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허허벌판의 엄마
벌써 10년이다. 이 이상한 엄마가 우리 앞에 난입하듯 등장한 지도. 스산하고도 몽환적인 갈대밭에서 펼쳐지는 한 여성의 기괴한 춤사위는 이 영화가 개봉했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압도적인 스펙터클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이 영화의 최초 이미지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텅 빈 얼굴로, 때로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춤을 추는 김혜자의 모습이다. 그녀가 어떤 진실을 은폐라도 한 듯 왼손을 옷 속에 숨긴 채로 관객을 바라볼 때 ‘마더’라는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영화는 시작부터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마더>의 세계를 추동하는 힘은 이성에 기반한 치밀한 서사가 아닌 어떤 기묘한 정념이 될 것임을. 이곳은 상식과 비상식, 이성과 본능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계다. 봉준호 감독은 이질적인 것들을 충돌시켜 거기서 파생되는 긴장을 즐기는 연출자다. 순박한 시골 형사와 연쇄살인(<살인의 추억>), 평온한 한강과 괴물(<괴물>)처럼 여기에는 엄마와 살인사건, 혹은 엄마와 섹스라는 언뜻 음습하고도 불경한 단어들의 조합을 제시한다. 특히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전통적 어머니상 위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난폭하게 질주하는 엄마의 야수성을 덧입힌다.
<마더>는 여고생 살인사건을 둘러싼 범죄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엄마’라는 캐릭터의 내부를 파고드는 이야기이자, 감독의 거친 표현을 빌리자면 “배우 김혜자를 찍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인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잦다. 영화는 진실을 은폐하거나 오인한 인물의 눈빛에 자주 집중하는데,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김혜자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까맣고 깊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순수 혹은 광기, 기억 또는 망각의 자욱한 풍경이다. 김혜자의 얼굴은 스크린 위에서 그 자체로 드라마가 된다.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기 위해 탐정을 자처한 엄마가 사건의 조각들을 수집하며 잠시 의기양양해지다가 점차 진실에 가닿으면서 거의 미쳐 폭주하는 감정의 로드무비.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모하는 김혜자의 표정은 때론 충격일 만큼 거세게 다가온다.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의 연기에 대해 “감정에 강렬하게 몰입하고, 계산 없이 그걸 그냥 몸으로 표현한다”라고 해석한다. 타이틀롤인 김혜자에게 호평이 쏠렸지만, 사실 지능이 약간 모자란 아들 도준을 연기한 원빈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는 어떤 것도 의도하지 않은 듯한 캐릭터 표현으로 관객을 몇 번이고 헛발질하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도 그림자처럼 찐득하게 따라붙는 이 아득한 모호함과 찜찜함은 도준이 우리에게 보인 태도에 어느 정도 기대어 있을 것이다. <마더>가 개봉 당시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지점도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잉여, 즉 정념의 디테일한 영화적 구현이다. 우리를 멱살 잡으며 시작했던 오프닝 장면 못지않은 영화의 엔딩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라. 타들어가는 석양을 등지고 춤을 추는 엄마의 실루엣. 관광버스의 좁다란 통로에서 덩어리처럼 뒤엉킨 엄마들의 춤판은 마치 처량한 삶을 위무하기 위한 굿판처럼 보인다. 이것은 춤인가, 살기 위한 몸부림인가. 엄마는 춤을 추기 전 기억을 지우는 침을 자신의 허벅지에 놓는다. 엄마는 무엇을 지우려 했던 걸까. 자신의 끔찍한 과오를? 아니면 지긋지긋한 불행의 역사를? 그것도 아니라면,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아들에 대한 일종의 공포를? 엄마는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의 네 번째 장편영화 <마더>는 세계의 불안과 찬란한 슬픔이 농축된 명장면을 여럿 남겼다.
