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RY FIRST FOUR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4일을 머물고 북부 도시 로바니에미에서 4일, 그 다음 스웨덴에서 6일을 보낸 다음 다시 핀란드로 돌아와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도착하는 코스이다. 비행기를 무려 네 번이나 타야 하고 중간에 두 번이나 경유해야 한다. 이 모든 동선 안에 이제 막 다섯 살 된 아이와 9개월을 맞이하는 아기가 포함되어 있다.
여행을 계획하기에 앞서 우리 부부는 마음을 먹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가자!’ 하고 결심을 했다가도 ‘진짜 다 같이 갈 수 있을까?’ 하는 두 마음이 나와 하시시박 작가 사이를 왔다 갔다 움직였다. 마치 테니스에서 실력이 비슷한 선수들이 랠리를 하듯 그 두 생각이 공평하게 양쪽으로 오고 가는 중이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가자! 뭐, 많이 힘들겠지만 그런 건 감수하자. 불편하고 어렵다고 하는 것들을 당연하다고 감수하기만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시시박 작가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본인의 작업물을 촬영하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어서 훨씬 더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주 먼 곳까지 공을 들여서 갔는데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할까 봐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하는 과정이니 여행도 작업도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나의 결심보다는 하시시박 작가의 마음이 어떤지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시시박 작가가 집에서만 쓰는 동그란 모양의 금색 안경을 쓴 채 눈을 반짝이며 드디어 얘기한다.
“그래 가자! 무슨 큰일이야 나겠어? 무엇보다 북유럽이 좋을 거 같은데, 그렇게 좋은 곳을 나 혼자만 눈에 담고 온다는 게 너무 아쉬울 것 같아. 우리 다 같이 보고 오자. 그게 무엇이 되었든.”
빠르게 항공편을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았다. 우리 가족은 호텔보다는 에어비앤비를 선호하는데, 이번 여행은 일정이 길고 아이들이 동행하므로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핀란드에서는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마지막 일정인 스웨덴에서만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하고 모든 결제를 마쳤다. 컴퓨터 자판에서 손을 떼고 하시시박 작가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나에게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얘기한다.
“우리 정말 가는 거야? 북유럽을? 진짜 괜찮은 거야? 애들이랑? 와!”
그 말을 들은 나도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얘기한다.
“그럼! 진짜 가는 거지. 근데 진심으로 이렇게 아이 둘을 낳고 가게 될 줄은 몰랐어. 언젠가는 꼭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와, 이렇게 네 명이 되어서 가게 되다니. 많이 설레기는 한다.”
나도 작가님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 반, 걱정 반, 설렘 한 스푼. 가득 차 있던 두려움과 걱정에 이 설렘 한 스푼이 넘치고 넘쳐서 우리 마음 밖까지 흘러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들 표정에까지 드러난 거라 생각한다.
이제 짐을 싸면 된다. 가장 큰 트렁크 두 개에 짐을 빼곡하게 챙겨 넣었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할 때처럼 각기 다른 모양의 꾸러미들을 요리조리 맞춰 넣었다.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줄과 면이 가득 차도 부피나 크기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모품인 아기 기저귀나 분유는 줄어들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 부부의 짐은 정말 필요한 것만 골라서 꾸깃꾸깃 쑤셔 넣었다. 가득 채워진 두 개의 트렁크를 꾹꾹 눌러가며 겨우 지퍼를 채우고 다른 짐들을 살핀다. 휴대용 유모차, 카메라 가방, 바로바로 필요한 것들을 가득 담은 그레고리 백팩….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네 개의 여권을 챙기고 큰아이 손을 잡고 작은아이는 아기 띠를 허리에 두른 채 안고 간다. 아직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핀란드와 스웨덴으로 떠났다. 힘들지 않았냐고? 어떻게 아이 둘을 데리고 그 먼 곳을 다녀왔냐고? 음, 글쎄…. 우리 여행이 어땠는지는 하시시박 작가의 사진으로 확인해보시길. 내가 글로 쓰는 것보다 더 생생할 테니 말이다.
※ 배우이자 작가이며 사진가의 남편인 봉태규가 글을 썼다. 지난 3월 봉태규는 가족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를 낸 참이다.