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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DA
아녜스 바르다가 떠났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의연한 생존자이자 세계 여성 영화인의 든든한 동지, 경계를 허무는 예술가의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2019년 3월 29일, 90세의 나이로 두려움 없는 인사를 고했다. 그리고 평생의 동반자였던 자크 드미 감독이 29년째 잠들어 있는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옆에 나란히 누워 있다. 지난 4월 2일 열린 아녜스 바르다의 장례식에는 카트린 드뇌브부터 제인 버킨, 마리옹 코티야르까지 6백50명이 넘는 친구와 동료가 모였다. 엄숙하기보다는 흥겨운 록 콘서트였고, 바르다만을 위한 작은 영화 축제였다. 아녜스의 손자는 흰 뚜껑을 덮은 것 같은 할머니의 빨간 바가지머리를 그리워하며 몽파르나스 묘지 주차기둥의 머리를 똑같이 희고 붉게 칠했다. “어머니는 완전 비어 있는 잔을 보면서도 반이나 차 있다고 했죠. 심지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반이 차 있는 잔을 보신 분이구요.” 아들 마티유 드미는 바르다의 남다른 창의성과 행복의 비결을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그녀를 추모했다. 사진작가 JR은 실물 크기로 제작한 아녜스 바르다의 등신대를 오색풍선에 달아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렇게, 아녜스 바르다가 떠났다.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부터 가장 최근 개봉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8)까지 아녜스 바르다가 만들어낸 파도는 한 번도 ‘새로운 물결(Nouvelle Vague)’이 아닌 적이 없었다. 보살 같은 미소 속에, 개구쟁이 같은 웃음 뒤에 언제나 논쟁의 보따리를 품고 있었던 예술가, 영화와 사랑의 힘을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했던 시네마의 연인.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평생을 보냈던 아녜스 바르다는 전직 사진작가였다. 누벨바그를 함께 이끈 알랭 레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감독들이 영화광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데 반해 아녜스 바르다는 감독이 되기 전 평생 본 영화의 편수가 10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르다는 누벨바그의 대표 남성 감독들 사이에서 귀여운 홍일점이나 홀로 핀 꽃이 아니라, 그들의 화약고 같은 동료이자 후퇴 없는 전사로 자리 잡았다. <5시와 7시까지의 클레오>(1962)로 시작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영화의 형식과 주제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한 번도 관성적 언어에 정착하지 않았던 시네마의 방랑자(Vagabond)였다.
특히 1965년작 <행복>은 가족과 사랑의 신화를 붕괴시키는 문제작이었다. 아내를 두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는 “당신을 안고 있는 10개의 팔을 새로운 사람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11번째 팔이 돋아났다”는 궤변으로 외도를 합리화한다. 온 가족이 들판으로 소풍 나온 날, 청천벽력 같은 남편의 고백을 들은 아내는 그날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아내가 죽은 후 남편과 그의 애인은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은 별다른 문제없이 새엄마를 따른다. 그리고 죽은 아내와 그랬던 것처럼 들판으로 소풍 나온 새로운 가족의 행복한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결혼이라는 굳은 서약과 함께 가꾼 이상적인 가정, 그것이 유일무이한 파라다이스이기를 꿈꾸지만 사실은 쉽게 복제되거나 대체될 수 있는 허약한 모래성이라는 사실을 영화 <행복>은 총천연색의 찬란한 화면을 통해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게 보여준다. 정작 아녜스 바르다는 첫 딸의 생물학적 아버지였던 배우 안톤 보셀일러를 제외하면 평생을 <쉘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감독 자크 드미와 함께했다. 본인의 의지에 의해 한동안 비밀에 붙여졌지만 자크 드미는 바이섹슈얼이었고 1990년 에이즈로 사망했다.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을 평생 옆에 두고 그리워했던 바르다는 그러나 <낭트의 자코> (1991)를 통해 떠나간 남편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사랑을 확인시킨다.
아녜스 바르다는 2018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어요. 나는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해요. 나를 썩어가는 늙은 육체로 취급하면 안 되죠.”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 작업을 멈추지 않으면서 스스로 왕성한 호기심으로 살아 있는 펄떡이는 육체임을 증명했다. 그녀의 유작인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2019)는 올해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나는 사진가로, 영화감독으로, 비주얼 아티스트로 살았죠. 하지만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경계를 지우는 일이었어요.”
사진과 영화, 다큐멘터리와 픽션, 아날로그와 디지털, 남성과 여성, 불변의 사랑과 대체 가능의 롤플레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국경을 오가며 혹은 그 경계를 지워가며 끝없이 ‘즐거움과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인간, 결국 두 세상을 모두 품고 떠난 예술가. 아녜스 바르다는 쌍둥이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