글/ 김현민(영화 저널리스트)
어떤 영화들은 시간의 흐름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다고 생각합니다. <마더>가 이제 막 10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왔다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하네요. 이 영화의 출발점 자체가 김혜자라는 위대한 배우였기에, 카메라 뒤에 서서 그녀의 연기를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옆자리를,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 빛내준 원빈이라는 배우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10주년이라는 작은 훈장(?)을 서로에게 달아주면서, <마더> 식구들과 조촐한 술잔을 한번쯤 기울여보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 봉준호(영화감독)
먼저 <마더>라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씨네21>의 사진기자를 하면서 기자 생활의 부족한 면면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때에 봉준호 감독님이 영화 스틸 작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존 스틸 작가가 아닌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었고, 기쁜 제안에 기자 생활을 접고 사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영화 <마더>였습니다. 본 촬영이 시작되고 공간과 배우, 스태프들의 강한 에너지를 보며 시각화에 커다란 영향을 받곤 했습니다. 영화라는 작업은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지시, 스태프들의 집중력이 살아 넘실거리는 공간임을. 그중에서도 <마더>는 아직까지도 독보적인 작품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아니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이 작품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머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 서지형(스틸 작가)
경이의 기록
홍경표 촬영감독은 봉준호 감독에게 10년 전 사진을 한 장 받았다. 촬영 현장에서 찍은 젊은 시절 두 사람의 사진을. 홍경표 감독은 <마더> 촬영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금 꺼냈고, 봉준호 감독은 올해 5월이 영화 <마더>의 개봉 10주년임을 전했다. 오래도록 묻어두었던 기억과 기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작품 <버닝>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예술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재조명하려는 영화 <마더>의 김혜자 선생님과 함께 상을 받아 기분 좋은 우연을 감지했습니다.
몸이 아파서 참석을 못 했어요. 내가 갔으면 같은 자리에서 김혜자 선생님도 대상을 받고 나도 상을 받는 건데. 오래간만에 선생님 봤으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TV로 봤는데 선생님 얼굴이 너무 좋아지셨어.(웃음) 여전히 정열을 잃지 않고 아름다우시더라고요. 김혜자 선생님은 소녀이십니다. 나이가 들면 얼룩지고 찌들기 마련인데 여전히 천진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봐요. 그렇게 자신을 유지하다가 연기에 온 힘을 배출하는 예술가죠. 지난 10년 동안 여전히 활동하고 좋은 작품으로 대상을 받는 모습을 봐서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마더>의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강렬한 영화는 드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촬영하면서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버닝>을 찍으면서 이창동 감독님이 영화 잘 찍는 것도 운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런 운이 있다면 <마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운이 참 좋았어요. 달리는 버스에 해가 관통해야만 했어요. 하루에 딱 두 번 5분의 시간만이 주어지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영화 속에 흐르던 모든 감정을 담아야 했습니다. 봉 감독님하고 모니터와 무전기를 두고 찍어가는데 박자가 너무 잘 맞았어요. 해도 그렇지만 마침 버스가 덜컹거리면서 격렬하고 아름다운 혼돈이 담겼어요.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필름도 딱 끊기면서 봉 감독님과 서로 “왔다”는 걸 느꼈죠.
벌판에서 춤을 추는 긴긴 장면도 시나리오에는 “저 멀리 있던 혜자가 카메라 앞으로 와 덩실덩실 춤을 춘다.”라고 한 줄로 쓰여 있었다고 하셨죠. 영화는 서사로 흐르지만 이미지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이미지로 옮길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미지가 떠오르는 편입니다. <마더>는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먼저 갔어요. 바람 부는 벌판을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제주도로 갔어요.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봉 감독님이랑 이야기 나눈 것을 바탕으로 한 3일 정도 다녔거든요. 거친 데도 가보고, 덜 거친 갈대밭이 있고, 너무 예쁜 데도 있고, 어떤 데는 풀이 더 거칠게 나 있는 데도 있고. 사진을 많이 찍어서 다시 감독과 공간에 대한 어떤 것들을 맞춰나가는 거죠. 역광일까, 순광일까, 바람은 얼마나 불어야 하나. 매번 작품 들어갈 때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빛을 가지고 감정이나 상황을 극대화시키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까입니다. 어떨 때는 구도일 수도, 색일 수도, 카메라 무빙일 수도 있어요. 하나에 많은 걸 투입하면 어떤 건 느슨하게 리듬감을 만들어나가요. 그러다 방점을 찍으면 클라이맥스가 되는 거죠.
