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만난 이영재의 도자 세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뼛속까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영재는 직접 빚은 도자기로 그들의 일상을 꾸민다. | 교감,미술,세라믹,도예,카르스텐 그레베 갤러리

교감 - 交感이영재의 도자 세계, 그 고귀한 여정인간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우아하게 먹고 마시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시키는 도구를 필요로 했다. 물을 흡수하지 않고, 가볍고 단단하며,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흙으로 각각의 목적에 의해 찻잔, 밥그릇, 접시, 항아리 등의 형태로 빚어진 도자는 지금도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각기 다른 문화와 식습관에 맞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원초적인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구현된 도자 세계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가치 있는 쓰임새를 위해 이영재 작가는 평생을 가장 좋아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작업인 물레질을 해왔다. 어쩌면 험난했을 흙을 만지는 길을 그리도 단단하게 묵묵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생활 속 자기의 쓰임의 가치를 숭고하게 지켜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사용될 때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순수한 여정에 동행하고 싶어졌다.독일 서부의 작은 도시 에센(Essen)에 위치한 유서 깊은 도자기 공방 ‘마가레텐회에(Margaretenhöhe)’에서 이영재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빛깔 고운 도자기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밥과 반찬, 커피의 향을 더해주는 멋스러운 도자기 찻잔 앞에 나는 녹아내렸다. 작가가 그간 여러 전시에서 주제로 내세웠던 도자기를 향한 태도, ‘쓰임’을 몸소 체험하고, ‘생활 속 예술’을 강조하는 그의 정신과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만든 그릇이 밥상에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작품이라 여기며 귀하게 모셔놓는 내 그릇들은 의미가 없다. 유명하다는 화가의 비싼 그림을 사서 벽에 걸어놓고는 음미하지도 못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일 밥을 담아 먹고 차를 마시며 꽃이라도 하나 꽂아두고 바라볼 수 있는 화병으로 잘 쓰인다면 예술의 본질은 다하는 게 아니겠는가?”이영재는 세련된 미적 감각을 지키면서 쓰임에 유연할 수 있는 자기는 한국의 도자기뿐이라고 자부했다. 그렇게 한국 전통 방식에 성실하게 숙련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직접 손으로 느끼며 빚어낸 그릇 하나하나의 개성과 유일성을 존중하고 있었다. 도자기는 공예품, 상품이라는 기술 중심의 인식이 강한 유럽인에게 그는 한국 도자기가 가지는 순수미술로서의 품위와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벌써 독일로 건너온 지 4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고루한 한국 교육 현실에 회의를 느껴 좀 더 넓은 세계에서 견문을 익혀야 한다는 어머님의 강력한 의지로 온 가족의 독일행이 결정됐다. 독일 학생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물레를 돌리면서도 한국인 특유의 고귀한 정서와 예리한 안목을 고스란히 빚어낼 수 있는 독창성은 나에게만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기존 도자기 전시에서 작품들은 조심성 있게 전시되거나 유리관에 갇힌 채로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카르스텐 그레베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서 이영재의 도자기들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바닥에 흩뿌려진 것처럼 늘어놓은 채로 선보였다. 심지어 관객들은 조심스럽게 그 사이를 오가기도 했다. “쾰른의 예수회성당에서 포도주를 담는 성배 잔을 도자기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보통 금색이나 은색의 잘록한 와인 잔 형태의 성작을 사용하는 데 반해 난 파격적으로 둥글넙적한 한국식 사발 모양을 만들었다. 한국적인 정서로 옛날 어머니들이 달이 뜬 밤 가족의 평안을 기도하며 물을 떠 놓고 빌던 간절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7백77개의 그릇을 만들어 바닥에 모두 늘어놓은 후 신부님에게 성배를 위해 가장 어울리는 도자기를 고를 수 있게 했는데 당시 신부와 동행했던 유명 미술평론가의 입에서 “내가 본 어떤 전시보다 아름답다”며 그릇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한마디가 영감이 되어서 2006년 뮌헨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에서는 전시장에 1백11개, 미술관 앞 광장에 1천1백11개의 각기 다른 형태의 사발을 그저 흩어놓은 채로 선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축소 버전으로 카르스텐 그레베 갤러리 공간에 맞게 재편성해보았다. 도자기 전시는 형태와 색감이 단조롭기 때문에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다행히도 심플하고 감각적으로 분리된 갤러리의 각 공간과 잘 어우러졌다. 모양과 형태가 모두 다른 사발들이 오밀조밀 모이고 흩어진 형태가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이영재의 도자기를 조용히 응시하다 보면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많은 특징과 튀는 색상이 아닐지라도 ‘이영재의 것’이라 느껴진다. 수많은 세월을 지내며 쌓아 올렸던 흙의 양을 상상도 못할 만큼 힘 있게 다져진 자기에서는 적절한 질감과 색채감이 명료했다. 이영재의 작업은 그가 약 30년 동안 대표직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공방에서 이루어진다. 1919년 ‘생활 속의 예술’을 모토로 시작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유서 깊은 이 공방은 이영재의 뜻과도 일치하기에 그 시너지가 더해진다. ‘들국화가 꽃피는 언덕’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공방에서 이영재와 함께 독일, 폴란드, 일본의 도예가들이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다. 어느 하나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애정의 공간에서 이영재는 수천 번의 유약 실험을 거치고 1천3백50℃가 넘는 뜨거운 가마 앞에 앉아 가볍고 견고한 그릇을 구워낸다. 공방 이곳저곳에 펼쳐진 광경을 통해 경건한 도예의 과정이 보여진다.이영재가 빚어낸 도자기는 유럽인들에게 ‘그릇으로서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갖춘 최고의 명품’으로 호평을 받는다. “요즘은 도자기를 만드는 방식이 매우 기계적이 된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고수의 방식을 유지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힘들게 물레를 돌리세요?’라며 의아해한다. 하지만 물레를 돌려야만 내가 만든 이영재의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 같다. 다른 특별한 이유를 고집하지는 않지만 그래야 내 것인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예술가로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 성격과 감정이 오롯이 담기는 물레질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설레는 마음으로 흙을 빚는다. 마치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어떤 것이 태어날까 하는 기대감으로 오늘도 나는 물레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