨어뜨려 의도치 않은 깨진 선을 만들었죠. 물체를 재구성하고 다시 제시함으로써 모노하 작가들은 물체와 그를 에워싼 공간의 관계와 콘셉트를 인정하고 가치 있게 여겼어요. 물체와 시각의 불확실성, 표현의 거짓을 고발하려는 태도와 방법들에서 모노하는 무척 혁신적이었다고 생각해요.“오랜 세월 내 자신은 뭔가 안다는 느낌이 약하다. 세계의 깊이나 넓이를 이야기하기에는 아직도 감감하다.”는 이전의 인터뷰가 인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예술을 해오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요?그건 하나의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살아 있다는, 깨어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건데 사실 인간이 알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라고 봐요.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건 극히 일부예요. 우주에는 엄청나게 많은 소리가 있는데 우리는 그 소리들의 천분의 일도 못 들어요. 그런가 하면 눈으로 보인다는 것도 극히 일부예요. 이브 클라인이라는 화가가 “인간은 보는 것도 듣는 것에도 너무나 적은 가능성밖에 없다. 그러므로 들리지 않는, 보이지 않는 광활한 세계 앞에서 우리가 숙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내 생각도 비슷해요. 그러나 때때로 어떤 만남이나 어떤 반짝 하는 순간에 더 많은 걸 보았다거나 더 많은 걸 들었다는 환상에 젖을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이 있을 때마다 살아 있다는 느낌, 혹은 더 큰 우주를 느끼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큰 것과의 부딪힘 같은 걸 경험하거든요. 그런 희열을 경험하면 작업을 할 때 예술가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한테도 그걸 보이고 싶고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져요. 그런 시적인 순간을 가능하면 지속시키고 보편화시켜서 그걸 누구든지 느낄 수 있고 누구든지 뭔가 감성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마음에서 예술을 하는 것 아닌가 해요. 자기가 아는 것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과도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것도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작업, 작업하는 과정을 보면 작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합니다. 마치 무언가가 왔다가는 순간, 어떤 중간 지점, 애매한 순간처럼 넓은 의미의 ‘만남’을 지향하는 듯 느껴집니다. 선생님 예술 혹은 삶에서의 ‘만남’의 의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일반적으로 특히 근대미술, 추상미술에서는 작가들이 자기 머릿속에서 짜낸 것을 완벽하게 실현하려고 했어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마치 캔버스를 자기 식민지로 보고 개념을 펼쳤죠. 나는 캔버스를 내 영토로 여기기보다는 캔버스와 내가 대화하듯이 가능한 한 나를 제한시키면서 상대를 인정하려고 해요. 서로가 대화하는 장이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는 뜻으로서 그건 하나의 만남이에요. 아무리 내가 콘셉트를 준비하더라도 상대방인 캔버스의 텐션, 크기라든지 색이라든지 그 모든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죠. 만남에 의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콘셉트가 명확하더라도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유연성에 의해 달라진달까요. 물론 내 생각이 출발이 되어야 하지만 늘 상대방이라는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만남을 통해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접점이야말로 작품 제작의 현장이라는 뜻이에요.예술가의 작품은 개인의 통찰과 시대의 흐름이 함께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살아온 시대가 이우환의 작업을 만들어낸 것일 텐데요. 최근의 너무나도 달라진 시대에서 예술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내가 여든이 넘었는데 돌아보면 마치 몇 세기를 한꺼번에 산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그 옛날 1백 년 정도의 긴 세월을 일 년 동안 경험하잖아요. 앞으로는 더 빨라지는 가운데 모든 게 변화할 거예요. 하지만 그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무언가 무한성 같은 것이 인간한테 가능하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 모두가 죽지만 그러나 어떤 삶의 순간에 있어 무한을 느낄 수 있는, 유한성을 넘어서는 부분이 존재해요. 그 유한성을 넘는 부분을 나는 오랜 시간 예술을 해오면서 느끼고 있어요. 근래에 와서는 모든 정보가 AI나 그런 데서 다 주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이 점점 약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세대들이 가능한 대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치 가운데 어떤 무한성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주어지는 정보나 지식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것과 접할 수 있는 기회, 그런 대화가 꼭 필요하고 그런 대화의 일부를 예술이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