<마더>의 흥미로운 점은 클로즈업과 아주 멀리서 관조하는 장면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거였어요. 오로지 한 배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보였습니다.
준비할 때부터 클로즈업이 많을 거라고 했어요. 김혜자 선생님의 눈, 강렬한 눈을 찍어야 되는 영화였으니까요. 선생님 눈이 워낙 많은 걸 이야기하잖아요? 눈빛에서 떨어져 있을 때는 아주 극단적인 와이드를 써서 좀 더 높은 곳의 다른 존재가 굽어보듯 찍었습니다.
그 모든 걸 카메라로 좇으셨죠. 볼 때마다 경이로웠습니다. 그 흡입력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이럴 수가, 이 정도일 줄이야 하며 항상 감탄했어요.
선생님이 그때까지도 지금까지도 다시는 하지 않았던 장면이 살해 장면이에요. 모두가 걱정이 많았어요. 국민 엄마였으니. 피가 탁 튀는데 별거 아니라는 듯이 스윽 닦아내면서 작게 욕을 읊조리다 정신이 돌아와서 울고. 그 짧은 순간에 인간의 여러 단계를 축소해서 본 듯해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10년 전 찍은 사진을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영화 스틸 컷도 아니고 기념 사진도 아닌 어떤 경계에 있는 모습이 담긴 것 같아 특별합니다.
영화 작업 들어가기 전에 구도나 색을 보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게 정말 남는 거더라고요. 배우가 연기를 하다가 잠깐 빠져나온 순간들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셔터를 누르게 돼요. 예를 들어 김혜자 선생님이 룸살롱에 간 장면에서 비에 젖은 머리카락과 창백하게 질린 피부톤, 의상과 배경, 조명의 붉은빛이 좋아서 순간적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이 모습은 영화 속 ‘혜자’가 아니라 김혜자 선생님, 그저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인 거예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면의 카메라를 보고 연기를 하던 선생님이 봉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입니다. 그 복합적인 순간이 좋아 사진을 찍어요.
<마더>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회가 열렸고 올해 안에 사진집도 나올 예정입니다. 감독님께 <마더>는 어떤 의미인가요?
지난 세월에 이 작품을 해놔서 다행이라는 안심이 되는 영화. 사진집을 만드는 것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걸 보기 위해서예요. 그게 무엇이 되었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정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늘 새로운 작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색 보정이 너무도 편리한 시대에서요. 다음 작품에서는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모든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영화가 새롭기를 원합니다. 함께 발을 맞추려면 나 역시 좀 더 과감하게 걷지 않으면 안 돼요. 곧 개봉할 영화 <기생충>은 전작 <버닝>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도록 다 버린 영화예요. 봉 감독님의 <옥자>를 할리우드의 엄청난 촬영감독인 다리우스 콘지가 찍었기에 솔직히 부담이 됐습니다.(웃음) 렌즈 선택부터 원점으로 돌아가 수없이 테스트 했어요. 새로운 렌즈를 찾기 위해 뮌헨까지 다녀왔고요. 이번 작품은 인물에 대한 영화라 가족 네 명을 나란히 세워 한 샷에 들어가게 하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꽉 차 있는데도 배우들의 눈동자까지 디테일이 보일 거예요.
<마더> 흑백 버전을 최근에야 봤어요. 아름답지 않던가요? 나는요, 봉준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하는 거라면 무조건 좋아요. 내 의견은 물어볼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안 좋은 걸 시키겠어요? 나는 무조건 좋아요. 그래도 배우 김혜자로서 꼭 한 마디 해야 한다고 하면…. 그냥 웃었다고 전해주세요."
- 김혜자(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